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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둘이 삽니다,1 : 결혼식 이야기

alicekim245 2025. 6. 8. 17:15

결혼식이란 대형 이벤트를 한 번 치른지는 몇 달 되었는데, 생활에 적응도 해야하고 나름대로 하고싶은거 열심히 하느라 블로그에 글을 남길 틈이 없었다. 일요일 낮에 청소며 이것저것 다 하고 게임도 하다가 누우니까 잠이 오는데, 글자라도 좀 써야지 그냥 보내는건 아쉬워서 서재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요즈음 기사로 많이 보이는게, 드레스 값이더라.
나만 해도 대여를 알아보러 다녔을 때 통상 200만원에서 250만원까지 본식 드레스 대여비를 불렀었다. 대부분은 '인생에 한 번 뿐인 결혼식'이란 이유인것 같고, 특정 브랜드를 선호하는 경우에는 그렇게 지출을 한다고 들었다. 그런데 나는 다르게 접근했다.

1. 다른 사람 입던 대여용 드레스를 한 번 입겠다고 내 월급만큼의 돈을 왜 써야하나?
2. 솔직히 드레스 입혀주는 비용 주는건 좀 이해됨(드레스 구조 상 혼자 입을 수가 없음)
3. 가장 바쁠 때라 피팅이며 드레스 가봉하러 어디 갈 여유가 없음(주말엔 지쳐서 쉬어야함)
4. 어차피 내 드레스는 하객 아무도 기억 못함
5. 결혼식은 인생에 한 번이 아닐 수도 있다 ← 여기서 이상하단 소리 한 번 더 들음

하여, 나는 홍대 인근의 '숲속 드레스'라는 곳에서 본식용 드레스와 결혼식때 신는 일명 '웨딩슈즈', 그리고 베일과 머리장식까지 60만원쯤 되는 금액으로 해결했다. 대여료로 나갈 돈을 1/3 이상 절약했고, 신혼여행 비용에 더 지출할 여유가 생겼다.
자기 만족감의 영역이긴 한데, 드레스 길이가 아주 적당한데다 신랑이 드레스 뒤판의 코르셋을 잘 묶어줘서(운동화 끈 묶는것과 똑같음) 드레스 뻥뻥 걷어차면서 헬퍼도 없이 식을 잘 치를 수 있었다.
솔직히 두 번 하라고 하면 안할거긴 한데, 드레스는 또 사서 입을 것 같다. 심지어 드레스 안에 파니에(아마도 패티코트 같은?)도 입으라고 보내주셨는데 그거 안 써도 될 만큼 치맛단이 풍성했고, 적당히 조명을 받아 반짝여서 예뻤다. 일단 내 소유라서 막 다룰 수 있다는게 가장 큰 장점 + 그리고 중고로 팔아버릴 수 있다는 것도 장점.

아마도 결혼식이라는 일회용 쇼에 그다지 중점을 두지 않아서 가능했던 것 같다. 주변에서도 특이하단 소릴 제법 들었는데, 뭐 다들 나한테 훈수 두는 것들이 '폐백 해서 어른들한테 돈 많이 받아내라' '예물 예단 혼수 많이 받아내라' 뭐 이런 헛소리였던걸 생각하면 그냥 귀 싹 닫고 내가 하고싶은대로 한게 가장 옳았다는 생각이 든다. 결혼식은 한 번이 아닐 수도 있고, 어차피 한 번 하고 치우는건데 보이는데 거금을 들일 바에는 다른 곳에 투자하자데 나는 우선순위를 두었다.
아무튼 드레스 구입하는거, 고민한다면 홍대의 숲속드레스 추천! 예약해서 방문하면 몇 벌의 드레스를 입어볼 수 있었는데 본식용 드레스는 가격대가 좀 높지만 그래도 대여가보다는 훨씬 낫고 + 그래도 고가이니 한 번 입어보고 고를 수 있다는게 정말 만족도가 높은 구매로 이어졌다.

드레스 다음엔 스튜디오 인데, 이것도 아주 심플한 사고방식을 거쳐서 결정했다.

1. 스튜디오는 안하고 싶었음(시간 체력 여유 모두 여기 쏟기 싫었음)
2. 본식 촬영할 사진작가는 섭외해 둔 상태
3. 포토테이블에 그냥 우리가 찍은 네컷만 편집해서 놔 볼까 하다가, 어차피 식 끝나고 인사드릴 때 입을 예복 비스무리한거(남편은 정장, 나는 원피스) 산 김에 본식 촬영하는 사진작가한테 가서 실내만 몇 장 찍자!

하여, 본식 촬영을 예약한 사진작가의 스튜디오에 가서 한시간 내에 깔끔하게 촬영을 했다. 배경만 제공되는 곳이라 조화 부케와, 촬영을 위해 산 모이사나이트 1캐럿 저렴한 반지만 소품으로 준비해갔다. 사진 고르는 것도 서로 마음에 드는 것 몇 컷을 고른 뒤, 공통적으로 고른건 바로 최종 수정 요청하고 나머지는 토론을 통한 선택. 
스튜디오 촬영 전에는 본식 메이크업을 예약한 메이크업 샵에서 촬영용 메이크업을 받았다. 본식 때 무슨 일이 생길지 모르니 한 번 받아보자!는 생각에서 그렇게 진행해봤는데, 결과는 꽤 만족! 스튜디오도, 메이크업도 상당히 만족스러웠다.

메이크업은 이 지역에 아주 유명한 곳이 있어서, 본식때 양가 혼주와 신랑신부 전부 예약하고 싶었는데 이미 몇 달부터 예약이 꽉 찬 곳이라 신랑신부만 겨우 본식 메이크업을 예약할 수 있었다. 다른 곳에 맡긴 혼주 메이크업은 굉장히 실망스러웠다. 온라인으로 찾아보고 나름 괜찮은 것 같아서 마음을 놓고 있었는데, 혼주 메이크업이 복병이 될 줄이야. 확실히 메이크업은 대도시에 잘 하는 분이 많은 것 같단...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해서 스튜디오, 드레스, 메이크업에 쓴 돈은 200만원이 되지 않았다.
어차피 홀 대여 비용은 대부분 식대고, 이건 하객들이 내 주신 축의금으로 다 커버되는 금액이라 계산에 넣을 생각이 들지 않았다.
(그리고 직장 다니면 알겠지만, 어차피 다 갚아야 되는 돈이다.)
식장은 조화로 세팅이 되어 있었지만, 아무래도 신부 부케나 신랑/혼주 부토니에는 신경쓰고 싶어서 40만원이란 거금을 지출했다. 그런데 그 돈이 정말 아깝지 않았다. 내가 본식날 메이크업 샵에 머리장식을 안 들고 갔기 때문(ㅋㅋㅋ)...플로리스트 님이 즉석에서 머리장식을 생화로 만들어주셔서 너무 예쁘게 사진이 잘 나왔다. 꽃도 부부-특히 신부의 이미지에 맞추어서 만들어주시는 분이라, 나는 다음에도 내가 결혼한 곳에서 식 준비하는 예비신부가 있으면 그 플로리스트님을 꼭 추천하리라 마음먹었다.
(심지어 본식 사진작가님이랑 자주 보시는 사이라 우리가 미처 못 챙긴 그분의 식권도 챙겨서 건네주셨다...!)

그리고 또 뭐가 있더라...
사회자와 축가 섭외는 따로 했다. 크몽이란 중개 플랫폼을 통해서였는데, 이 부분은 신랑이 협상의 전반을 맡아주었다. 특히 축가와 관련해서 당일날 진땀 뺄 에피소드가 있었는데, 하객들 모두 가장 인상깊은게 축가였다고 할 정도로 멋진 무대를 보여주셔서 만족하고 넘어가기로 했다. 와중에 신부(나)는 축가 펑크가 나면 '아모르 파티를 준비해달라'고 말했었던건 안비밀.

DVD촬영이나 아이폰 스냅도 있다고 들었는데, 나는 본식 스냅(원판) 촬영만 선택했다. 이미 여러 사람과 동시에 계약해서 관리하는 것도 힘든데, 그것까지 넣어서 피곤하고 싶지 않은 마음이 가장 컸고 - 먼저 식을 치른 내 형제가 '그런거 다 필요없다...'라는 아련한 멘트를 남긴 덕분이기도 하다. 남들이 다 하는 것 같은데 나는 안하고 싶은 것들이 상대적으로 많은 편인데, 신랑과 이런 면에서는 의견이 정말 잘 맞아서 다행이었다. 꼭 넣어야 하는 것만 딱딱 맞춰서 진행을 한 덕분에 식 자체를 준비하는데 드는 비용은 식대를 제외하면 1천만원을 넘지 않았다. 

생각나는 지출비용을 대충 정리해보면...

  • 드레스 일체(드레스, 웨딩슈즈, 베일, 장식): 60만원
  • 신랑 예복: 150만원(갤럭시)
  • 헤어메이크업(스튜디오&본식, 혼주포함): 95만원
  • 꽃(신부 부케, 신랑&혼주 부토니에): 40만원
  • 스튜디오 & 본식: 120만원
  • 사회자 & 축가: 90만원(둘 금액이 다름, 지방이라 교통비 포함)
  • 결혼반지: 85만원(미니골드)

위에 비용만 합하면 640만원 정도고, 그 외에 자잘하게 지출한 것이 있었다. 내가 산 소품(조화, 모이사나이트 반지)이라던가, 지방에서 오는 손님들을 위한 버스 대절비나 식사비는 제외했다. 저 비용은 순수하게 결혼식에만 든 비용이라고 할 수 있겠다.
(앞서 말했지만 대관료와 하객 식사비는 하객들이 내주신 축의금으로 전액 커버가 됐다)

저 결혼반지도, 처음엔 맞춤 해야 하는 줄 알고(?) 종로 금상가를 찾아갔더랬다. 그런데 디자인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 포기 후 홍대의 숲속드레스로 드레스를 보러 갔다. 그리고 집에 가기 위해 홍대 거리를 쭉 내려오는데 홍대역 인근 미니골드에서 눈이 번쩍 뜨인거다. 이건 내 반지다!하는 느낌? 그래서 그 길로 미니골드에 결혼반지를 주문하게 되었다.
신랑이 예전에 커플링을 분실한 전적도 있고, 반지란게 계속 착용하고 있는거라 스크래치가 생길 수 밖에 없다. 그리고 살이 찌거나 불의의 사고(?)가 생길 수 있으니 주문제작을 하거나 고가의 반지를 구입하기 보다는 기성품으로 갑시다!라는 나의 의견에 신랑이 동의해줘서 가능했다.

결혼식 당일엔 진짜 정신없었다. 애초에 결혼식 다가올 때부터 마음을 비웠다: 어차피 다 지나간다, 라고.
덕분에 드레스 자락 뻥뻥 걷어차며 식장 돌아다니다가 사진작가님한테 '신부대기실에 좀 계셔요...'란 소리도 듣고, 나는 재밌었다. 축가가 펑크 날 뻔 했던 신랑은 손님들께 인사를 제대로 드리지 못했다며 무척 아쉬워했지만. 우리 둘 다 식을 치르고 나서 한 생각은, '두 번은 못하겠다'였으니. 그래도 지나고 나서 돌이켜 보면, 서로 의견을 이야기하고 조정하는 과정을 거쳐서 별 탈 없이 결혼식까지 무사히 마칠 수 있었다. 나나 신랑 중 하나가 '이거 할래!' 모드였고 상대가 '그건 안돼!'모드였다면 서로 갈등이 첨예해져서 관계가 파탄날 수도 있지 않았을까?

우리는 정말 다른 성격과 성정을 지닌 사람들이다. 정말 단순한 예시로,
나는 닭가슴살을 좋아하지만 신랑은 닭가슴살 외의 모든 것을 좋아한다.
나는 콜라파고, 신랑은 사이다파다.
나는 집에서 음쓰와 욕실청소, 설거지를 맡고있고 신랑은 요리(조리)와 청소기를 담당하고 있다.
나는 될대로 되라(일명 C'est La Vie, 그게 삶이여!) 모드인데 신랑은 계획형이다.
너무 다른데 그 다른 부분이 서로를 보완할 수 있다는 걸 알고 있는 나이가 되어서, 이런저런 투닥거림은 있지만 아직은 재미있게 잘 지내고 있다.

그래서 우리의 결혼식 퇴장곡은 아이브의 'WOW'였다. 이마저도 문과인 나와 이과인 신랑은 가사로 투닥거렸다.

나: N극과 S극이니 가사대로 다른 것이 아니냐
신랑: 그렇지 않다, N극과 S극은 갖다놓으면 붙지 않느냐

혼자 사는 이야기로 100편을 채우지는 못했지만 다음 글부터는, '둘이 사는 이야기'로 찾아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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