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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편안한 에세이 두 권(수프 좋아하세요? / 소중한 것은 모두 키친에서 배웠어) 본문
에세이 코너를 서성이는 것을 꽤 좋아한다. 특히 신간 에세이는 빠짐없이 둘러보는 편인데(온라인 서점에서나, 도서관 서가에서나) 마음에 드는 책이 있는 날엔 뿌듯하게 퇴근할 수 있다. 집에 와서 따뜻한 차를 한 잔 내놓고, 가만히 앉아 책을 조용히 읽는 여유가 있는 삶을 지금에서야 비로소 느끼고 있다.
(떠올려보면 몇 해 전, 서울에 살 때는 도서관에 갈 생각을 아예 하지 못했었다)
첫 번째로 메모할 책은 황유미 작가의 '수프 좋아하세요?'
빨간날에는 좋아하는 일을 합니다-라는 카멜 북스의 시리즈 책 중 한 권인데, 제대로 읽어봐야지 마음만 먹어두었다가 에세이를 읽기 위해 서가를 서성이던 날 '이거다!'하면서 골라왔다.
요리를 전면에 내세운 책들은 대체적으로 레시피를 한 꼭지라도 세세하게 소개해 두는 편인데 그런 내용이 없어 다소 의외였다. 속이 편안한 수프 만큼이나 문장 하나하나가 담백하고 소박한 느낌이어서 읽는 내내 편안했다. 20대의 나를 보면 밥 한 끼 먹이고 싶다니. 나는 20대의 나를 다시 만난다면 굳이 남들처럼 살아가려고 아등바등 애쓰지 말고 너 스스로를 즐겁게 하는 일을 찾아보라고 하고싶다. 틈틈이 외국어나 다른 공부도 좀 해 두고--역시 욕심이려나.
서울에서 일을 그만두기 몇 주 전, 직장에서 점심에 함께 시켜먹었던 수프가 떠올랐다. 체다 치즈가 들어간 것이었는데, 그 맛이 각별했던 것은 아직도 기억이 난다. 나에게도 그런 음식이 있었고, 그런 기억이 추억이 되어 있다니 새삼 놀라웠다. 읽는 내내 차분하고 고요했던 덕분인지, 그런 감정을 찾고 싶은 사람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이다. 에세이 중에서도 거창한 인생 목표라던가 자기 치적을 자랑하는 그런 글보다는 이렇게 소소하게 쌓아올린, 여느 사람의 다소 특별한 회상이 담긴 글이 더 와닿는다. 내 시간들도 정리하면 이런 느낌일까 싶어서.
다음 책은 노령의 일본 여인이 써 낸 에세이. 책을 덮고 나서 어쩐지 밥을 해 먹고싶어졌다.
'같은 태양이어도 저녁의 햇살은 힘이 없고 시든 느낌이 들어요.'
이 문장이 마음에 깊게 남아있다. 요즘 일부러 아침에 일찍 일어나는 습관을 들여서 운동을 20분쯤 짧게 하고 있는데, 아침은 해가 뜨기 전의 시간이어도 활기찬 기운이란게 있는 듯 하다. 작가가 느낀 아침과 저녁해의 차이가 이거 아닐까 싶었다.
(만약 아니라면, 죄송합니다)
일전에 읽었던 '피아노 치는 할머니'가 나이가 들어서도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는 멋쟁이의 글이라면, 이번 에세이는 아흔이 넘은 고령의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오면서 쌓아온 소중한 지식을 죽을 끓이듯 잘 풀어서 내어주신 느낌이었다.
가령 사람은 사는 지역의 기운을 받고 자란 제철 음식을 먹어야 건강해진다던가. 사실 음식 에세이를 읽으면서 가끔씩 드는 생각은, '한국 사람들은 대체 왜 중병에 걸리면 뭘 먹어야 하나요?부터 물어보는것인가'이다. '뭘 먹지 말아야 하나요?'를 의사한테 물어보는게 우선 아닌가...그래도 먹는건 중요한 일이니까 그러려니 한다.
(하지만 후자가 우선이란 생각은 확고하다. 뭘 잘못 먹어서 아프면 진짜 더 억울하지 않겠는가)
제철 채소. 채소와 친하지 않은 나는 오늘도 냉장고에서 아파 비틀어진 채소를 발견하고 고개를 저었으나...이 두 책을 읽고 저녁을 해 먹기로 마음을 먹었다. 그래봐야 우동, 아니면 카레가루를 푼 우동이 되겠지만 배달음식을 사양하고 온전히 불 앞에서 내가 먹을 음식을 한다는 것은 특별한 행위이다. 사람에게 주어진 시간은 한정되어 있고 그 끝도 알 수 없으므로, 그 사이에 입에 들어가는 아주 사소한 것, 눈으로 읽는 아주 짧은 글이어도 소중히 여겨야 하고 최선을 다해야 한다.
저녁에는 드디어 한국에 번역되어 나온 조젯 헤이어의 '조심해, 독이야!'에 도전해봐야겠다. 등장인물만 봐도 머리가 아프지만 도전은 해 봐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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