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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62 본문
출장을 제법 여러 곳 다녀왔다. 그 와중에 큰 병원에도 한 번 다녀왔고, 장마가 끝나면서 날씨가 꽤 더워졌다.
구름이 한 점도 없는 날은 여지없이 빛이 지상으로 쏟아져 내려오는 까닭인지 무척이나 덥다. 구름이 그늘막 역할을 해 주지 않으니 할 수 있는 일이라곤 거실의 에어컨은 26도 냉방으로 맞춰두고, 집 안에서 이 더위가 지나가기를 기다리는 것 뿐이다.
책을 몇 권 더 읽었다. 점점 생각이 짧아지는 탓인지, 오래 앉아서 느긋하게 책을 읽는 여유를 갖추기가 좀처럼 쉽지 않다.
류이치 사카모토의 책 제목처럼, 나는 앞으로 몇 번의 여름을 더 보낼 수 있을까.
사람은 심장이 정지하고 나서도 5분정도는 청각이 살아있다는 글을 읽었다. 그래서 임종을 지킬 때, 심장이 멈추고 더이상 동공의 반응이 없어도, 귓가에 사랑한다는 말을 속삭여 주어야 한다고 했다. 그러지 못한 이별이 이미 몇 번 있었고, 앞으로도 내가 떠나거나 다른 이가 떠나거나 이별은 계속해서 다가올텐데 그 글을 읽고 꽤나 평온하지는 못했다.
찬 음식을 피하게 되었다. 몇 주 전 호되게 앓은 그 통증이 떠올라서도 있지만, 더이상 위장이 찬 것을 벌컥 들이켰을 때 순응하지 않는다는 것을 깨달았다. 피할 수 없는 더위에도 겨우 미지근한 물을 보태어, 흐른 땀을 수분으로 보충할 따름이다. 오히려 몸의 움직임을 줄여서, 거세게 밀려드는 몸의 열기를 가라앉히는 일이 더 효율적이 되었다.
나이가 들면서는 점점 더, 기초 대사량이 떨어지고 이전과 같은 패턴으로는 삶이 지속되지 않을 것임을 안다. 거울을 보다 문득, 내가 아는 이 얼굴 이전의 모습은 어땠을까--하는 생각이 들었다. 분명 나는 거울을 통해 내 모든 시간의 얼굴을 보았을텐데 과거가 쉬이 떠오르지 않는 것은 아쉬운 일이다. 그래서 사람들이 사진을 그토록 찍는구나 싶었다. 흐르는 시간은 잡을 수가 없어서, 그걸 잡아보려는 노력의 하나였던것일까.
한동안 방치하다시피 했던 집안일도, 영어며 일본어 같이 나를 단련하기 위한 공부도 다시 시작했다. 다만, 피아노 레슨은 수강을 그만두었다. 한동안은 피아노를 치지 않을 것 같다. 귀에 확 꽂히는 곡이 있으면 모를까, 일주일에 한 번--고작 한 번인데도 흥미를 잃었다는걸 자각하기까지 꽤 오래 걸렸다.
사람이 여러가지를 도전하고, 경험해봐야 하는 것은 그 일련의 과정과 결과를 통해 자기만의 취향을 찾아낼 수 있기 때문이다. 취향이란게 한 번 발견해서 일관적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닌 듯 하고, 수시로 바뀌지만 그래도 자기가 좋아하는 일이나 사물을 알아낸다는 것은 커다란 기쁨이다. 내가 이런 것을 좋아했구나, 깨닫기가 쉽지 않았다. 돌이켜보면, 여러가지를 해 보는 사람을 일관성 없다고 비난하기까지 했는데 실은 그 사람이 더 똑똑했다는 사실. 사람에게 시간은 유한하게 주어져 있고, 언제 끝맺음을 할지도 알 수 없으니 지금 숨 쉬고 움직일 수 있는 이 순간에도 나는 내가 좋아하는 일을 찾아내고 있고, 좋아하는 일을 하고 있고, 때로는 싫증이 나기도 하다가, 이내 다시 그걸 좋아하게 되는 일련의 순환을 반복하고 있는거다.
우울에 빠져들지 않으려면, 시간이 흘러가는게 무서워 막연한 공포감이 들 때면 억지로라도 움직이는 것이 도움이 되었다. 익숙하게 발랄한 색의 음악을 틀고, 무심하게 다 마른 세탁물을 곱게 개어서 제자리에 가져다 두고, 근사한 카페에 온 것 처럼 날 위한 음료를(요즈음엔 캡슐 커피에 꿀 한 숟갈) 만드는 그런 소소한 일들이 엮여서 내 시간이 되고, 내 즐거움이 되고 있다. 두려움을 완전히 떨쳐낼 수는 없지만, 시간의 끝을 내가 정할 수는 없으니 지금 이 순간을 소중히 여기는 수밖에는 없다.
나는 앞으로 몇 번이나 너를 더 만날 수 있을까. 몇 번이나 너와 얼굴을 마주하고, 웃으며 이야기를 하며 잠들 수 있을까.
그리고, 깨어나서 잘 잤냐는 인사를 몇 번이나 더 건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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