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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95

alicekim245 2024. 12. 21. 08:25

가끔 "앨리스 씨는 게임 좋아해? 특이하네."란 얘길 들었는데, 요새는 그마저도 들을 일이 없다. 게임이 하나의 취미로 자리잡은 덕분일 수도 있고, 아니면 워낙 밖에 안다니니 그거라도 하는게 낫다는 판단 때문일지는 화자의 몫일 따름.

유튭에서 구독하는 계정에서 얼마전에 '빅 앰비션스'란 얼리 억세스 게임을 플레이하는 영상이 올라왔다. 뉴욕에서 알바부터 시작해 사업체를 경영해 나가는 게임인데, npc간 상호작용이 지극히 제한적인 것을 제외하면 트렌드에 기민하게 반응하고, 구입부터 재고 관리, 경영까지 전반적으로 즐길 수 있는 게임이 아닌가 싶다. 네이버 포인트가 많이 모여서 그걸로 저렴하게 결제한 뒤 틈틈이 플레이하고 있는데, 매번 머리를 써야 하는 부분이 고용인의 상태 및 수준이라던가 재고, 물류 이런거다 보니 "나는 사업을 절대 하면 안되겠구나"란 생각을 자연스럽게 하게 된다.

여러 조건을 두고 꼼꼼하게 비교하는 애인과는 달리, 나는 대충 봐서 내가 손해볼게 아니다 싶으면 그대로 추진해 버리는 스타일이라 '그렇게 하면 손해본다, 호구잡힌다'란 얘기를 종종 듣는다. 일종의 '덕을 쌓는다'는 느낌으로 내가 접근해서 그런 것 같기도 하다. 물건을 사는 일이거나, 업무에서도 대충 비슷한 이미지.

업무 얘기가 나와서 또 생각나는건데, 최근 어떤 쇼츠에서 '일이 하기 싫습니다'는 PD의 물음에(여기까지 쓰면서 기억났다. 최근 EBS에서 방영하면 쭉 보게 되는 PD로그란 프로그램) 스님이 이렇게 답하셨다. 시키니까 하기 싫은거라고. 인생은 하고 싶은 일을 해 나가고--스스로 할 수 있는 일을 해야하는건데 위에서 끌고 가니까 그렇게 하기 싫은거라고(기억에 의존이라 곡해가 있을 수 있음). 그런데 정말로, 나는 누가 시키는 일을 지독히 싫어한다. 최근에 내가 자체 컨텐츠를 만들기 위해 꽤 오래 작업하던게 있는데(합쳐서 PPT로 160장), 그것과 관련된 지적이 들어오니 아예 손을 놓고 싶은 기분까지 들었다. 장당 얼마 받아가면서 작업하는게 아니라, 그냥 업무분장 중에 내가 '이대로 두면 망하겠다'싶은게 있어서 알아서 개선하는 중이었다. 상사가 지시해서 만드는 것이 아니었는데, 이틀 전 비슷한 류의 지시가 내려오니 정말 하기 싫었다.
그래도 한 번 만들어두면 두고두고 내 자산과 평판이 될 것을 알기 때문에 억지로 주워삼켰다. 영어로 발표하는 일도, 처음에는 무섭고 도망가고 싶었는데 계속 나 스스로에게 다짐을 시키고 다독였다. '한 번만 하면 된다.'라고. 실제로 한 번 하고 나니 어떻게 더 개선해야 하는지 감도 잡혔고, 무엇보다 자신감이 생겼다. 나는 주어진 일을 내가 할 수 있는 선에서 최선을 다해 하고 있다는 자신감 말이다. 이건 살아가면서, 최소한은 직장에서 정말 중요한 점이다.

그렇다고 해서 내 능력 밖의 일을 할 수 있다고 덥석 맡아버리는 것은 전체 흐름에 있어서 혹이 될 수 있다. 자신의 역량과 한계를 어느정도는 알고 있어야 한다. 나는 숫자를 정말 못 다루고, 실제로 계산기에 입력하거나 듣고 바로 옮겨 적는데도 틀리게 쓰는 경우가 있다. 주변에 미리 고지를 했다. 그래도 업무상 내가 숫자를 다뤄야 하는 일이라면 몇 번이고 검증을 거쳐서 수행한다.

그래도 출근은 하기 싫다. 하루종일 놀고 먹고 건강할 수 있다면 참 좋을텐데. 그래서 일말의 희망을 가지고 복권을 산다. 나는 주로 토요일 오후쯤에 복권을 산다. 아주 작고 헛된 희망은 빨리 없어지면 좋을거라고 자조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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