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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93 본문
기분이 극적으로 널뛰기를 한 이틀.
어제는 일이 너무 복잡하고 힘들어서 정말 뛰어 내리고 싶단 생각까지 했는데, 오늘은 성취감을 안은 채 퇴근을 했다. 역시, 인생은 살고 봐야 아는거다.
하나 둘 모아둔 가전이 도대체 몇 종류인지. 식기세척기, 스팀 물걸레질이 되는 청소기, 에어드레서, 세탁기, 로봇청소기...특히 식기세척기는 내 삶의 질을 굉장히 향상시켜 주었다. 설거지가 귀찮아서 쌓아두기 보다는, 애벌세척을 한 뒤 타블렛 세제를 넣고 버튼만 누르면 되니 설거지를 귀찮아하지 않게 되었다. 덕분에 요새는 직장에 도시락을 싸서 들고 다닐 만큼 여유가 생겼다.
사실 여유가 생겼다기 보다는, 시간을 잘 분배해서 어떻게든 출근 전까지 하려던 일들을 다 마무리하고 나가는 것에 가깝다. 그나마도 반찬은 마트에서 사 온다. 마트에 제조소(?)가 있어서 직접 만든 물건이거나, 살균해서 공장에서 출고된 물건이거나, 혹은 본죽 같은 브랜드의 반찬을 쓰기도 한다. 최근에는 풀무원의 고추 장아찌가 너무 맛있어서 다 먹은 뒤 재구입을 했다. 요번에는 쌀이 떨어져서 구입하는 김에, 본죽 브랜드의 궁채 장아찌를 구입했다.
다행히 직장에는 전자렌지가 있고, 데워서 먹을 만한 여유공간도 있어서 요즘은 도시락 가방 들고 다니는 재미로도 회사를 간다. 이런 재미라도 있어야 뭐 사는게 덜 심심하지 않겠나. 직장인이 되고 나서는 방학이 존재하지 않기에, 하루하루 주어진 업무를 퀘스트 해결하듯이 치우다 보면 한 주가 금방 흘러간다. 일요일 밤에는 월요일이 오지 않았으면, 기도하는 주제에 어느샌가 '벌써 목요일인가?' 이러고 있는 어른의 삶을 살아가는 중이다.
직장에서 애를 먹었던 일은, 과거 선배들이 한 일들을 수습하는 것이었는데 다행히 직원분들이 손을 빌려주셔서 원활하게 처리 가능한 단계까지 올라왔다. 직장에서 말실수, 를 하지 않으려고 부던히 노력하는데 오늘 빈틈을 보이면 안되는 사람한테 빈틈을 좀 내보인 것 같아서 신경이 쓰인다. 하지만 뭐, 나는 나대로 잘 할거라고 생각한다. 임기응변이 뛰어난 사람 축에 속하는건, 내가 사회생활을 하면서 연기력이 더 늘어난 덕분일 수도 있고 '사람 하는 일은 사람이 다 수습 가능하다'는 이상한 모토를 견지하고 있어서일지도 모른다.
말 그대로 사람이 저지른 일은 사람이 수습할 수 있다. 직장에서는 더더욱.
업무용 다이어리 내년 것을 미리 샀는데, 올해 11월부터 기재 가능한 물건인 줄 오늘에서야 알았다. 와인색에서 짙은 완두콩 색으로 바뀐 업무 다이어리를 보면서, 어느새 이 직장이 내가 가장 오래 다닌 직장인가? 하는 의문을 품었는데 세어보니 3년 10개월, 1년 8개월, 그리고 지금 2년 3개월. 아직 전전 직장의 기록은 깨지 못했다. 그래도 직장이 있고, 작지만 소중한 급여가 있으니 이렇게 밤에 앉아서 자판을 두드리고 있으니 얼마나 감사한 삶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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