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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32 본문
잠시 지방에 또 다녀올 일이 있어 긴 이동시간을 거쳐 집에 마침내 도착. 집 앞에 쌓인 택배며, 분리수거 할 것을 한꺼번에 처리하고 나니 아드레날린 같은게 샘솟았는지 내일 먹을 식빵까지 사오고 말았다.
일전에 대형 행사를 하던 때에도 비슷한 일을 자주 겪었다. 사람이 한계치에 도달하면 죽지 않기 위해 리미트가 풀리는 걸 체험하기를 몇 번 반복하고 나니 심신이 다 지치더라. 그래서 도피한 곳이 남들 다 안정적이라 하는 이 직장인데, 막상 그 문을 열고 들어서니 그닥 안정적이지도 않았다. 아마 곧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순전히 자의에 의해 벌어질 일이겠지만, 마음을 단단히 먹어야겠다. 어차피 이렇게 될 줄 알고 저지르는 일들이 아니었던가.
그래도 그 전에는 행사를 다 치르고 나면 성취감이란게 있었다. 마무리를 하고 나서는 약간의 휴식도 즐길 수 있었고, 내년에 똑같은 행사를 또 하더라도 여전히 성취감을 맛볼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 여기 와서는 아니다. 번아웃, 이라고 하기엔 이 반복된 무기력증과 좌절감이 나를 힘들게 만드는 중이다.
사는건 즐겁고 재밌고, 행복하려고 사는거다. 그걸 위해서 수입이 필요하니 직장생활을 하는거라고 생각한다. 기왕이면 즐겁게 직장생활을 하고 싶었다. 사회생활이 다 굴곡이 있다는건 이해하는 나이가 되었지만, 이 일을 계속하다간 내가 지쳐버릴 것 같아서 핸들을 틀고 싶은 기분이 들고야 말았다. 직장생활을 하다 공직에 들어선 사람들 대부분은 이 일이 이제 인생의 종착지가 될 거라고 생각하고 들어올텐데, 나도 아마 그런 생각을 했을텐데 어쩌다 이렇게 되버린걸까.
나도 내가 변한게 느껴진다. 평소라면 아무렇지 않게 잘 듣고, 잘 웃고, 잘 넘겼을텐데 이제 사람들의 대화를 듣는 표정이 경직되어 가는걸, 더는 진심으로 공감할 수 없게 마음이 닫혀간다는걸.
소상히 말할 수는 없지만 지난번 글처럼, '머슴을 하더라도 대감집 머슴을 하라,'는 말이 맞다. 내가 가장 최근에 들은 충격적인 이야기.
'사서가 책 사고, 장비 작업하고, 마크 작성하고, 행정에 회계까지 다 한다구요...? 그게 가능합니까?'
와. 나는 그게 당연한 건줄 알았는데, 어딘가에서는 정말 미친 짓이었구나. 순간 머리를 한 대 얻어맞은 듯한 충격이 온 몸을 관통했다. 이게 당연한게 아닌데. 왜 아무말도 못하고 그저 하라는대로, 부탁한다고 다 했을까. 어디서부터 잘못된걸까.
스스로를 지키려면 결국 여길 나가는 수밖에 없겠다. 나는 여기 연고도 없고, 머물러야만 하는 이유도 없으니 내가 여길 떠나는게 옳은 결정일 터다. 남은 것은, 내 손에 뭐가 쥐어져 있는지 확인하는 일 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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