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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views/헌내기 사서의 독서기록

달을 먹다, 김진규(2007)

alicekim245 2014. 5. 14. 12:00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다른 사람에게 선물해 준 최초의 책이다. 정작 받은 녀석은 무슨 이야기인지 모르겠다며 투덜거렸지만. 2007년도면 내가 고등학생이었을 때다. 
 
나는 그 때도 서점에 가는 것을 좋아했다. 부모님은 책장에 더는 들어갈 공간이 없다며 내가 책을 구매하는 것을 맹렬히 반대하셨지만(지금도 그렇긴 하지만), 기어이 사들고 집에 들어가선 몇날 며칠을 계속 이 책만 읽었다. 처음에는 이해가 잘 되지 않아서였고, 그 이후로는 작가의 문체와 스토리텔링에 완전히 매료되어서였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이 책은 심지어 한 해 동안 나와 함께 미국에 와 있었다. 정말 소중한 책이고 자주 읽는 책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소장중인 책 중에서 가장 손때가 많이 타서 책이 부풀어 오르고 손가락이 자주 닿는 자리는 새까맣게 변해버렸다. 
 

 

솔직히 제 입으론 '사랑 이야기는 지겨워'라고 말하면서도 번번히 집어드는 책이 이런 류인걸 보면 참 기가 막히기도 한다. 
 
그래도 다 다른 것을 어찌하랴, 받아들이는 수밖에는. 내가 그 때까지 읽은 책 중에 두번째로(첫번째는 <낙신부>) 문체가 독특했다. 어쩌면 그 점에 처음으로 나를 매료시켰는지도 모른다. 지금도 간간히 짧은 글을 쓰다 보면 이 책에서의 표현, 분위기가 묻어나와 당황하곤 하니까. 그정도로 나는 이 책에 완전히 몰두해 있었다. 으스스한(?) 표지는 그렇다손 치더라도 묘연에서 희우, 난이로 이어지는 그 이야기들이 참 매혹적이었다.정작 속에 들어앉은 본인들은 아프고 답답했을지 모르나 지켜보는 입장에서야 편하게 바라볼 수 있는 것이므로.
 
묘연의 담담한 글체가 마음에 들어 읽기에 좋았다. 제가 낳은 희우로부터도, 그리고 마음으로 기른 난이에게도. 뿌리가 같으니 풀어내는 방식도 닮았는가 싶을 정도였다(물론 작가가 한 명이니까, 그런 현실적인 서술도 가능하지만). 자칫하다 보면 글 속에서 길을 잃고 헤매기가 쉬운데, 최소한 두 번 이상은 유의깊게 읽어야 인물 관계도가 머릿속에서 그려지며 그제야 명쾌하게 읽을 수가 있다. 묘연과 현각 스님, 하연은 아버지가 같고 희우와 난이는 그러므로 이루어져서는 안될 친족 관계. 끝내 하연을 잡아먹은 최약국, 그리고 최약국을 죽어가게 만들 정도로 그에게 소중했던, 그래서 유지할 줄을 몰랐던 후인까지. 여러 인물들이 제 이야기를 써내고 있으니 쉽사리 지쳐버리는 것도 이해가 간다. (엇, 스포일러!) 
 
희우가 나중에 무너지긴 하였으나 그 온전한 결말까지는 알 수가 없어 미약하게나마 상상의 나래를 펼치기도 하였다. 만약, 만약 그리 하고자 한들 세상의 벽이 높으니 제 목숨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은 어려웠을 것이다. <저승차사 화율의 마지막 선택>에서 징신과 화율(원래 이름이 뭐더라...?)이 그리 죽었던 것처럼. 물론 이 쪽은 타의에 의한 것이었지만 그거나 이거나 받아들여질 수 없기는 매한가지일 터. 
 
 난이가 이미 '누구'로 불리길 포기하고 그예 '무엇'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였듯이 요즈음 들어서는 나도 '누구네 딸'이 아닌 온전한 '누군가'가 되고싶다는 생각이 들기도. 난이가 정성스레 만들어 준 화차를 마시는 사람들의 입가에 번진 미소는, 희우의 것이어야 했을까. 현각 스님은 몇 번이나 넘어져야 하는 것일까. 
 
한 뿌리에서 시작되어 여러 뿌리로 나뉘는 동안에도 처음에 묶여있는 듯한 기분이 들어 께림칙하기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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