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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공무원 (5) 본문

Writings/Di 245(BE, AE)

마법사 공무원 (5)

alicekim245 2025. 7. 21. 13:27

5.

아직 준비가 완전히 되지 않은 회의실에 들어선 순간, 차현은 다른 공무원들의 시선을 의식하기 전부터 이미 시선을 받는 중이라는 걸 알아차렸다.

비서가, 원래 회의장 안까지 동행하는게 맞는건가? 그건 ‘수행’비서의 역할이지, 비서실에서 신제윤의 일정들을 관리하는 차현의 일은 아닌 것만 같았다. 그런데, 그예 신제윤이 고집스럽게 차현을 이번 회의에 동행하게 만들었다.

잠깐 스친 의문은, 옷차림 때문일 거라는 자각과 함께 곧바로 지워졌다.
짙은 감색, 무릎 위로 살짝 올라오는 미디 기장 스커트였지만—

누군가는 그것조차 ‘충분한 이유’로 삼을 준비가 되어 있었으니까.

 

한시간 전, 특수인원관리국 총괄본부장실.

차현은 갑작스런 신제윤의 ‘통보’에, 솔직히 당혹감을 감추지 못하고 대놓고 드러냈다. 갑자기 회의에 동행하라니. 심지어 ‘차량’은 없고 순간이동으로 알아서 오라는 식이었으니 당황하지 않을래야, 그럴 수가 없었다. 결국 차현은 비서실에 배속되고 나서 아마도 처음으로–신제윤에게 반기를 들었다.

“저, 순간이동 못합니다.”

못합니다, 라는 말끝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고 그 덕분인지 모니터를 응시하던 신제윤의 시선이 차현에게 옮겨졌다. 덕분에, 그녀는 본부장의 미간이 살짝 좁혀진 것을 보고 말았다. 그런데 사실을 말해야지, 아니면 신제윤이 순간이동으로 회의장에 도착하는 모습과 동시에 ‘지하철을 타느라 땀범벅이 된’ 비서가 등장하는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는 것을 도저히 그만 둘 수가 없었다. 잠시 차현의 눈을 뚫어져라 응시하던 본부장이, 손을 뻗어 서랍장을 열었다. 거기엔 자동차 스마트키가 하나 있었다.

“운전면허는 있나?”

“있긴 합니다만, 공공의 안전을 위해 장농에 보관해 두었습니다.”

“없다는 말이군.” 그렇게까지 대놓고 무시할 건 아니잖아. 하지만 정말로, 그 목적의 ‘봉인’이 맞았기 때문에 이때만큼은 반발할 수가 없었다. 신제윤은 차키에 시선을 두고 몇 초간 고민하더니, 차키를 제 손에 쥐었다.

“이번엔 내가 운전하겠다. 다음 회의 참석 전까지는 순간이동 마법을 배워 오도록.” 다음 회의라니? 이게 딱 한번의 예외가 아니란 말인가? 그나마 거기까지는 딱 좋았는데, 신제윤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했다. “저녁마다 데리러 오는 신서율 과장한테 배우면 되겠군.”

대체 그건 어떻게 안거야? 사실 차현은 신서율과 안면을 트고 난 뒤, 어느새 서로 ‘호형호제’하는 사이가 되어 있었다. 그리고 그 바쁜 마법처리과장이, 차현의 퇴근시간만 되면 어김없이 그녀를 픽업해 가 지금은 마법 선생 노릇을 해 주고 있었다.

‘마법 지팡이 같은건 너무 티나는 방법이라, 한국 마법사들은 안 써. 우리는 더 고도의 마법을 사용하지. 손짓, 눈짓, 그리고 모든 동작들이 마법으로 펼쳐지는 방식이야. 대신 이 방법의 단점이라면, 마법사의 감정이 안정되어 있어야 한다는 것.’

차현은 신서율의 가르침을 떠올리며, 몇 번이고 연습한 끝에 허공에서 원하는 물건을 불러올 수 있게 되었고 손짓 몇 번으로 캐비닛에서 필요한 서류를 불러올 수 있었다. 흡사 동양 소설 속 ‘도사’가 된 기분이었다.

‘순간이동은 어린 마법사들에게는 금지되어 있고, 청소년기에 접어들면 몇 달을 배워야 겨우 쓸 수 있는 마법이야. 우리 마법처리과에서 가장 많이 수습하는 마법 사고 원인 중 하나가 순간이동이기도 해.’

이 어렵고 복잡하다는 마법을 ‘다음 회의 전’까지 배우는 것이 정말 무리라는 것을 이미 들어 알고 있었으니, 신제윤의 요구에 황당한 감정이 올라올 수 밖에. 애초에, 내근직 비서였을 차현이 왜 회의에 동행해야 하는지 이해 할 만한 설명을 듣지 못했다.

한편으로는 본부장이, 일개 비서에 불과한 자신에게 모든걸 일일이 설명할 필요가 없기는 했다. 이 모순을 견뎌내며, 차현은 신제윤이 ‘시간이 됐다.’라고 말하며 비서실로 들어올 때까지 그의 회의 자료 준비를 열심히 했다.

그래도, 첫 동행이니 만큼 무시당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컸다. 처음에 ‘오기’로 시작했던 비서 일은, 이제 차현의 일상에서 자부심과 기쁨을 주는 일로 자리잡고 있었다. 신제윤에게 고백했다가 몇 초 만에 차인 그 과거를 덮어버릴 만큼.

복지부 회의를 위해 이동하는 차 안. 손목시계를 흘끗 확인한 제윤이, 차현 쪽은 보지도 않고 아무렇지 않게 한 마디 건넸다. 차현은 방금 전 그가 들른 드라이브스루 카페에서 받은 커피를 한 모금 옆에서 마신 직후였다.

“오늘 의상, 잘 어울린다.”

하마터면 입에 머금고 있던 커피를 뿜을 뻔 했다. 지금, 내가, 신제윤한테 옷 칭찬을 들은거야? 처음 스타일 변화를 줄 때 입었던 와인컬러 스커트만큼은 아니었지만, 깔끔하게 라인이 떨어지는 감색 미디 기장 스커트라서 아침에 이 옷을 고를 때 ‘뭔가 좋은 일이 일어나길 바라’긴 했었다. 그게 신제윤에게서 칭찬을 듣는 걸로 돌아올거라곤 생각하지 못해서 몇 초간 반응하지 못하고 켁켁거릴 뻔 했다.

차현은 그래도 능숙하게 입가에 미소를 띈 다음,

“칭찬 감사합니다.”

하고 그의 칭찬을 어른스럽게 받아냈다. 그러고 나서도 신제윤은 여전히 정면만 응시했다. 차현은 그 때 그의 시선이, 그저 안전운전에 힘쓰는 사람의 자세인 줄로만 알았다. 적어도, 복지부에 도착해 불쾌한 말을 듣기 전까지는.

 

5.1

회의 시간이 거의 다 되었는데도, 준비가 안되어 있었다. 고연차 여자공무원들은 다 어디로 내뺐는지, 아무것도 모르는 시보들이 종종거리고 있어 제때 끝날 것 같아 보이진 않았다.

원래는 내가 들어올 만한 급의 회의가 아니었다. 국장이나 과장이 배석해야 했고, 그 원류를 타고 올라가면 본디 장관급 회의로 준비되어야 했다. 최근 무슨 일이 하나 있어서 다른 조직들은 배석자를 장관으로 되돌려 놓았다고 했는데, 내가 속한 복지부는 끝까지 그 흐름에 올라타지 않았단 이야기만 들었다. 그도 그럴 것이, ‘특수인원관리국’이라는 이상한 조직과 회의를 하는데 시간과 정성을 쏟을 만큼 복지부 장관은 한가하지 않았다.

특수인원관리국. 공무원 생활 몇 년 하면서 별의 별 조직명을 들어봤지만 그렇게 이상한 조직은 처음 들어봤다. 더군다나, 행정망에서 검색되지 않는 기관이었다. 기밀을 다루는 부서여서 복지국 내에서도 아주 소수만 알고 있는 조직이라고들 했다. 기밀 취급이니, 장관이 주재하는 회의였겠지.

문제는, 그 사람들이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솔직히 듣고 처음에는 내가 저속한 장난에 놀아나는건가, 스스로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한국에, 이 고도로 발달한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마법사가 있고 그들이 정부 조직 안에 편입되어 있다는 사실을 누가 믿겠는가.

더군다나 회의를 쭉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사람들 앞에서 마법을 쓴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그러니 ‘마법사가 아닌가?’라는 의심이 확장되어 그 쪽은 본부장이 참석하는 회의인데 복지부에서는 팀장이 대표로 나오는 이상한 모양새가 완성된 것이었다. 누가 봐도, 의도적인 무시인데도 계속 회의라니.

‘멍청이들.’

그들을 만나기 몇 분 전이었지만 내 안에서 마법사에 대한 감상은 아주 단순했다.

9급 시보 여자애들이 어수선하게 회의를 준비하고 있었다. 아직 공무원증도 안나왔으면서, 커리어우먼이라고 으스대며 어울리지도 않는 H라인 미니스커트에 통굽 구두를 신은게 우스웠다. 그래도 몸매들은 썩 나쁘진 않았다. 조금만 상냥하게 대해주면 자기한테 반한 줄 알고 매달리는 것들. 상향혼을 노리는 저 여자들에게 최연소 6급 팀장 승진자, 명문대 출신, 부모 재력 상당함, 외모도 나쁘지 않고 키도 큰 편, 여직원들에게 매너남 평판–이 윤상규가 갖고싶은 존재인 것은 분명했다. 능력있고 부자인 남자 하나 잡아서 결혼 후 집안에 들어앉는 것이 꿈이 전부인 여자들을 꼬셔내는건 정말 손가락 까딱 할 만큼의 노력도 필요하지 않았다. 하룻밤 자 주면, 본인이 내 애인이라고 생각하는 그 멍청함이 가장 많이 우스웠다.

지금 관리하는 팀에는 어린 미녀들이 많아서 좋았다. 벌써 절반은 먹어치웠다. 남은 절반도 차근차근 정복해나가는 재미가 있었다. 특히, 거리를 두려고 노력하던 여자를 함락시키는 재미는 세상 어떤 쾌락에 견줄 수가 없을 정도였다. 침대 위에 쓰러트려서, 옷을 벗겨내면 젤을 쓸 필요도 없이 아래가 이미 젖어있었다. 그대로 파고들어가 허리를 움직일 때, 교성을 내지르는 얼굴들을 떠올리자, 하마터면 아래가 그대로 설 뻔 했다. 그렇지만 내겐 같은 여자에게 두 번이나 내 걸 내어주는 소모적인 취미는 없었다.

회의자료를 테이블에 올려놓기 위해 허리를 살짝 숙이는 자세는 뒤에서 감상할 때, 정말 자극적이었다. 그대로 후배위를 하기에 좋은 광경이었고, 실제로 다른 회의가 다 끝나고 나서 지나가는 여자애를 하나 잡아 그렇게 한 적도 있었다. 그 때의 스릴을 떠올리자, 오늘도 해 볼까–생각하며 하나를 눈으로 고르던 중이었다.

누군가 옆에 살짝 다가왔다. 이틀 전 호텔에서 하룻밤 보냈던 7급 여직원이었다. 삼십대, 결혼 예정인 애인 있음. 그녀가 약간 상기된 얼굴로 '오늘도...?' 라도 속삭이는 순간, 나는 살짝 열린 회의장 문으로 들어선 낯선 존재에게 시선을 빼앗겼다. 빼앗겼다는 말 외에는 그 기분을 표현할 수가 없었다.

갑자기 회의실에 나타난 묘령의 여자는–단정하게 입은 척 굴었지만 실은 몸을 감싸는 미니 스커트며 살갖이 살짝 비치는 흰 블라우스가 무척이나 눈에 자극적이었다. 키도 제법 크고, 늘씬했고, 아마도 손에 쥐면 꽉 찰 듯한 B컵 가슴의 소유자였다. 처음 보는 얼굴인데? 복지부에 저런 직원이 있었다면 내가 놓쳤을 리가 없었다.

그런데 저 여자, 뒤이어 들어온 남자를 기다리는가 싶더니 이내 그를 앞세워서 회의실에 발걸음을 내딛었다. 특수인원관리국에서 올 만한 남자, 그리고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를 대동하고 올 사람은 그 본부장이라는 놈 말고는 없었다.

이상하게도, 그는 회의실에 들어오자 마자 나를 차가운 시선으로 노려보고 있었다. 뭐지? 나는 저 여자를 감상했을 뿐이지 남자에겐 취미가 없는데.

‘비서인가? 비서를 가장한 애인이겠지, 저 정도면.’

언뜻 보면 30대 중반쯤 되어 보이는 남자였다. 젊은데, 본부장이라니. 나보다 더 출세한 사람이잖아? 게다가 비서처럼 보이는 여자는 일하는 중간중간 성욕 해소용인가. 저 본부장이란 남자가 아주 약간 부러워졌다.

“특수인원관리국 본부장님이십니까?”

그래도 회의장에 있는 관리자급 사람이라곤 나 하나 뿐이었기에, 느릿한 걸음으로 그 남자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려고 했다. 물론 그에게 다가가는 건, 순전히 그 옆에 있는 비서를 조금 더 자세히 보기 위함이었다.

“그런데, 비서 분 복장이 공공기관에 출입하는 사람 치고는……치마가 짧지 않습니까?”

덕분에 눈요기는 제대로 했다. 나중에 회의 끝나고 번호를 달라고 해야겠다. 비서면 기간제 근로자인게 분명하니, 국가직 팀장인 내가 먼저 작업을 걸면 당연히 넘어가겠지. 자기의 한 달 월세를 하룻밤에 척척 써버리는 재력에 반해서, 애인이 되려고 매달릴거다.

“요즘 본부장급들은 다들 젊고 예쁜 '기간제' 비서 하나씩 두나 보네요? 어디 가도 눈에 띄고 좋으실 것 같습니다. 저도 본부장님 비서 같은 여자 있으면, 애인처럼 손에 쥐고 다닐 텐데요. 회의고 현장이고—하루 종일 같이 다녀도 안 질릴 텐데.”

그런데, 총괄 본부장이란 남자는–내가 가까이 가서 손을 내밀었음에도 불구하고, 앉은 의자에서 일어나지 않았다. 대신, 내 눈을 빤히 바라보기만 했다. 어쩐지, 화를 꾹 참는 듯한 표정이었다.

 

5.2

봐 버렸다. 이 벌레같은 새끼와 악수는 하지 않아 모든 광경이 시야에 들어온 것은 아니지만–이따금 강하거나 아주 추악한 잡념이 정신을 방해해 상대의 상상이 눈 앞에 펼쳐지는 경우가 있었다. 이정도의 일을 마법사가 아닌 사람에게 당하는 건 좀처럼 없는 사건이어서 약간 의아하긴 했지만, 나는 지금 당장 눈에 보인 광경을 정말 찢고 불태워버리고 싶었다.

내 비서가, 이 성욕에 미친 놈의 상상 속에서 강간당하고 있었다. 이 새끼의 머릿속에서 벌어지는 일이라는걸 알면서도, 화가 나고 불쾌했다. 거기다 내게 하는 말이 가관이었다.

‘비서의 치마가 짧은게 아니냐’니. 그 짧은 치마를 보고 더러운 상상을 한 사람이 누군데, 그런 매끄러운 표정을 하고서 악수를 청할 수 있다는 말인가. 아마 사회적 체면을 차린다고 이 남자와 악수를 했다면, 나는 더한 광경을 봤을 수도 있었다. 그렇게 되면? 이성을 잃고 이 자를 마법으로 지져버렸을 지도 몰랐다.

하지만 지금은 업무 시간이었다. 마법사 아동에 대한 중요한 회의였기에 나는 그 자리에서 이 새끼를 때려 눕히거나 응징하지 못했다. 그런 내가 한심하게 느껴졌다. 내 사람 하나 지키지 못하는게 무슨 본부장이란 직함을 달고 여기 앉아있다는 말인가.

“말 함부로 하지–.”

차현이 대꾸하려고 하자, 나는 손을 들어 그녀의 행동을 막았다. 이런 일에 일일이 대응할 필요는 없었고, 무엇보다 차현이 이 남자와 말을 섞는 것 자체를 용납할 수 없었다.

“공무원 복무규정에 의상 관련 내용이 새로 추가되었습니까?”
솔직히는 내게 악수를 하겠다고 내민 저 손부터 말라 비틀어지게 만들고 싶었다.
“제 직원은 원하는 옷을 입고 다닐 권리가 있습니다. 사적인 부분에 대한 지적은 삼가주시죠.” 내 부하직원이 무슨 옷을 입던, 그건 일개 팀장이 관여할 일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런 시선으로 내 사람을 만지는건 용서할 수 없었다.
“내 비서에게 그런 말 할 자격은 그 쪽에게 없습니다. 그리고, 말은 골라서 하시는게 본인을 위해 좋을겁니다.”

그 시점에서 내가 할 수 있는건, 그에게 경고를 보내고, 차현을 되도록 내 곁에 단단히 붙들어 두는 것이었다. 윤상규의 더러운 시선이 차현을 품평하듯 훑었다는 것만으로도 화를 쉽게 가라앉힐 수 없었는데, 이제는 들어선 안될 말까지 듣게 해버렸다. 내가 조심스럽게 꺼냈던 ‘잘 어울린다’, ‘예쁘다’는 말들이 이 자의 시선 속에서 찌그러지고 더럽혀진 느낌이었다. 누군가의 품평 속에 섞이기 위해 꺼낸 말이 아니었는데.

“본부장님, 냉수 더 드릴까요?” 회의가 잠시 소강상태일 때, 차현이 몸을 살짝 숙여 귓가에 그렇게 말해주었다. 이 반푼이, 자기 속이 분명 쓰리고 힘들게 분명한데도 나를 가장 먼저 챙겼다.

차현을 회의에 데리고 가겠다고 결정한건 즉흥적인 결정이 아니었다. 마법사 아동에 대한 현재 상황을, 복지부를 통해 그녀도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이번 일은 관리국 내부에서만 진행되는 것이 아니라, 외부의 협조도 받았기 때문에 차현이 어떤 연락을 받던 능숙하게 대응해내는 것이 필요했다. 게다가, 차현이 내 비서실에서 일하기 시작한 이래로 업무능력을 평가했을 때 눈에 띄었던 ‘즉각적인 판단력’을 더 키워주고 싶었다. 그런데, 그 첫 단추가 이런 꼴이라니. 죄책감이 밀려들어왔다.

“마법사 아동의 최근 실종, 납치 건수가 증가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차현이 살짝 손짓으로, 근거 데이터를 스크린에 띄워주었다. 복지부에 회의준비를 요청할 때 이 자료를 넣어달라고 요청했지만, 아주 당연하게도 전체 슬라이드에 이 차트는 빠져있었다. 차현을 데려온 것은 이럴 때를 대비하기 위함이기도 했다. 내 비서는, 내가 들어가는 회의에 대한 모든 백데이터를 가지고 있고–필요할 때 그걸 바로 찾아서 제시할 수 있을 만큼 특수인원관리국 업무에 대한 숙지가 거의 완벽하게 되어 있었다.

마법사 아동의 경우 부모가 버리거나, 고아원에 맡기고 가는 경우가 꽤 있었다(주변에서 불가사의한 일이 자주 일어나고, 그게 아이가 원인이라던가–귀신이 씌였다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아서였다). 그런 아이들을 보호하는 시설을 물론 운영중이긴 했지만, 복지부의 행정망 도움을 아무래도 받아야 하는 상황이 종종 있었다. 이번 회의의 목적 역시,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마법사 아동의 ‘보호’를 위함이었다. 그런데, 최근 회의를 거듭할 수록 실종되거나 사망하는 아이들의 수가 유의미하게 늘고 있었다. 신무영 총무과장과 상의한 결과, 복지부 내부에 정보 유출자가 있을 가능성이 대두되었다. 그래서 이번에는, 의도적으로 ‘거짓 데이터’를 섞어놓았다.

음원 발매 전 방송국에 데이터를 보내야 할 때, 정밀하게 초 단위로 노이즈를 섞어 배포한 다음 ‘유출’이 되면 그 초 단위 데이터를 분석해 범인을 찾는 스킬처럼. 우리가 준비한 데이터는 복지부 각 담당자마다 다르게 조작하여 배포했다.

만약 거짓 데이터를 통해 유괴시도가 발생한다면 이제 복지부의 누가 유출했는지 찾아낼 가능성을 높일 수 있었다. 물론, 애꿎은 사건이 발생하지 않도록 무영과 서율을 통해 사전 조치 정도는 마친 상태였다.

그런 목적의 회의였는데, 차현에게 괜한 일을 겪게 한 것 같아 여전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복지부 직원들은 관리국에서 송신한 데이터(마법사 아동의 등록정보)를 아주 만족스럽게 소장한 채 회의를 정리했다. 그 뒤에 숨겨진 칼날에 누가 찔릴 지는, 우리도 아직 알 수 없었다.

“오늘 회의는 이것으로 마무리하겠습니다.” 아까 그 윤상규가 마무리 멘트를 했다. 그는 원래 내가 참석할 회의에 들어올 급은 아니었다. 복지국에서 점차로 관리국에 대한 대우를 격하하고 있다는 것은 알고 있었다. 어디까지 가나 두고 볼 요량으로 내버려 두었더니 결국 오늘같은 사단이 벌어진 것이다. 적어도 국장 이상이라면, 자기들이 가진 것을 놓치기 아까워 몸을 사리는 척이라도 했다.

속이 답답해 차현을 두고 먼저 회의실을 나서려고 했다. 그녀도 곧장 나를 따라 올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윤상규의 발걸음 소리가 가까워지는 것이 들렸다. 목표는 권차현인게 분명했다.

“연락처 좀. 커피 한 잔 사주고 싶은데.”

그러곤 그가 차현에게 스마트폰을 내밀었다. 본인에게 차현이 아주 당연하게 번호를 줘야 한다는 태도에 하마터면 웃음이 나올 뻔 하다가–진짜 주면 어떡하지? 하는 불안감이 살짝 들었다. 그런데 차현의 태도가 가관이었다. 아까 윤상규가 자기를 품평하던 그 시선 그대로, 아래에서 위로 그를 훑어본 다음 까르르 웃으면서 대꾸하는 것이 아닌가.

“어머, 어떡하죠? 그 쪽, 제 취향 진짜 아니거든요.” 거기까진 딱 좋았는데, “차라리 우리 본부장님하고 탕비실에서 둥굴레차나 마시는게 낫겠어요.”

그 순간 아직 회의실에서 나가지 않았던 복지부 직원들이 아주 작은 소리로 ‘풉’하고 동시에 웃는 것이, 내 귀에 다 들렸다. 상큼한 거절의 멘트를 들은 그는 그 자리에 굳은 채였다. 차현이 고개를 두리번거리며 내가 있는 곳을 찾더니, 이내 손짓 하나로 마법을 부려 우리 쪽에서 인쇄해 간 자료를 한번에 손에 쥔 채 탁 탁 두드려서 파일철에 넣어 정리를 마치고–일부러 뛰는 체 하며 나를 쫓아왔다. 그녀가 내 앞에서 정리된 자료를 흔들어 보일 때–나는 문득 입가가 올라가는 걸 느꼈다. 그건 자랑이었고, 자부심이었다. 복지부 직원들 중 몇 명이 차현의 ‘마법’을 직접 목도하자, 경계와 두려움이 얼굴에 떠오른 것을 놓치진 않았다.

“본부장님! 자료 수거하느라 조금 늦었습니다.” 오히려 차현의 입가에 띈 미소에, 내가 안심이 되었다. 속은 엉망이었을거다. 그 남자가 자길 보는 시선에 분명 어떤 ‘목적’이 있다는걸, 이 눈치빠른 사람이 놓쳤을리 없으니까. 그런데도, 그녀는 나를 향해 왔다. 늘 내게 보여주는–업무적일지 몰라도–환한 미소와 함께.

“사무실로 바로 복귀하실래요? 아니면, 아까 들렀던 카페 가서 커피 한 잔 더 마실까요?”

아까는 탕비실 둥굴레차, 지금은 본부장과의 커피 한 잔. 그 모든 선택지에서 ‘너는 없다’는 걸, 윤상규는 아주 뒤늦게야 알아챈 듯 했다. 얼굴에 들끓는 분노가 엉켜 올라온 것이 굳이 살펴보지 않아도 느껴졌지만, 차현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그녀가 나를 향해 웃는 순간, 난 그제야 확신했다. 그녀는 지금, 분명한 내 사람이었다.

“가자.”

하마터면 나와 한걸음 차이로 걸어오는 차현의 손을 잡고 회의실을 나갈 뻔 했다. 그녀의 구둣소리가 반 걸음 뒤로 좁혀졌고, 나는 귀가 빨개지는 것을 느끼며 승강기 버튼을 눌렀다. 가능하면 빨리, 그녀와 단 둘이 차 안에 남고 싶었다.

 

5.3

차현은 자기도 모르게, 윤중로를 지나갈 때 자동차 창문을 살짝 내리고 말았다.
그도 그럴 것이, 낮의 벚꽃을 제대로 본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던 것이다. 어릴 때는 늘 땅만 보고 걷느라, 꽃의 아름다움을 제대로 알 기회가 없었다. 머리가 굵어지고 하늘을 볼 수 있는 자유가 생겼는데도, 먹고 사는 일에 급급해 꽃은 무슨–하늘에 얽히는 구름도 제대로 두 눈으로 짚어볼 시간이 없었다. 게다가 아까는, 불쾌한 말까지 들은 터라–가짜로 웃을 수 있긴 했지만 속이 정말로 엉망이었다. 며칠간은 그의 말에 사로잡혀 악몽이라도 꿀 수 있을 것 같은 상태로 복지부 건물을 빠져나온 그녀였다.
그런데 새하얀 벚꽃이, 하필 차현의 시선을 잡아 끌었다. 저 꽃을 천천히 바라보며 약간이라도 걸으면, 기분이 조금은 나아질 것만 같았다. 그렇지만 곧장 사무실로 복귀해야겠지. 업무 중이니까.

“잠깐 걷다 들어가지.”
그 시선을 알아챈 듯, 신제윤이 브레이크를 부드럽게 밟더니 이내 갓길에 차를 댔다. 멀뚱하니 자기를 바라보는 권차현의 시선이 귀찮다는 듯, 그녀 쪽은 보지도 않은 채 “아직 출장 종료 시간까지는 여유가 있으니까.”

그의 속깊은 배려에, 차현은 고맙다는 인사를 웅얼거린 뒤 조수석 문을 열고 윤중로 벚꽃길에 처음으로 발을 내딛었다. 낮에 바라보는 벚꽃은 그야말로 맑은 날씨와 어우러져 눈부셨다. 누군가는 이런 꽃길을 매년 봐서 감흥이 없겠지만, 그녀에게는 아니었다. 약간 차가운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질이는 순간마저도 좋았다. 흰 벚꽃잎이 눈 앞에서 흩날리는 모습을 보며 감탄에 잠겨 있던 그 때, 차현에게 낯선 남자가 말을 걸었다.

“저, 잡지 사진 찍는 사람인데요.” 차현이 인기척을 느끼고 뒤돌아 보았을 때, 그는 커다란 카메라를 든 채였다. 그녀가 본능적으로 반 걸음 물러섰다. “입으신 옷이 너무 예뻐서, 봄 특집으로 싣고 싶–.”

하지만 남자는 말을 미처 잇지 못했다. 어느샌가 차에서 나온 제윤이 차현의 흰 블라우스 위에 자신의 카멜색 트렌치코트를 얹어준 다음 손을 잡고 그대로 그녀를 데려가버렸던 것이다. 순식간에 손을 잡힌 차현은 그에게 이끌리는대로 걸어가는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이 크고 따뜻한 손이 그 순간만큼은 싫지 않았다.

“본부장님, 발 아파요, 발. 그렇게 빨리 가시면 쫓아 갈 수가……”

사진을 찍으려던 남자와 거리가 한참 벌어진 것을 확인한 차현이 그렇게 말하자, 제윤이 우뚝 멈추어 섰다. 여전히, 차현의 손을 쥔 상태에서.

“본부장님 덕에 벚꽃도 보고, 사진 작가한테 제안도 받아보네요.”

“즐거운가. 그럼 다행이고.”

“벚꽃 제대로 구경하는게 처음이라서.”

“처음?” 차현의 말에 제윤이 그녀의 눈을 바라보았다. “벚꽃을 처음 보는 사람도 있나. 별일이군.”

“그럴 여유가 없었어요. 사는데 지쳐서, 그 다음엔 사람에 지쳐서. 제가 본 벚꽃은 늘 바닥에 다 떨어진 채였고, 주로 밤이었죠. 남들한테 다 짓밟히고.” 그 말에 이전 직장에서의 일들도 섞여 있다는 것을 알아챈 제윤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는 말로 차현을 위로하는 대신, 그녀의 머리카락 위에 앉은 꽃잎 몇개를 조심스럽게 떼어낸 다음 그걸 넣어 작은 공 형태의 마법구를 만들어 그녀의 손바닥 위에 올려주었다. 스노우볼 형태의 그걸 살짝 흔들자, 벚꽃잎이 마치 눈보라처럼 안에서 흩날렸다.

“이걸로, 올해 벚꽃을 기억할 수 있겠지.” 그의 입가에는 부드러운 미소마저 걸려 있었다.

“예쁘다–.” 순수하게 감탄하는 말이 곧바로 차현의 입에서 흘러나왔다. 손바닥 위에 올려놓은 공을 이래저래 굴려보던 차현이 배시시 웃었다. “이렇게 예쁜 선물, 처음 받아봐요.”

“......신서율은 다른 것도 사 준 것 같던데.” 여기서 서율 과장이 왜 나오지? 그보다, 그가 가끔 립글로스나 자잘한걸 사준다는 사실을 왜 신제윤이 알고 있는지가 의아했다. 두 사람, 설마 자신에 대해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인가? 그렇게 가까워 보이지는 않았는데.

“조금 더 걸을까.” 제윤도 방금 전 자기가 한 말이 조금 이상했다는 것을 인식한 듯, 괜한 소리를 했다. 덕분에 두 사람은 이제는 나란히 국회의사당 방향으로 같이 걸음을 옮기게 되었다. 여전히 한 손에 작은 공을 든 채, 차현은 이 정적이 어색해서 말을 먼저 꺼냈다.

“본부장님, 국회에서 대정부 질문 같은 거 받으실 일도 있으신가요?"

제윤은 잠시 그녀를 보았다가, 고개를 돌리며 대답했다.

"그런 일이 벌어진 거라면, 우리가 마법사들을 지키지 못한 거겠지."

잠시 바람이 지나갔다. 제윤은 덧붙였다. "국회는 우리를 유사시 자원으로 간주한다. 마법사가 아닌 평범한 사람들을 통제하고 억압할 수단으로. 나는 그렇게 보지 않아. 관리국은 마법사들이 자유롭고 존중받으며 살기 위해 존재하는 조직이어야 하지"

차현은 고개를 끄덕이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리고는 나직하게 말했다. "그래도 협조하시는 거잖아요."

"그래야 지킬 수 있으니까." 제윤의 대답은 단단하고 간결했다.

그 순간, 차현은 생각했다. 그의 신념을 지켜주기 위해, 자신이 가끔 마법사가 아닌 사람들을 상대로 '마법'을 쓴다는 걸 본부장 자신이 알고 있을까. 보통은 흐름을 조용히 조정하지만, 통하지 않는 공무원이 있다면 — 환각 마법으로 설득하고 압박하는 수단을 쓰기도 한다는 걸.

그녀라고 처음부터 무서운 사람이 되고 싶었던 건 아니었다. 물론 처음엔, ‘징계 3회차 공무원의 무서움을 보여주마!’라는 오기가 있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녀의 예상보다 늘 냉혹했다. 무시당하지 않기 위해서 기억하게 만들어야 했고. 말이 통하지 않을 땐, 수단을 가릴 필요가 없었다. 가짜든 진짜든, 결국 겁을 먹은 사람은 움직이니까. 그게, 그녀가 선택한 방식.

끝내 제윤에게 말은 하지 않았다. 대신 어깨 위에서 여전히 따뜻하게 그녀를 감싸주는 신제윤의 트렌치 코트 자락을 살짝 쥐며, 차현은 벚꽃 아래에서 다시 걸음을 옮겼다. 코끝이 괜히 간질거렸다.

“어라. 신 본부장님 아니십니까, 이거. 오랜만이군요.”
그때, 맞은편에서 검은 정장에 연회색 코트를 입은 중년의 남자가 제윤을 알아보고 반갑게 인사하며 다가왔다. 누구지? 처음 보는 얼굴인데.
신제윤이 살짝 웃으면서, 마주 오는 남자에게 다가가 먼저 악수를 청했다.
“민 의원님. 여기서 뵐 줄은.”
차현은 그 인사 덕분에 찬찬히 낯선 남자를 살펴볼 수 있었다. 초로의 중년 남성은, 자켓에 분명 국회의원 뱃지를 달고 있었다. 코트로 덮어서 그냥 스쳐 지나가는 이들은 무시할 수도 있었지만, 분명 악수할 때 슬쩍 드러난 그걸 차현은 허투루 놓치지 않았다. 그런데, 신제윤을 마주하던 다른 어떤 사람들과도 분명히 다른 태도–아니, 이건 마력?
남자도 신제윤과 악수를 하고 나서는 곧장 차현에게 시선을 옮겼다. 서로 탐색하려는 시선이 오가려던 때, 제윤이 타이밍 좋게 둘 사이에 끼어들었다.

“민 의원님, 여긴 제 비서로 일하고 있는 권차현 주무관입니다. 차현 씨, 이 쪽은–.”

아, 생각났다. AI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내 비례대표로 당선되었다던 국회의원이었다. 차현은 H대학교에서 AI공학을 가르친다는 그의 강연 영상을 유튜브로 본 기억을 떠올렸다. 그녀가, 능숙하게 남자가 인사를 위해 뻗은 손을 잡았다. 손바닥에 약간 굳은 살이 박혀있는, 단단한 손이 그녀를 탐색하려는 듯 세게 쥐었다가 이내 놓았다.

“민도언 의원님이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관리국 총괄본부장 비서실에서 근무 중인 권차현이라고 합니다.”
그녀는 일부러 영업용 스마일을 장착했다. 손끝을 통해 느낀 것은 그의 손바닥 굳은 살만이 아니었다.

이 남자, 마법사였다.
마법사인데, AI 공학을 전공해 미국에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로 재직 중이었고, 심지어 지금은 국회의원인데? 신제윤, 대체 어떤 사람을 알고 있는거야?

“민 의원님은 우리 관리국의 일에 전면적으로 협조해주시는 분입니다. 앞으로 종종 연락하게 될겁니다. 의원님, 이제 본부장실로 전화하면 차현 씨가 먼저 받을텐데, 서운하진 않으시겠죠?” 제윤이 다른 사람을 대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태도로, 나름의 우스개소리를 건넸다.

“그럴리가. 그나저나, 권 주무관님이 경계를 하고 계시는 것 같은데–.”
이런, 들켰다. 차현은 자신의 생각을 그대로 들킨 것이 민망해 얼굴을 붉혔다. 마법사, 국회의원, AI 공학자, 제윤과 아는 사이. 이 키워드들을 손에 쥐고도 도출할 수 있는게 하나도 없다는 점이 그녀의 얼굴 위로 그대로 떠오른 듯 했다. 민도언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가볍게 제윤의 어깨를 두드렸다. 그만큼 친한 사이라는 뜻인가?

“신제윤 본부장은 제 후임입니다. 과거에 저도, 관리국 본부장으로 일했었죠.”
헐. 갑자기 밝혀진 사실에 차현이 입을 떡 하고 벌리자, 민도언은 아주 재미난걸 봤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그의 웃음소리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세 사람을 주목할 법도 했지만, 의외로 아무도 셋을 바라보지 않았다. 보기는 커녕, 아예 공간을 잘라낸 듯 아무 일도 벌어지지 않았다. 차현은 뒤늦게, 민도언이 지금 이 세 사람이 서 있는 아주 작은 공간만 분리해서 결계를 쳐 놨다는 사실을 알아챘다.

“그러니 너무 경계하진 마시길. 그런데, 두 사람–이 시기에 윤중로라니. 데이트라도 하는건가?”

“그런건 아니–.” 차현이 대꾸하려던걸, 제윤이 가로막았다.
“복지부 건은 협조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덕분에 데이터는 무사히 배포했습니다.”

데이터? 복지부? 협조? 이게 다 무슨 소리야? 차현은 복귀하는 길에 신제윤에게 물어볼게 하나 더 늘어난 사실에, 그의 습관처럼 이마를 손으로 짚고 싶어졌다. 민도언은 별 일 아니라는 듯 어깨를 으쓱할 뿐이었다.
“결과가 나오면 내게도 반드시 알려주게. 나도 그 일엔 관심이 많거든.”

“예, 꼭 전달드리죠. 그럼, 시간이 다 되어서 먼저 돌아가보겠습니다.”
“그래, 알겠네. 다음엔 의원회관으로 만나러 오게, 기다릴테니까. 권 주무관님, 다음에 또 뵙길 고대하고 있겠습니다.”

일순간, 민도언이 쳐 두었던 결계마법이 풀리자 사람들이 민 의원을 알아본 듯 그에게 하나 둘 다가가기 시작했다. 차현은 잽싸게 자기 손을 잡고 자리를 벗어나는 신제윤에게 그대로 이끌리듯 걸어가며, 한 번 뒤돌아서 민 의원 쪽을 바라보았다.

이마가 드러난 헤어스타일은 단정함을 보여주고 있었고, 검은색 수트 위에 걸친 회색 코트는 자신감이었다. 어딘가 신제윤을 닮은 듯한 스타일링. 그녀는 이제 신제윤에게 시선을 옮겼다. 그러다 갑자기 웃음이 나왔다.

“본부장님, 저 분이 롤모델이셨죠?”
그녀의 말에 이제 막 운전석에 앉아 시동을 걸려던 신제윤이 고개를 돌려 빤히 차현을 바라보았다.
“왜 그렇게 생각하지?”
“말투는 많이 다르지만 스타일이니나 행동이 저 분이랑 비슷한 것 같아서요. 그게 아니어도 여쭤볼게 좀 생겼어요. 민도언 의원님, 그냥 의원이 되신건 아니고 본부장님이랑 모종의 일이 있어서 나가신거죠?”
“누가 알려준건가?”
“아뇨, 민 의원님 표정에서요. 직감이랄까.”
“아직 알 필요는 없어.” 제윤이 차갑게 대꾸하며, 악셀을 부드럽게 밟았다. “언젠가 알게 되더라도, 그게 지금일 필요는 없지.”
“치사하시네요.” 차현이 가볍게 대꾸했다. 그녀의 무릎 위에는 아까 제윤이 그녀를 위해 올려준, 그의 트렌치코트가 덮여 있었다. 신제윤이 자주 쓰는 향수의 향기가 차현의 코끝을 간질였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그게 싫지 않았다.
그간 차현이 겪은 신제윤 본부장은, 직원들에게 이렇게까지 신경을 써 주는 사람이 아니었다. 오히려, 무관심하다는 표현이 어울릴 정도로 다른 이들을 ‘사소하게’ 취급했다. 그런데, 그런 남자가 아까 회의실에서는 차현에게 성희롱을 일삼는 남자를 권위로 찍어 눌렀고, 사진을 찍겠다며 접근하는 남자에게서 자신을 아예 떼어 놓았다. 그냥 단순한 직원 보호의 일종이겠지.
‘한 번 차였으니, 두 번째 고백은 없다’고 당당하게 선언하긴 했지만, 마음이 흔들리는 것까지는 어쩔 수가 없었다.
‘취향이긴 하니까.’
마음을 주지 않겠다고 다짐하긴 했어도, 취향이 아니게 되는 것까지는 아니라고–스스로를 속이며, 차현은 손 안에 아까 제윤이 만들어 준 작은 공을 굴렸다. 안에서 화사한 벚꽃잎이 흩날렸다. 그녀는 이 공을 언제까지고 자신이 소중하게 보관하게 될 거란 느낌이 들었다.

 

5.4

윤상규의 걸음은 회의실에 가까이 갈 수록 빨라지고 있었다.

이미 오전부터 기분이 몹시 좋지 않았다. 늘 승진후보자 명부에서 1등으로 올라가 있던 자신의 이름이, 저 맨 밑바닥에 처박힌 것을 보고 화가 나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갑자기 특수인원관리국의 회의 배석자에서 자기 이름이 빠져있다는걸, 한참 뒤에야 알게 된 것이다. 애초에, 그가 들어올 자리가 아니라는 것처럼.

특수인원관리국 총괄 본부장은 오늘 회의의 배석자 명단에 없었지만, 그 비서인 여자의 이름이 있었다. 그것도 계약직 주제에 ‘총괄 본부장 업무 대행’이란 이름으로. 분명 승진 명부에서 밀린 것도, 원래 장관급인 그 회의에서 이름이 빠진 일도 모두 그 여자가 저지른 일이라고, 그는 굳게 믿었다. 자기가 그런 모욕을 당했으니, 상관인 신제윤에게 달라붙어서 ‘저 새끼를 조져달라,’뭐 그런 말이라도 한거겠지.

‘그런 식으로 남의 앞길을 막으려고 해? 기간제 주제에?’

그의 화는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결국, 회의장에 도착해 문을 여는 거친 손길에 그 감정이 고스란히 실렸다.

그런데, 그 회의실에 앉아있던 자들은 의외로 자기가 속한 기관의 책임자였다. 복지부 장관, 그 옆에 차관, 또 그 옆에는 총무과장.

그들을 마주보고 앉아 있어서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분명히 낯선 남성의 실루엣이 하나 있었다. 검은색 셔츠를 입은 남자는 윤상규가 큰 소리를 내며 회의실에 명백히 ‘쳐들어’ 왔는데도, 조금의 동요 없이–뒤돌아보지도 않았다. 오히려 당황한 것은, 기세등등한 윤상규의 태도를 본 복지부 장관 쪽이었다. 그는 그 점을 이해할 수 없었다. 마주보고 앉은 남자가 대통령 아들이라도 되나? 그렇게 생각하며 그는 검은 셔츠를 입은 남자의 머리를 한 대 후려 치려고 시도했다. 그가 누구건 간에, 특수인원관리국 사람이라면 본보기를 보여줄 생각이었다.

“이래서 우리 본부장 비서님이 오지 않겠다고 했군요.”

순식간이었다. 윤상규의 그림자 속에서, 검고 어두운 손들이 튀어나와 그의 온몸을 결박하고 무릎을 꿇렸다. 온 몸이 굳고 숨이 컥, 하고 막혔다. 밭은 숨을 토해낸 윤상규에게 여전히 시선을 두지 않은 불명의 남자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의 장관을 보며 또박또박 할 말을 했다.

“직원들에 대한 교육이 더 필요할 것 같지 않습니까? 장관님.”

말투는 나긋나긋 했지만 결코 부드러운 말이 아니었다.

“아니면, 복지부 직원들은 다른 공무원에게 폭력을 행사해도 면책특권이 있는지요?”

“무, 무슨 말씀을 하시는 건지 모르겠습니다만.”

늘 윤상규의 앞에서 거드름을 피우며 잘난체 하던 장관의 목소리가 떨리고 있었다.

“얼마 전, 이 건물 제7회의실에서 초소형 카메라 장치를 발견했다는 보고를 들으셨다고–제가 전달받았습니다. 그 카메라에 찍힌게, 우리 직원이더군요. 왜 그 사실을 숨기셨습니까?”

7회의실, 카메라. 그 말을 듣자 윤상규가 몸부림쳤다. 설마, 그게 들킨거야? 그의 움직임을 감지한 그림자가 윤상규의 몸을 더 거세게 옥죄었다. 이제는 숨을 쉬는걸 포기해야 할 만큼.

“정기적으로 실시하는 몰카 탐지였고, 전파로 데이터를 전송하는 형태라 주인도, 피해자도 알 수 없었습니다. 그게 문제가 됩니까?”

“네, 충분히 문제가 됩니다. 제가 전달받은 몰카 탐지 결과 보고서에는, 카메라는 초소형 기록장치가 포함되어 있었고 그 레코드를 살펴본 결과, 일주일 전 특수인원관리국 총괄본부장과 그 비서가 동행하던 날 회의 기록이 존재했었다–더군요.”

“그럼 단순히 회의 기록이었던게 아니겠습니까? 아시다시피 장시간 회의는 기록을 위해 녹화를 하기도 합니다.”

“단순히 회의 기록이었다면 몰래 숨겨놨을리가 없으실텐데요. 그 쪽 직원은 감싸야겠고, 우리 직원은 무슨 짓을 당하든 상관이 없다 이겁니까?”

검은 남자는 공중에서 파일철을 하나 꺼내, 장관과 차관 앞에 꺼냈다. 그들이 파일철 안에 있던 사진을 보자마자 동시에 탄식을 내뱉으며 이마를 짚었다. 이건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증거였다. 영상 캡쳐 아래에 타임레코드가 또렷이 남아있었고, 남자가 보여준 사진엔 그날 회의에 참석한–권차현이 또렷이 담겨 있었다. 그리고 결정적인 증거. 카메라를 세팅하기 위해 잠시 렌즈가 자기 쪽으로 돌려졌을 때 비춘–윤상규의 얼굴.

“이 자가 우리 직원의 신체를 일부러 클로즈업 해서 찍은 사진은 증거용으로 인쇄할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장관님, 차관님. 두 분 다 여기 카메라 세팅하는 얼굴이 누군지 아실겁니다. 지금 제가, 이렇게–보여드리고 있잖습니까?”

그가 그렇게 말하자, 윤상규의 그림자가 그를 장차관 앞에 끌고 나와 머리를 강제로 들게 만들었다. 장관과 차관이 이제는 매섭게 그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는 머릿속이 새하얘진다는게, 어떤 느낌인지 태어나서 처음으로 깨닫는 중이었다.

회의 직후 몰카 탐지를 한단 이야길 듣고 겨우, 메모리만 제 때 회수했었다. 녹화장치를 그 회의실에서 들고 나가면, 아무리 몰카라 해도 회의실 전체를 촬영하는 CCTV에 걸릴 염려가 있었다. 자기를 공개적으로 모욕한 여자였으니, AI로 포르노랑 합성해 딥페이크 포르노를 만들어 온라인에 뿌려버릴 생각이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얼굴과 목소리를 영상에 합성하려고 할 때마다 프로그램이 멈추었다. 고성능 그래픽카드가 달려 있는 최고 사양의 PC였음에도, 종내에는 컴퓨터 전원이 계속 꺼지다가, 결국 완전히 고장나버려서 영상은 제대로 만들지도 못했다. 자기 앞날을 망친 여자한테 복수도 제대로 하지 못했는데, 믿을 수 없게도 그가 회수하기 이전에 메모리를 빼내 복사한 누군가가 있는 듯 했다. 관리국인가? 아니면, 복지부 내에–설마.

“관리국은 이 상황에 대해서, 복지부의 공식적인 해명과 가해자의 처벌을 요구합니다. 이행하시지 않을 경우, 이후 관리국의 협조는 없습니다.”

윤상규는 그 순간에도, 복지부 장관이 자신의 편을 들어 줄거라 생각했다. 마법사라고 지칭하는 미친 놈들 따위의 협조를 보통 정부 조직에서 왜 필요로 한다는 말인가. 그리고 몰카는, 그냥 남자가 호기심에 저지른 일이라 말하며 두둔해 주면 그만이었다. 왜냐하면, 자긴 최연소 6급 승진자에 부모의 재력과 명망도 두터운 복지부의 에이스 직원이었으니까. 곧, 사무관으로 승진해서 복지부 장관의 야망에 날개를 달아 줄 남자였으니까.

“혹시, 신제윤 본부장이 이 일을 알고 있습니까.”

이 상황에서 왜, 그 싸가지 없는 놈의 안부를 묻는거지? 윤상규는 평생 이해할 기회를 갖지 못할 터였다.

“아뇨. 하지만 장관님께서 사과와 처벌을 거부하신다면, 즉시 보고드리기 위해 준비는 해 두었습니다. 장관님, 저는 이번 일이 커지는걸 원하지 않습니다. 더불어, 우리 직원도 보호해야겠고요.”

“......”

“사과하도록 지시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저 직원은, 징계를 받게 되면 앞으로의 공직생활 불리해집니다. 어떻게, 선처해주시면 안되겠습니까.”

“내가 왜 사과 따윌 해? 그깟 몰카, 너도 같은 남자니까 이해할 거 아냐? 그 년, 그런 몸을 가지고 본부장 뿐만 아니라 다른 남자들이랑도 재미보고 다녔나보지? 너도 그 본부장이랑 구멍동서라도 되냐?”

윤상규의 상스러운 소리에 장관이 눈살을 찌푸렸다. 그러자 낯선 남자가 몸을 일으켰고, 윤상규는 장관과 대등하게–아니, 협박을 하고 있는 검은 셔츠 남자의 얼굴을 볼 수 있었다. 어딘가 신제윤과 닮은 듯한 외모. 그보다는 더 차가운, 마치 죽음을 의인화한다면 그런 느낌일 것 같은 얼굴이–미소지은 채 자신을 바라보고 있었다. 분명 입꼬리를 올린 미소였는데, 즐거움이나 다른 어떤 감정이 조금도 담겨있지 않았다.

“생각이…바뀌었습니다.” 남자가 성큼성큼, 여전히 무릎이 꿇려진 상태의 윤상규에게 다가와 허리를 살짝 숙여 시선을 맞추었다. “이런 사람의 사과는 우리 직원에게 전달해 줄 가치도 안느껴지는군요.”

“이 미친 짓부터 그만해!” 이제 그림자는 윤상규의 몸 속에 손을 넣어, 그의 심장을 옥죄고 있었다. 조금만 더 세게 쥐면, 터트릴 수 있을 만큼. 숨이 멎을 것만 같은 고통에 그가 몸부림치기 시작했다.

“윤상규 씨. 우리 직원 영상 찍어서, 얼굴이랑 목소리만 따고, 포르노랑 합성해서 온라인에 뿌리려고 했죠?” 자기가 하려던 일을 그대로 간파당한 윤상규의 동공이 커다래졌다. 시도는 했지만, 실패했던 일인데 이 남자가 어떻게 그 사실을 알고 있다는 말인가. “당신이 한 짓은 한 사람의 영혼을 산산조각 내는 일입니다. 그런 짓을 하려고 했으면서, 우리 직원을 모욕하면 안되죠. 사람 하나를 손쉽게 죽이려고 했으면서, 자기는 살길 바랍니까?”

“내가 무슨–난 아무도 죽이지, 컥!” 그의 발악에 기어이 그림자가 심장을 콱 움켜쥐었다. 동시에, 남자의 눈에서 미소가 싹 사라졌다.

“내가 모를 줄 알았나본데……윤상규 씨. 그걸 리벤지 포르노라 하고, 인간의 존엄성을 파괴하는 행위라고 지칭합니다. 그리고 당신 같은 인간이 그걸 만들 수 없도록, 관리국은 ‘우리 직원들’의 존엄을 지키기 위해 마법을 씁니다. 당신이 우리 직원 얼굴로 합성하려던 시도도 다 포착되었고, 기록으로도 남아있고요. 복지부 여직원들이랑 찍은 섹스영상 온라인에 올린 내역도 여기 계신 장차관님께 보고드릴까요? 자기 얼굴만 모자이크 아주 잘 되어 있던데. 당신네 팀 거쳐간 여직원 두 명, 그거 알고 자살한거 알고 있나?”

“당장 닥쳐!” 그가 헐떡이면서도 소리지르는 것을 그만두지 않자, 남자는 흥미롭다는 듯 그림자를 일순간 거둬들였다. 식은땀 범벅이 된 윤상규가 바닥에 고꾸라지듯 쓰러졌다. 물론 그는 알고 있었다. 자기가 온라인에 공유한 섹스 동영상에 얼굴이 나온걸 우연히 알게 된 여직원 둘이 자살했다는거. 그런데 그게 무슨 대수란 말인가. 죽은 년들이 문제였지, 자신은 잘못한게 없었다. 같이 즐겨놓고, 성폭행으로 고발하겠다고 달려든 여자들이었다. 그년들은 뒤졌고, 모든게 탄탄대로인데, 이제와서, 마법사라는 놈이 나타나 윤상규 자신의 평온한 일상을 산산조각 내고 있었다.

“딱히 반성할 기미는 안보이는군요, 역시나.”

남자가 손을 탁탁 털어내더니, 윤상규를 그대로 지나친 채 아직 회의실 소파에 앉아있는 장관과 차관을 향해 걸어갔다. 몇 걸음 내딛지 않았는데도, 죽음과 같은 무거운 발소리가 났다. 심지어 회의실 바닥은 카펫인데도 불구하고.

“저는 이 사건에 대해 신제윤 본부장에게 보고해야겠습니다. 이후는 여러분들이 알아서 처리하십시오.”

“그것만은 제발……어떻게 안되겠습니까.”

“일이 해결되지 않았으니, 저도 응당 제 상사한테 보고해야지요. 그리고, 저 수준낮은 사람도 제 직원이라고 감싸는 그 작태, 잘 봤습니다. 그럼, 수고하십시오. 다음 회의는 없을겁니다.”

그리고 그가 소름끼치게, 그림자 속으로 살짝 걸음을 옮기더니 그 안으로 걸어들어가 모습을 감췄다. 방 안은 무서운 고요가 가라앉았다. 복지부 장관이 가장 먼저 정신을 차렸다. 그의 눈이 분노를 쏟아낼 대상을 찾고 있었다. 그리고 그건 당연하게도, 바닥에 나뒹굴고 있는 윤상규였다.

“보안팀 전화해서 이 미친새끼 당장 끌어내. 내 눈 앞에서 치워. 징계위 열어서 조지든, 옥상에서 밀어 떨어뜨리든 알아서 해. 그리고, 몰카 탐지했던 총무과 담당자 당장 데리고 와. 지금 보니 그 새끼도 공범인것 같은데!”

이제는 누굴 감싸줄 상황이 아니라는걸 알아차린 인사과장이 부리나케 회의실을 빠져나갔다. 차관은 바로 신제윤에게 연결되는 직통 전화번호를 찾아 다급하게 눌렀지만, 그는 받지 않았다. 장관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실을 빙글빙글 돌면서 알 수 없는 말을 중얼거리고 있었다. 이 혼돈의 광경에서, 바닥에 쓰러져 정신을 잃은 윤상규를 신경쓰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한편, 특수인원관리국 총무과로 돌아온 신무영은 자기 자리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애초에 그는 사과를 받아낼 생각이 없었다. 그리고 그게 옳았다. 그의 막내동생은 자기 비서를 그런 식으로 다룬 남자를 가만히 두지 않을 사람이었으니까. 그게 ‘내 사람’이건, ‘내 사랑’이건 간에.

그래도 복지부 장관 앞에서 한 말이 있으니, 보고를 아예 건너 뛸 순 없었다. 그는 영상을 복제해 둔 ‘구슬’과 복지부 비공개 문서였던 몰카 탐지 결과 보고서를 챙겨들고 총괄본부장실로 향했다. 비서실에 있던 차현이 그를 보고 환한 미소로 맞이해 주는 것에 괜한 죄책감을 느꼈다. 그래서 무영은, 집무실에 들어가자 마자 방음마법을 걸었다.

그 마법을 인지한 제윤이 무언가 들여다 보고 있던 서류에서 고개를 들어, 무영을 바라보았다.

“무슨 일이지?”

“대면 보고해야만 하는 일이 있어서.” 평소라면 우스개소리라도 한 마디 섞었을텐데, 이건 그럴 만한 주제에서 완전히 벗어나 있었다. 무영의 손에 쥐어진 환한 빛깔의 구슬을 보면서 제윤은 뭔가 직감한 듯, 그에게서 그걸 받아 들었다. 그건 램프를 통하지 않고, 손에 쥐기만 해도 안에 담긴 영상을 뇌 내에서 재생할 수 있는 마법사들만의 기록 보존 장치였다.

윤상규가 간과한게 있다면, 복지부 안에도 마법사가 있다는 점이었다. 그리고 이 구슬은 무영만이 알고 있는 ‘모종의 루트’를 통해 그에게 전달 된 것이었다.

그런데, 무영 조차도 영상을 몇 초간 재생하던 신제윤이 이내 손아귀 힘으로 그 구슬을 터트릴 것이라곤 생각하지 못했다. 그는 제윤의 얼굴이 약간 하얗게 질린 것을 알아챘다.

“이거, 권차현도 알고 있나?”

“미치지 않고서야 그런 짓은 안해. 그래서 방음 마법도 걸어 둔 거고.”

“절대 못 보게 해. 복사본은 없겠지?”

“물론. 방금 전 복지부 쪽에 징계 요구하고 온 참이야. 그 쪽에 ‘협박’도 하고 왔고.”

평소의 신제윤이라면, 무영의 월권이나 다름 없는 말에 ‘적당히 해라,’는 경고의 말을 한 번은 할 법도 했는데–이번만큼은 그런 말이 없었다. 오히려 그의 낯빛이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래서 무영은 그 속에 든 감정이며 생각들을 쉽게 읽어낼 수 있었다.

늘 무미건조하게 업무만 생각하고 달려오던 동생의 얼굴에 대놓고 금이 가 있었다. 무영은 막내동생의 비슷한 표정을 아주 오래 전에 딱 한 번 봤었다. 관리국 연구과에서 이관현을 축출해 냈을 때. 그 이후로는 처음이었다.

신제윤은 자기 사람이라 받아들인 이들에게는 온전한 신뢰를 주었다. 처음엔 관현이었고, 이번에는 차현이었다. 본인은 ‘효율적’, 아니면 ‘업무적’인 판단이라 착각하는 모양이지만 무영의 눈에는 아니었다.

‘내가 그래서 전에 말하지 않았나. 사랑에 빠질거라고. 아니, 이미 빠진건가.’

그가 읽어낸 제윤의 표정은, 분명 ‘사랑하는 사람이 모욕당한 것에 분노를 느끼는’ 사람의 표정이었다. 단순히 내 사람이 무시당하고 모멸감을 받았다는 사실이 아니라.

“일이 해결될 때까지는, 복지부에서 회의 요청이 와도 내 쪽에서 거절해 두도록 할게.”

차현이 알면, 다음 회의 일정이 왜 안 잡히냐고 의아해 할테니 애초에 그런 연락 자체가 오지 않도록 그럴싸한 명분도 만들어 둘 생각이었다.

무영은 쓴웃음을 지으며, 화를 가라앉히느라 애쓰는 제윤을 두고 조용히 집무실을 나섰다. 차현이 의아하다는 듯 그에게 다가왔다. 어쩐지 그녀의 웃는 눈을 보자, 무영이 죄책감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바로 가시게요? 커피, 준비할까 여쭤보려고 했는데 방음 마법이 걸려있어서.”

“조금 사적인 이야기들을 하느라 그랬어요. 오늘은 별 일 없었나요? 외부 일정도 없는 것 같던데.” 제발, 그런 이야기를 막 나누고 나온 자신의 표정이 차현에게 들키지 않길 바랐다. 무영은 감정을 감추는 것에 제윤보다 훨씬 익숙했지만, 이번에는 영 자신이 없었다. 무영이야말로, 윤상규가 찍은 차현의 영상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확인한 사람이었기에–손이 떨리는 것을 겨우 감추어야 했다.

그런데 차현이, 서랍을 뒤적거리더니 무영의 손바닥 위에 딸기사탕을 하나 떨어뜨렸다.

“사탕?”

“당 떨어지셨나봐요, 손이 떨리는 것 같아서.”

감이 좋은건지, 아니면 순진한건지. 차현의 이 단순한 행동에 무영은 허, 하고 웃음을 내뱉고 말았다. 그 웃음에 도리어 자신이 더 놀랐다.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고 싶은 충동을 꾹 누른 채, 무영이 그녀의 앞에서 미소를 지었다. 아까 그 남자에게 보여준 것과는 다른, 진심을 담아서.

“달달해 보여요. 잘 먹을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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