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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아직까진 큐레이터입니다만(장서윤 글) 본문
사서 특성 상(이게 본업이기도 하고) 출판되는 새 책을 주의깊게 보다가 '이거다!'싶은 책은 도서관에 들이기 전에 먼저 구매하는 일이 제법 있다. 책 목록에 원하는 책을 추가하더라도 도서관은구매 주기가 정해져 있어 바로 읽을 수 없기 때문이다. 도서관에서 일하면 책은 안 사도 되겠네, 라고 대부분 말할 것 같지만--네, 생각보다 책 많이 삽니다. 제가 책을 읽는 사서라서 그런 것일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렇게 해서 손에 넣은 이번 책은, 「아직까진 큐레이터입니다만」 이란 수필집이었다. 언젠가는 내가 쓴 글도 한 번쯤 엮어 내고 싶어서 관심도 갔지만, '큐레이터'가 주는 단어의 호기심이 가장 강렬했다. 누구나 한 번쯤은 꿈꾸어보는 그런 직업이 아닐까 싶다(정작 이렇게 말하는 나도, 누군가가 되고 싶어하는 '사서'이긴 하다마는, 현실은 상상과 다르다).
읽으면서 내내 전 직장 상사가 계속 떠올랐다. 결은 조금 달랐지만, 내가 상사로 모시면서(동갑이긴 했지만) 함께 일했던 그녀를 생각나게 하는 작가는 톡톡 튀는 매력을 가지고 있었다. 진부한 표현이지만, 큐레이터가 겉으로는 우아하게 물가를 떠다니는 백조처럼 보이겠지만 수면 아래에는--그러니까, 실제로는 무수히 많은 헤엄을 치면서 떠 있다는걸 글로 보여주었다.
공감이 가는 문장이 있었고, 공감이 가는 챕터가 있었다. 선한 영향력에 관한 이야기, 그리고 '비교'에 대한 이야기가 그러했다.
요 근래에 그나마 유지하고 있던 인스타그램을 휴대전화에서 지웠는데, 가장 큰 이유는 그 녀석이 이제 '필수'로 위치정보를 수집한다고 강요를 했기 때문이지만 다른 사람의 행복한 순간을 맞닥뜨리면서 나를 멸시의 공간으로 스스로 떨구고 싶지 않아서였다. 어른들 말이 다 맞는건 아니지만 적어도 SNS에 대해서만큼은 나는 다소 다른 의미로 궤를 같이 한다. 사생활 보호의 측면도 크지만(무슨 SNS가 위치정보를 강제로 수집한단 말인가), 나 자신을 소중하게 보호하기 위해서.
다른 사람의 행복을 보고 무조건 기뻐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다. 그런데 SNS에는 그런 사진들과 행복의 순간들이 흘러 넘친다. 비교는 끝이 없고, 나는 저 사람에 비하면 한없이 초라할 뿐이다. 어차피 비교할 대상 조차 안된다고 스스로를 다그치는 것은 역효과. 차라리 눈을 감고 귀를 막는 것이 낫다. 그게 내가 살면서 내린 결론이다.
대학에 가기 전에는 남들보다 좋은 대학, 알아주는 대학에 가기를 주변에서 기대받았고
그런 학교를 가고 나서는 취업하기를, 취업하고 나서는 결혼하기를 기대받았다. 주변에 누구는 이번에 어떤 집에 시집을 가서 잘 살더라, 누구 딸은 어디 대기업에 취업했다더라, 하는 그런 이야기들 말이다.
부러워서 하는 말이겠지만 당사자에게는 끊임없는 압박으로 다가온다. 그걸 내던지기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라는 것도 안다. 부모나 가족, 친척, 친구들, 지인들이 하는 말에 휘둘리다 보면 남들과 하등 다를게 없는 나 자신을 마주하게 된다. 그 '같음'이, 과연 내 인생이 원하는 바인가?
단언컨대 아니다. 재밌으려고 사는거잖아. 근데 다른 사람들이 제시하는 기준에 맞춰서 살면 나는? 나는 누가 알아주나?
책을 읽으면서 그런 생각이 줄곧 들었다. 몇 번은 흐트러지고 무너져도 결국 내가 추구하는 삶은 내가 즐거운 삶이었다. 마지막에도 다를 바는 없을거다. 다소 부침은 있지만 그렇게 살기 위해 노력중이기도 하고.
'좋은 경험만 쌓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지옥에서 친구 많고 평판 좋아 봤자 어차피 악마다.'
1챕터에서 내 심금을 울린 문구. 요새는 이직도 아무렇지 않은 세상이라 참 다행이다. 평생 직장이란 개념도 희미해져서 다행이다. 남들 다 좋다는 철밥통을 손쉽게 거머쥐어서 이렇게 손쉽게 놔버리는 것인가 생각도 들고, 뜻하지 않은 작별인사를 나눈 뒤라 그런가 싶기도 하지만 어차피 인연이란 스쳐 지나가는 것이지 내가 쥐어선 아무것도 안될테니까...
좋은 경험만 쌓기에도 시간은 턱없이 부족하다. 경험을 쌓고 또 쌓다 보면 내가 언젠가 목표로 하던 모습이 될 수도 있고, 그걸 내 손 끝으로 그려낼 수도 있을거다. 잠시 놓아두었던 것들에 다시 손을 뻗어보면, 그 때 열정적이던 나도 되돌아올 수 있을까?
지옥에서 친구 많고 평판 좋아 봤자 어차피 악마다. 나는 이 직장이 내 평생이 될 줄로만 알았다. 그래서 다들 이런 태도들인 거다. 하지만 남들이 '철밥통'이라고 일컫는 이 자리가, 잘릴 위험은 없을지언정 살얼음판을 걷듯 늘 조심해야 하고 성탄절에 눈 치우러 나가고 남들 대피할 때 불길 속으로 들어가야 하는 자리일거라곤 아무도 알려주지 않았다. 알았더라면, 차라리 오지 않았을거다. 하지만 서울에서 낙향하기로 한 것은 순전히 내 결정이었고, 그에 따라 부수적으로 따라붙은 것들도 온전히 내 몫이라 생각했기에 감내했다. 그리고 그런 고통들을 끝내기로 한 것도 내 결정이었다. 지옥에서 잘 해줘봤자 어차피 악마다. 그러니 무슨 소릴 듣더라도 나 자신을 지킬거다. 내가 나를 최우선으로 한다는데 말리는 사람이 이상한거 아닌가?
면직을 앞두고 수서 중 우연히 알게 되어 읽은 책이지만, 꽤 흥미진진했다. 분량도 길지 않았지만, 공감할 만한 이야기들이 많았다. 누군가에게는 아닐 수도 있겠지만 적어도 나는 많이 공감하는 글들이었다. 언젠가 이 분이 기획하는 전시회를 보러 갈 기회가 있으면, 책에 꼭 사인을 받아와야지. 덕분에 어려운 시기에 제법 위로가 되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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