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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92

alicekim245 2024. 11. 24. 21:12

어릴 때는 글을 써서 먹고 사는 작가가 되겠다는 꿈을 막연히 품고 있었다. 꿈이란 단어를 쓰는 것이 적합했을, 내가 지금도 갖지 못한 직업이자 목표가 되어버릴 줄은, 그때는 상상도 하지 못했었다.

백일장이며 온갖 대회에 나가서 문화상품권이며 심지어는 농협 상품권까지 타 오곤 했던 나는, 나에게 글 쓰는 재주가 있을거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도 단위의 글쓰기 대회에 나가서 입상조차 하지 못하고, 과학고 출신이 1위를 했다는걸 알았을 때는 그저 분하기만 했다. 하지만 돌이켜보면 나도 그저 우물 안 개구리에 불과했을 뿐이었다. 그냥 그 사람의 출신이 순위를 정했을 것이라 막연히 추측만 하고 화만 내었을 뿐, 글 실력을 다듬기 위한 그 어떠한 노력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서서히 나의 글은 문장에서 단어로, 단어에서 글자로, 이내 상상으로 넘어가면서 조금씩 희미해지고 있다.

예전엔 막연히 이 나이쯤 되면 집 하나는 가지고 있겠지, 결혼을 하고 가정을 꾸렸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현실은 상상이나 꿈과는 다르게 흘러가는게 당연한 일이 되어버린 것만 같다. 현실은 늘 녹록지 않아서, 꿈을 산산조각 내고 안온한 현실에 안주하게 만든다. 무언가 다른 길로 틀어보기엔 이미 나이가 들었다고, 너무 많은 길을 걸어왔다고 스스로에게 되뇌이는 일이, 나를 안심하게 만드는 것인지 포기하게 만드는 것인지 분간은 되지 않는다. 생의 마지막 순간에도 내게 질문을 하였을 때, 과연 어떻게 대답할지는 모를 일이다.

나는 이미 내 인생의 진로를 크게 한 번 틀었다. 만약 서울에서 이 곳으로 오지 않았다면, 지금쯤은 어떤 집에서 살고 있었을까. 어떤 사람들을 만나 어떤 생활을 하고 있었을까. 부자를 만나서 취집에 성공했을 수도 있겠지만 내 외모에 내 스펙으론 어림도 없을 것이라는 걸 안다. 취집도 적당히 재산도 있고 외모도 받춰주어야 하는 일이지, 나에게는 그런 일이 벌어지지 않았을거다. 미국에서 막 돌아오자 마자 만난 친척 어르신이 내게, '살을 좀 빼야겠다' '그 직장에 들어가면 경찰 간부를 소개해줄텐데' 이런 이야기를 한 적이 있는데, 나는 그게 뼈에 사무친 원한인지 아직도 잊질 않았다. 나 자신이 아니라 내 외견, 내 직장만으로 판단하는 결혼시장에 들어가기엔, 내 자아가 너무나도 강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결혼정보회사에 내 이름이 등록되고, 부모님 친구의 아들이란 말에 속아 소개팅에 여럿 나갔을 때도 번번히 인연은 이어지지 않았다.

자그마한 상상에서부터 현실을 바꾸어 나가는 일. 하고싶었지만 하지 못한다고 생각해 일찌감치 포기한 일. '일'이라기엔 내가 하고싶었을 모든 것들을 하나 둘 놓아가면서 내가 손에 넣은 것은, 남들이 부러워 할 수도 있지만 내가 그예 만족하지 못할 이 위치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삶이 어디로 흘러갈지 그 어릴 때부터 예상하지 못했듯이, 전신마취에서 깨어나지 못했을 수도 있고 자동차 사고로 이 시간에 세상에 없었을 지도 모르는데 내가 남들보다 가지지 못한 것에 좌절하고 분개할 필요가 있을까 싶다. 없겠지, 그런건.

자그마한 행복. 온수매트를 하나 켜 놓고 그 안에서 데굴거리다 잠들 수 있는 소소한 따듯함. 출퇴근길 추위를 예상하고 방한상자에서 꺼낸 오래된 뜨개모자 안에서, 잃어버린 줄 알았던 산책용 장갑을 발견한 뜻밖의 즐거움.

그래도 복권은 한 번쯤 되면 좋겠다. 누군가가 얻은 그 행운이 왜 내게는 오지 않는걸까, 로또 종이를 오늘에서야 꽝인걸 확인하고 부아가 잠시 치밀기도 했다. 1등은 아니어도, 2등이어도 내 삶에 도움이 될텐데. 5등 조차 최근에는 되질 않으니 그야말로 무사한 하루가 지나가는 것에 늘 감사해야만 하겠지. 건강하고 안전하게 하루하루를 보내면 또 다음 일요일이, 돌아오지 않을 어떤 순간과 시간이 찾아올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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