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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91 본문
요새는 나를 챙겨주는 일이 즐겁다. 전날 미리 해 둔 밥에, 마트에서 사 온 반찬 몇가지를 넣어 점심 도시락을 만드는 것이, 구운 달걀 두 개의 아침식사 뒤에 요구르트로 입가심을 하는 것이, 씻고 나서 정성스럽게 화장을 하는 것이 즐겁다.
한편으로는 뿌듯하다. 나 자신을 제대로 챙겨줄 수 있는 어른이 되어 가는구나 싶어서. 이십대 때의 나는 이런 즐거움을 제대로 알지 못했다. 하루하루 사는게 방황 그 자체여서 그랬을까. 이제는 인생의 궤도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지 않을 것임을 알고도, 언젠가는 큐베가 오듯 인생이 바뀌길 바라며 상상을 그치지 않는 철없는 삼십대가 되어가고 있다.
철없으면 뭐 어때. 누굴 괴롭히거나 아프게 하는 것도 아니고, 나 자신을 챙겨가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러 책들이 대변하고 있지 않던가. 이런 뿌듯함이 하나 둘 모이다 보면 나를 사랑하게 되지 않을까.
한동안은 '나는 실패작이 아니다,' 그 말 안에서 갇혀 지낼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런 글을 쓰고, 스스로를 챙기는 이유는 내가 스스로 움직여서 얻을 수 있는 기쁨이, 좌절보다 크기 때문이다. 어쩌면, 부산히 움직여서 좌절감이며 모멸감 따위를 떨쳐내려고 아둥바둥 헛짓거리를 하고 있는 것일 수도 있지만. 이게 착각이라면 차라리 좋다. 내가 내 마음을 살피는데 착각이면 뭐 어때.
이번달은 부던히도 나에게 투자를 많이 했다. 새롭게 찾아낸 루틴(아침 구운란-점심 도시락)도 12월까지는 유지가 가능할 예정.
생일 무렵에는 항상 만기가 다가오도록 작은 적금을 하나 들고 있는데, 그 적금의 절반은 날 위해 쓰고 나머지는 다시 내년의 내 몫으로 남겨둔다. 생일적금의 존재 하나만으로도 생일을 기다릴 가치가 있도록 만든 나 자신 칭찬해. 이 생일적금이 내게는 효과가 좋아서, 이제는 새해적금, 계절별 적금도 있다. 그래봐야 소액이지만 이런 적금이 하나 둘 모이면 내게는 큰 기쁨이 된다. 누군가는 한 달에 몇백을 벌어 서울의 번듯한 집을 금새도 사지만 나는 애초에 그럴 직업도 아니니까. 위를 바라보면 무엇하랴, 내 위치에서 내 행복을 찾아나가야지. 위를 바라보면 바라볼 수록 거북목은 호전이 되겠지만 상대적 비참함으로 고통받을 이유가 전혀 없다.
스타듀밸리도 부지런히 하고 있다! 다른 플레이어들처럼 뭔가 3년 안에 척척 다 해내는 그런 플레이는 아니지만, 노력과 시간을 투자하고 그 대가가 온전히 나에게 돌아오는 그 성취감이 좋다.
결국에 뿌듯함이나 즐거움, 성취감은 한 가지로 이어지는 듯 하다. 내일을 기다릴 수 있는 원동력, 기대감. 그런 소소한 희망이 모여서 내 인생이란 책이 완성되어가는 것이겠지. 누군가 내 인생을 들여다 본다면, 잔잔하지만 평화로웠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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