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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벌써 몇 시간 전부터, 저택 앞에는 재벌가의 명절 첫날 풍경을 담으려는 취재진들로 북적였다. 무척이나 기분 나쁜 일이긴 했지만 그룹을 이끄는 최 회장이나 금융사를 이끄는 부사장이 크고 작은 발언들로 온갖 기업을 뒤흔든 해였으므로 올해는 어쩔 수가 없었다. 미리 차에서 내려 집 뒷문으로 향하는 수현은, 도휘로부터 정문 상황을 전해듣고는 쓴웃음을 지었다. 본디 본가로 들어가는 날에는 비서보다는 집안 식구 중 누구와 동행하는 편이었지만 그가 교통사고로 인한 재활치료를 마치고 나서부터는 집안 분위기가 하수상하게 돌아가고 있던 고로, 정문에는 잠시 도휘가 나가 있었고 지금 그는 아영과 함께였다. 추석 명절임에도 불구하고 귀경을 포기해 준 그녀에게 고마움을 느껴야 하겠지만, 안으로 들어가서 최우현 부사장이나 최아영..
애초에 그와 정 회장의 차녀인 은희의 결혼은 정략적인 것이었다. 이면에 수현은 전부 파악할 수 없는 내밀한 거래가 오갔다는 것도 대충은 알고 있었다. 그의 아내가 된 은희는 겉보기에 참하고 온순한 데가 있어 그나마 친척들 사이에서는 잘된 일이 아니냐는 평가가 오갔지만, 매일을 같이 보내야 하는 수현에게는 지옥이 제 발로 찾아온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처음에는 측은지심으로 인해 ‘다정한 남편'의 연기를 한 달쯤 해 주었지만, 이내 은희가 제 성정을 드러내면서 수현은 연기를 그만두었다.집안일에 사사건건 참견하려는 장모와, 거기에 휘둘리는 은희는 유순해 보이는 겉모습과는 달리 집안에서는 패악을 부리기 일쑤였다. 언젠가 수현은 친구들이 있는 술자리에서, '이럴 거면 결혼 안한다고 버티는게 나았어'라고 말했을 정도..
차가운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무거웠다. 잠시 인간의 모습을 빌리고 있다고는 하지만, 드물게 느껴지는 감각에 도운은 미간을 좁히며 도어락의 번호를 능숙하게 눌렀다. 익숙한 기계음과 함께 대문이 열렸다. 인재경영실 팀장으로 승진한 이후로 살인 사건에 휘말렸던 과거의 집과는 아예 이별한 아영이었지만, 서늘한 대리석으로 꾸며진 집은 애초에 사람의 온기가 닿은 적 없는 것처럼 소름이 끼쳤다. 그 날 아침, 아영은 ‘다녀오겠습니다'하고 빈 집을 두고 나가면서 오늘도 별로 다르지 않을거라고 생각했을 터였다. 출근을 위해 집을 나서면서, 오늘로 마지막이 되겠구나 생각하는 사람이 그리 많지 않음을 생각하면 당연했다. 자기가 해고한 직원이 칼을 들고 달려들던 그 순간, 아영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 살해 순간의 CCTV에..
지금와서 생각해 보면 나는 살면서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해본 적이 없었다. 레이첼, 나의 부인이었던 그녀는 그저 적당한 시기에 내 눈에 걸려든 여자에 불과했다. 그녀의 씨다른 동생 헤일리 헌팅턴은, 헌팅턴이기 때문에 귀애했을 뿐이었다. 여제의 아들이지만 나는 살아남기 위해 황제의 계승권을 포기했고, 그로 인해 내게 주어진 애매한 직위와 신력 그리고 아버지의 막강한 재산과 공작이란 명성은 나를 오만하게 만들었다. 아니, 솔직히 디안케트가 먼저 그렇게 소리를 질렀다. 엄밀히 혈통을 따지자면 그 녀석은 내 아버지의 숨겨진 쌍둥이 남동생이 성녀 요한나와 만나 낳은 아이였으니 내게는 사촌 동생이었으나, 황제 에드워드가 자신의 아들이라고 황적에 입적시켰고 나의 오촌으로서 살아가고 있었다.나오 윈스턴 공작은 침묵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