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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마법사 공무원 (6) 본문
6.
차현은 지금 정신을 집중해야만 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짐승의 냄새가 났다. 어두운 적막 속 빛나는 호랑이의 눈동자. 호안석의 빛은 늘 차현을 소름돋게 했었는데–진짜 밤에 보는 호랑이 눈동자는 그 자리에서 삶을 포기할 만큼 매서운 형상을 하고 있었다.
“신제윤 이 개새끼, 돌아가면 죽여버릴거야!”
그녀의 외침과 동시에, 에버랜드 타이거밸리의 호랑이 가족은 새로운 친구가 빨리 집에 가버린 아쉬움을 느끼며 다시 자신들의 자리로 돌아갔다.
의외로 신제윤은 다음 회의 일정이 잡혔을 때, 차현에게 순간이동을 요구하진 않았다. 아주 자연스럽게, 그녀를 차 조수석에 태워 이동하는 바람에 차현은 하마터면 그의 ‘과제’를 잊어버릴 뻔했다.
그런데 갑자기, 그가 ‘마법 연습은 잘 되어가고 있냐’고 차에서 물은 것이 지금으로부터 일주일 전의 일이었다.
‘진짜 안 배우면 징계를 받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차현은 늘 그녀의 출퇴근을 도와주고 있는 서율에게 상담했다. 퇴근길, 뜻밖의 요청을 들은 서율이 잠시 아무 말도 않았다.
“순간이동 마법을, 신제윤이 배우라고 했다고?” 그러더니, 그가 한 손은 핸들을 잡은 채, 턱끝을 매만지며 말했다. “가르치는건 어렵지 않지만……흐음, 오히려 내가 가르치는게 나을 수도 있겠다. 우리 과에서 자주 처리하는 일이 그거라고, 전에 말했었지?”
차현은 그의 질문에 고개를 끄덕였다. 마법처리과에서 자주 하는 일 중 하나는, 순간이동 마법이 제대로 되질 않아 신체 일부가 남겨졌을 때–그 뒷처리였다. 예를 들면, 어떤 마법사가 순간이동을 했는데 다리 한 짝이 원래 장소에 남겨져 있고, 그걸 보통 사람이 발견했을 경우. 그녀는 얼마 전 우연히 사건 보고서를 읽다가 비슷한 현장 사진을 본 것을 떠올리며 몸을 오스스 떨었다.
그렇게 해서 성사된, 순간이동 마법 수업. 차현은 퇴근 후, 곧장 로비로 내려가지 않고 관리국 안에 따로 마련된 훈련실로 향했다. 그 안에는 서율이 순간이동 마법을 가르쳐 주기 위한 준비가 이미 되어 있었다. 아주 짧은 거리의 마법부터 시작할 수 있도록 시작점과 도착점이 바닥에 그려져 있었고, 거기 서율이 약간 물기어린 머리카락을 한 채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
“또 수영 먼저 하고 왔어요?”
“물론.” 그러더니 그가 씩 웃어보였다. “30분 정도지만. 이 정도로 몸을 움직여 놔야, 너한테 마법 가르치는게 수월하단 말이지.”
서율이 새벽이나 퇴근 후, 꼭 수영을 한다는 사실을 안 것은 얼마 되지 않았다. 그는 ‘물’과 관련된 마법을 가장 능숙하게 다뤘다. 꼭 첫 날, 차현에게 보여준 마법이 ‘물’이라는건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었다는 뜻이기도 했다. 그의 말에 의하면, ‘수영을 통해 정신을 집중하고 신체를 단련해, 마법을 잘 쓸 수 있다’는 이론이었고–약간 솔깃해서 스마트폰으로 수영복을 검색해보긴 했다.
차현은 이제 마법을 제법 평범하게 쓸 수 있었지만, 조금 큰 규모의 마법을 쓰고 나면 여지없이 지치곤 했다. 그러니 체력단련을 위한 수영이란 말에, 귀가 트일 수밖에.
“그 때처럼 먼저 지치지나 말아주세요……” 차현이 진심으로 말하자, 그가 큰 소리로 웃었다. 그리고 한시간 뒤, 두 사람은 말 그대로 ‘대자로’ 바닥에 누워 있었다.
마력의 소모가 상당했던 탓인지, 차현은 온 몸이 차가워진 듯한 기분이 들었다. 서율이 살짝 그녀의 손을 잡고는, 몸 상태를 체크해 주었다. 순간이동은 오늘도 성공하지 못했다.
“마력, 순환시킨다? 아주 엉망이네, 속이.”
마법사들은 각각 자신만의 ‘마력 총량’이 있었다. 서율의 말에 의하면, 차현은 보통보다는 조금 더 나은 수준이라고 했다. 그런데, 마력을 쓸 방법을 이전에는 몰랐으니까 마법을 쓸 때마다 마력 조절을 아직은 제대로 못해서–과하게 쓰는 날도 있을거라고 했었다.
오늘 마법 수업이 딱 그런 경우였다. 10cm를 움직이는 것도 성공하지 못했는데, 소모한 마력이 상당하다는 것을–이제 마법을 쓸 수 있다는걸 알게 된지 몇 달 되지 않은 그녀도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차현은 손끝으로 흘러들어오는 서율의 따스한 마력을 느끼며 잠깐 눈을 감았다. 그대로 잠들 수 있을 것만 같은 따스함이었다.
다른 이의 마력을 몸에 들이는 것은 여러가지 부작용이 있을거라고, 서율이 엄중히 경고하는 척 했지만 차현은 차라리 그가 몸 속 마력을 바로잡아 주는 이 순간이 ‘치료’처럼 느껴졌다. 그도 그럴 것이, 마법수업 후 서율이 이렇게 마력을 순환시켜 주면 피로가 싹 가셨던 것이다. 대신, 서율의 마력이 몸 속에 조금씩 남는 것은 느낄 수 있었지만–그 때는 그다지 신경쓰지 않았다.
진척이 없는 순간이동 수업 5회차, 금요일. 차현은 퇴근시간이 되자 집에–아니, 트레이닝 룸에 가기 위해 가방을 챙기기 시작했다. 그 때, 갑자기 집무실에서–흰 셔츠에 감색 넥타이 차림을 한 신제윤이 쑥 튀어나왔다. 자켓도 걸치지 않은 채로.
“본부장님?” 뭔가 추가로 지시할 일이라도 있나? 차현이 지레짐작하고, 가방을 내려놓는데–그는 차현을 그대로 지나치더니 문 밖에 있던(차현은 도착한 줄 미처 몰랐던) 신서율 과장에게 바로 가더니 이렇게 말했다.
“권차현 주무관 순간이동 수업은 오늘부터 내가 맡겠다. 처리과장은 돌아가도록.”
그 말에, 밖에 서 있던 신서율이 뭐라 투덜거리는 소리가 들렸지만 신제윤이 바로 본부장실 문을 닫아버리는 바람에 차현에게까지 정확히 전달되지는 못했다. 뜻밖의 일에, 차현이 동그란 눈을 하고 신제윤을 바라보자, 그가 헛기침을 했다.
“별다른 진척이 없는 수업을 계속 받는 건 소모적인 행위일 뿐이다. 내가 직접, 오늘 안에 순간이동 마법을 쓸 수 있도록 지도하겠다.”
“그럼, 트레이닝룸으로 가시는건가요?” 차현이 당연하다는 듯 대꾸하자, 제윤은 무슨 이상한 소릴 하냐는 듯한 표정으로 고개를 저었다. 그가 차현에게 다가와, 그녀의 손목을 살짝 잡았다. 저항할 새도 없이, 순식간에 주변의 풍경이 바뀌는 것이 느껴졌다.
차현은, 어쩐지 신제윤이 자기의 손목을 놓는 것이 아쉽다고 생각했다.
아주, 짧은 순간만.
발을 딛고 선 곳이 어딘지 정보를 모으느라 뒤늦게 정신을 차려보니 신제윤은 이미 울타리 바깥에 있었다. 그리고, 차현이 있는 곳은–유튜브에서 많이 본, 그곳이었다. 뜻밖의 친구 등장에, 맹수들이 호기심을 보이며 차현에게 가까이 다가오고 있었다.
“야, 신제윤!!!!!”
갑자기 바뀐 상황을 인지한 차현이 고래고래 소릴 질렀지만, 안전한 저 너머로 이미 순간이동 해버린 신제윤에게는 그저 무의미한 외침일 뿐이었다. 차현은 그가 아주 느긋한 표정으로–마치 차라도 한 잔 마실 태도로–팔짱을 낀 채 자길 바라보는 것을 보고 말았다.
“너 미쳤어? 마법 가르친다고 사람을 호랑이굴에 떨구는 미친놈이 어딨냐!”
“그렇게 소리만 지르면,” 신제윤의 태도는 아주 뻔뻔했다. 그가 턱짓으로, 차현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온 호랑이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녀석들에겐 아주 맛있는 간식이 되어주겠군.”
차현이 뭐라고 대꾸하기도 전에, 신제윤은 마지막 말을 남긴 채 그녀의 눈 앞에서 사라졌다.
“살고싶으면, 순간이동으로 집무실에 복귀하도록.”
그가 눈 앞에서 사라지자 갑자기 현실감이 파도처럼, 그녀에게 몰려들었다. 눈 앞에 보이는 호랑이만 한 마리 뿐이었지, 저 너머에 몇 마리가 더 있는지에 대한 정보는 가지고 있지 않았다. 밤에 보면 분명 맥이 탁 하고 풀려버릴 것만 같은 저 눈. 호안석을 보면 왜 공포감이 느껴졌던건지 이해할 수 있을 것만 같은–맹수의 눈 한 쌍이 차현을 빤히 바라보며, 저벅저벅 걸어오고 있었다. 두툼한 저 앞발, 티비를 보면서는 한 번쯤 만져보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저 앞발을 휙 하고 가볍게 휘두르는 순간, 몸뚱아리가 이승과 아디오스–할 것을 상상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코끝을 스치는 진한 맹수의 냄새. 호랑이는, 머리를 숙이고, 어깨를 낮추고, 발톱을 숨기지 않은 채로–사냥꾼의 자세를 취했다. 몇 초 뒤면 진짜 죽는다. 신제윤에게 복수도 못하고, 마법사로서 대성하지도 못하고, 자유롭게 살지도 못한 채 두동강이 날거다.
그 때 차현의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살아남아서, 꼭 복수한다. 신제윤한테.
신제윤은 정말로 집무실에 돌아와서, 느긋하게 설탕 두 조각을 넣은 에스프레소를 한 잔 즐기고 있었다. 그의 오늘 예정에 없었던 일을 벌인 것은, 권차현이 그를 스쳐 지나갈 때마다, 신서율의 마력이 느껴졌던 것이 원인이었다. 그것만 아니었다면, 그녀가 순간이동을 누구에게 배우든 상관이 없었다. 아니, 신경쓸 이유가 하등 없었다.
한 마법사에게서 다른 마법사의 마력이 느껴진다는 것은, ‘접촉’이 있었다는 의미였다. 작게는 손이 맞닿았다거나, 더 나아가면 섹스를 통한 마력 교환이 이루어졌단 뜻. 그 사실이 다시 떠오른 제윤은 미간을 좁히며, 책상 위를 검지손가락으로 딱, 딱, 딱, 두드렸다.
마음에 들지 않았다. 제 사람에게서 둘째 형의 마력이 느껴진다는 것이.
그리고 그는 애초에, 차현에게 마법을 차근차근 가르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날 때부터 여러 마법을 능숙하게 사용했기 때문에, 끈질긴 신서율의 스타일처럼 마법을 하나부터 열까지 세세하게 가르칠 수 없었다. 그러니 이런 극약 처방에 가까운 방법을 쓴 것이다.
‘실전에서 배우는 것만큼 빠른 습득법이 없다.’
만고불변의 진리. 그래도 호랑이굴에 넣은 것에 약간 죄책감이 들 뻔 했지만–신제윤은 그녀가 살아서 돌아올 것을 확신했다. 무엇보다 순간이동 직전, 죽일듯이 자길 노려보던 권차현의 살기는 진심이었으니까. 그 정도 살기라면, 어려운 마법은 무엇이든 해 낼 수 있는 마음가짐으로는 충분했다.
커피를 한 잔 다 마시기도 전에, 제윤의 머리 위에서 강력한 마력이 감지되었다. 순간이동 직전 특유의 파동이었고–제윤은 차현이 ‘성공’했음을 알았다. 그런데 하필 머리 위라니, 집념이 너무 강한게 아닌가?
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며, 커피 잔을 책상 위에 내려놓고 마법으로 투명한 쿠션을 만들어 차현을 받아낼 준비를 했다.
그런데 그 때, 차현이 신제윤의 머리 위로 떨어져 내림과 동시에 그의 ‘투명 쿠션’ 마법이 풀리고 말았다. 또다시 물에 빠진 듯한 기분나쁜 감각이 제윤의 ‘입술’을 스쳤고, 그는 그대로 자신의 무릎 위에 차현이 떨어진 것을 알아차렸다.
순간 제윤의 눈이 커졌다. 방금, 내가, 어디에 닿은거지?
“움직이지 마라.”
제윤은 그대로 팔을 뻗어, 차현의 허리를 감쌌다. 자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버둥거리는 그녀를 그대로 뒀다가는 의자마저 넘어져, 둘 다 바닥에 나뒹굴 수도 있었다.
“순간이동으로 돌아오라고만 했지, 내 무릎 위에 앉으라곤 안했는데.”
“이 미친–” 차현은 그 로맨틱한 상황에도 욕을 포기하진 않았다. “누가 순간이동 배운다고 호랑이굴에 제발로 들어가냐…요!”
“그래서? 마법은 제대로 배운 것 같은데?”
“몇 분 사이에 뻔뻔해지기까지 하셨네요, 본부장님? 내가 말했죠, 가만 안둘거라고!” 씩씩대는 차현은 자기가 지금 어떤 자세인지 전혀 모르는 것만 같았다.
그녀의 흐트러진 차림새 만큼이나 말투가 엉망인 것도.
“가만 안 둘거라면, 이렇게는 해도 되겠군.”
제윤은 그녀의 허리를 꽉 잡은 뒤 꼼꼼히 차현의 얼굴과, 몸 상태를 살폈다. 다행히 외관상으로 다친 곳은 없어보였다. 그가 일부러 그녀를 품 안에 가둔 것은, 제 마력을 흘려보내 차현에게 상처는 없는지 확인하기 위함도 있었다. 갑자기 처음 쓰는 마법을 사용했으니, 속의 마력이 흐트러진 것이 대번에 느껴졌다.
갑자기 낯선 마력이 몸 안에 흘러들어 오자 차현이 움찔하긴 했지만, 그녀도 벗어나려고 더는 바둥거리지 않았다. 오히려 천천히 그 마력에 기대려고 하는 느낌. 그 자세로 몇 분이나 지난걸까. 제윤은 차현 안에 흐르는 마력을 제 방식대로 바로잡아준 뒤, 그녀의 허리를 잡고 있던 손을 살짝 떼려고 했다.
그러다 눈이 마주치자, 차현이 숨을 들이쉬며 제윤에게 몸을 붙여왔다.
옷 위로 느껴지는 체온, 실루엣을 따라 흐르는 부드러운 감촉. 입술까지의 거리—딱, 한 호흡.
그녀의 호흡이 가빠졌다가, 잠깐 멈추었다. 그의 반응을 기다리는 듯한, 무언의 질문.
“이건 무슨 의미지?”
제윤이 겨우 이성을 유지한 채 물었지만, 차현에게선 대답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홀린 듯이. 피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았다. 그녀가 마치 허락하듯, 윗입술을 약간 열었다.
그때였다.
쾅!
“아직도 야근중이야? 친절한 처리과장님이 커피를 사 왔–” 집무실 문이 열리더니 커피 두 잔을 양 손에 든 신서율이, 눈을 동그랗게 뜨고 이 ‘못볼 꼴’을 목격하고 충격에 휩싸였다.
“너네 뭐하냐?”
그의 방해에 차현이 번뜩 정신이 들었다는 듯, 제윤의 무릎에서 벗어나더니 평소의 그녀답지 않게 당황하며 치마 밑단을 정리했다. 제윤은 지금 이 상황이 몹시 마음에 들지 않았다. 마음에 들지 않은 정도가 아니라, 짜증이 났다. 차현이 자기 무릎 위로 떨어지자 마자 문을 마법으로 아예 봉인해 놨어야 했다. 그 간단한 조치 조차 하지 않은 것이 후회스러웠다. 서율은 자기가 목격한 것을 받아들이는데 3초 정도 걸렸지만, 제정신을 차리고는 소릴 질렀다.
“사내연애 금지다, 이 자식들아! 집에 가!”
“저, 저, 저는 이만 집에 가보겠습니다!” 그리고 순식간에 차현이 제윤과 서율의 눈앞에서 사라졌다. 서율이 ‘쟤, 순간이동 이제 되네?’하고 중얼거리는 것은 가볍게 무시한 채, 제윤은 아예 서율 자체를 무시하려고 했다. 그 투정을 놓칠 신서율이 아니었다.
“난 노크 했다? 니들이 못 들은거지.”
“......”
“야근은 혼자 할 줄 알았지. 비서 입술에 박치기 하고 있을 줄은 몰랐다고.”
“꺼져.”
“오냐, 네 소원대로 꺼져주긴 할건데. 너네 아직 사귀는거 아니지? 그럼 지금 그거, 차현이한테 바로 사과 안하면 어색해진다? 그리고, 앞으론 문 제대로 잠궈라. 방해받기 싫으면.”
“권차현을 일단 그렇게 부르는 것부터 관둬.”
“남이사, 네 부하직원을 뭐라 부르건 말건. 이 형님은 집에 간다, 동생아.”
“닥쳐!”
신서율은 제윤이 날린 번개를 익숙하게 피한 뒤, 잽싸게 집무실 문을 열고 바깥으로 내뺐다. 반면, 집무실에 혼자 남은 제윤은 아까 그 감촉–차현의 블라우스 위로 전달되었던 부드러운 온기와, 매끄러운 입술의 감촉에 소리지르고 싶은 것을 겨우 참고 있었다. 대체, 차현이 왜 그렇게 다가왔던 걸까.
‘충동적인 행동이었나.’
제윤은 방금 전까지 권차현을 껴안고 있던 양 팔을, 그녀에게 닿았던 손을 내려다 보다 그 손에 얼굴을 묻었다. 차현의 향수 냄새가 아주 약간 남아있었다. 바이레도의 라 튤립. 국가안보국에 처음 그녀를 데리러 갔을 때, 그가 알아챘던 향기. 그리고 첫날, 차현은 그에게 ‘사귈래요?’하고 당돌하게 고백을 했고 자신은 ‘거절한다,’이 한마디로 차현을 날카롭게 쳐 냈다. 그리고 거기서 바뀐건 없었다. 적어도 차현이 제윤에게 ‘쓸모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스스로 입증하고 있다는 것 하나를 제외하고.
“조심해야겠군.”
제윤은 그녀를 만나러 가기 전, 신무영이 자신에게 했던 예언을 떠올렸다. 그 때, 분명 신제윤 자신은 ‘예언 따위, 믿지 않는다’고 생각했었다. 오히려 예언 자체를 파훼시키겠다는 자신감마저 갖고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자신은 더이상 누군가를 마음에 둔다거나 좋아할 자격이 없었다.
그 사실을 떠올린 신제윤은 씁쓸한 미소를 지은 채, 엉망이 된 책상 위를 손짓 한번으로 정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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