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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89

alicekim245 2024. 10. 23. 12:54

직전 포스트가 8월 11일. 두 달 지나서야 새 글을 쓸 마음이 들었다. 아예 안 쓸 수도 있지만 그렇다고 그예 그리 해버리기에는 그동안 쌓아둔 글자들이 아쉬울 것이므로.

처음 전신마취 수술이란 것을 했다. 아직 몸에 수술 흔적이 남아있고, 열심히 연고를 발라야 흉터가 그나마 옅어질 것이라 한다. 수술 직후에는 제대로 움직이지도 못했는데, 지금은 제법 돌아다닐 만 한 정도로 괜찮아졌다. 오래 걷는 것은 무리이고 숨 쉬기도 힘든데, 다시 직장에 돌아가면 몸 상태가 지금보다는 더 좋아질 것 같지는 않다.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는 어떻게든 떨쳐 내려고 해도 심신을 갉아먹기 마련이다. 수술 후 휴식 기간에는 직장 생각을 가급적 하지 않으려 했다. 그러고 싶었는데, 업무 지시가 자꾸 단톡에 올라오니 그거 안 읽으려고 부던히도 노력을 했다. 어차피 지금 내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래도 계속 알람 숫자가 올라가는게 짜증이 엄청 난다(단톡방은 아예 알람이 안 오게 설정을 했지만 메시지 숫자는 계속 올라간다).
사내 메신저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왜 카카오톡으로 업무지시를 하는지 모르겠다. 직장과 휴식공간은 엄연히 분리가 되어야 하는데도 불구하고 저 카톡 때문에 휴식을 방해받기 일쑤였다.

예전 직장보다는 그나마 근무 환경이 나았기 때문에 어느정도 만족하면서 다녔지만, 그나마도 시간이 지나니 단점이 더욱 두드러지게 보이기 시작했다. 급여는 뭐 다 거기서 거기니 그렇다손 치더라도 사람들이랑 부딪히기 시작해 내가 지쳐버렸다. 하고싶은대로 하게 냅두고, 시키는거 적당히 해 주고 만다. '조용한 사직' 상태다. 적극적으로 일해봐야 나만 귀찮아진다.

로또를 사곤 하는데, 일부러 토요일 오전에 구입한다. 어림없는 희망이 빨리 없어지기 때문이다. 가끔 5등에 당첨되어 원금 회수에 성공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그 당첨금으로 다시 로또를 한 장 사고, 바로 낙첨되어 결과값이 제로에 수렴한다.
푹 쉬면서 나는 내가 더이상 현재 직장에 열의가 없다는 점을 알았고, 되지도 않을 꿈을 빨리도 버리는 방법을 배웠다.

직장 생활이 늘 재미가 있을 수는 없지만, 과연 이게 나한테 맞는 일인지 여러번 고민하게 된다. 예전에 이런 저런 선택을 했더라면 지금의 결과값이 완전히 달라질 수도 있었겠지. 성공이든 실패든 결국 내가 마주한 고민들은 해결할 수 없는 문제 투성이다.

쉬는 동안 몸도 마음도 잘 추스르고 돌아갈 거라고 생각했는데, 정작 돌아갈 때가 다가오니 정리되지 않은 일들 투성이다. 나이 만큼의 속도로 시간이 흘러간다는 말은 어쩌면 참일지도 모른다. 와중에 후회는 오로지 내 몫인데다 누구도 도와주지 않는다는 사실도.

하고싶은 대로 인생을 바꿀 수 있는 사람은 별로 없다. 인생의 큰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선택의 시기가 언제 올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 선택의 기회를 이미 안온한 쪽으로 해버려 지금의 후회를 떠안았을 거라 생각한다. 비교적 평온하지만, 여기서 더 올라갈 수도 없고 내려갈 위기는 수없이 많을 거다. 올라가는건 어렵고, 내려가는건 쉬우니까. 아둥바둥 버텨는 보겠지만, 내가 내 삶에 애착을 갖고 나 자신을 다시 아끼기 위해서 어떤 일들을 해야할지 조금 더 고민해봐야겠다.

나를 사랑하고 아끼는 일이 왜 이렇게도 어려운걸까.


GE는 출석만 간간히 하고 있는데다 흥미를 잃은 상태. 닌텐도 스위치로 역전검사2까지 열심히 하고 있었는데 현재는 손에서 놓았다(스위치 자체를 거의 안켰다). 카이로소프트의 테니스 스토리를 조금 했는데 경기마다 꽤 긴장감이 있었지만 오래 할 만한 플레이는 할 수 없었다.
유튭에서 구독하는 유튜버 하나가 스타듀밸리를 업로드하고 있어서 모바일/PC 버전을 둘 다 직접 해봤는데, 낚시가 너무 어려워서 바로 환불해버렸다. 애초에 그걸 할 바에는 차라리 동물의 숲을 다시 하고 말겠단 생각도 했다. 그런데 위에 말했지만 닌텐도 스위치도 손 잘 안대는 상황이고, 동물의 숲은 아마1~2년 전이 마지막 가동일거다. 잡초 언제 다 뽑냐고, 그거.

로빈슨 크루소를 다시 읽고 있는데, 어릴 때는 꽤 각색된 버전을 읽었던 것 같다. 현재 감성(?)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분명히 보였다. 청소년 시기까지는 로빈슨 크루소의 이야기가 무슨 그냥 무인도 생존기, 정도였는데 노예 무역 얘기를 지금 읽으니 아주 미친 짓처럼 느껴졌다. 예전에 무인도 살아남기, 같은 살아남기 시리즈를 재밌게 읽은 기억은 났지만.
의외로 초등~고등, 즉 학생 시기에 읽은 책(고전)은 각색 버전인 경우가 많았다. 같은 문장을 미묘하게 다른 뉘앙스로 번역한 것도 눈에 띄고(특히 롤리타...라던가, 위대한 개츠비라던가)...그 때의 감정과 지금의 해석이 많이 다르게 와닿기도 한다. 최근에 그걸 가장 많이 느낀게 해리포터. 초등학생 때는 마냥 해리의 모험 이야기가 재미있었는데, 애초에 4편부터 갑자기 시리즈가 다크하게 전개된 것도 있지만 지금 와서 해리의 행적을 보면 얘도 제정신은 아닌 것 같다(더들리 가족이 어느새 이해가 된달까). 서른이 넘은 지금 시점에서 보면 해리는 딱 그 나이대 애들의 행동을 하고 있었다. 해리포터가 출간되던 당시의 나는 그와 나이가 비슷했으니 몰입을 더 했던 것일지도.

스픽, 이란 어플로 영어회화 연습도 시작했다. 반복, 또 반복이긴 한데 재미있는 코스를 찾기가 쉽지 않았다. 문장은 다 해석할 수 있는데 상황마다 휙휙 튀어나오는게 아니다 보니 내가 이 레벨인가? 이거 너무 쉬운거 아냐? 그런 생각을 하며 코스를 몇 번이나 바꿨다. 지금 듣는 것도 아마 며칠 더 하다 보면 바꿀 수도 있겠다.

날씨가 부쩍 차가워졌다. 밖에 잘 안나가지만, 온도가 낮아지는 것은 실내에서 충분히 느낄 수가 있다. 가끔 나가면 더더욱 그렇고. 수술 직전에는 꽤 더웠는데 하고 나서부터 가을이 전속력으로 달리기를 시작했다. 가을과 봄이 짧아지고 여름과 겨울만 남아버릴 것 같은 파멸적인 계절감.

아, 출근하기 진짜 싫다. 대학교 졸업 이후로 이렇게 오래 쉬어본 적은 처음이다. 아마 내가 살면서 부모님이랑 보낸 가장 오랜 휴가가 될 것 같다. 며칠 남지 않았으니 최선을 다해 쉬어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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