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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9 본문
운전대를 잡고 있다가 문득, '내가 왜 운전을 지금 하고 있지?'란 생각이 들었다.
서른살이 되고 나서도 나는 내가 서울에서 벗어나지 않을거라 막연히 생각하고 있었고, 그러니 자동차와는 인연이 없을거라고 생각하고 있었다(그런 주제에 이십대 초반에 면허는 따 둠).
휴일인 날, 처리할 일이 있어 잠깐 사무실에 가기 위해 차를 끌고 나왔을 때 든 생각이었을 터다. 텅 빈 도로를 달리고 있으려니 문득 그런 생각이 들더라. 그만큼 운전을 무서워했고 여전히 무서워하는데, 내가 운전을 하고 있다니 자신도 믿어지지 않을 정도다. 여전히 악셀을 밟기 어려워하고, 조수석에 사람을 태워본 것은 딱 한 번 뿐이었다. 그마저도 엄청 긴장해서 입가에 미소가 떠나질 않았다(나는 긴장할 때 오히려 웃는 미친 성향의 소유자인게 틀림없다).
내가 운전면허를 딸 때는 기능시험도, 도로주행도 일자 코스였기 때문에 무척이나 쉬웠는데 그 이후에 시험이 강화가 되었다더라. 그래도 주변에 면허 없는 사람이 있으면 따 두기를 추천하는 편이다. 주민등록증 외에 써먹을 수 있는 신분증이 하나 더 있는건 좋은 일이다(?). 운전이야 연수를 조금 받은 뒤 한적한 곳에서 연습이 필요하고, 그마저도 주차는 후방카메라에 익숙해지면 넓은 장소에는 댈 수 있게 되더라. 막상 나도 도로에 나가는 게 무섭고, 주차는 어찌 해야 하나! 걱정이 되어서 주차는 핸드폰 게임으로 배웠다(주차의 달인 만세). 주변에 이 이야기를 했더니 일단 웃고 나서 관심을 보이더라.
이따금 부탁을 받아 영어 에세이를 조금씩 봐 주는데, 내 인내심의 한계는 한 줄인게 틀림없다(2단으로 나오는 논문의 경우 3줄까지). 중심 단어랑 동사가 안보이면 그렇게 짜증이 난다(...). 같은 문장이 다른 문단에 끼어들어 있다던가, 같은 단어가 같은 문장에 다시 튀어나온다던가. 미국에 있었던건 자그마치 8년도 더 된 일인데 아직도 그 때 배운걸 어찌저찌 써먹고 있다. 전문적인 만큼은 아니지만(전문적인 교정을 원하면 Editage를 추천하고 있다). 하지만 역시 영어 문장을 읽는건 책을 읽는 것만으로도 족하다. 여전히 마가렛 조지의 엘리자베스 1세를 끝내지 못했고, 야심차게 사 둔 브리저튼은 오디오북도 킨들로도 끝내질 못했다. 퇴근하고 나면 왜 이렇게 해야할게 한가득인지.
저녁 시간을 알차게 보내다 보면 어느새 밤이고, 이미 자타공인 노인네의 시간(?)을 향유하고 있는 나는 일찍 자면 22시, 늦게 자면 23시에 잠들어야 하기 때문에 밤이 다른 이들보다는 짧다. 그나마도 새벽에 일어나는건 아니니까 7시간 이상은 잔다는 소린데. 흐음. 운동을 곁들여야 하는걸까. 뭔가 하려고 해도 코어근육이 부실하니 밸런스보드에 서 있다던가 소파를 도움 삼아 스쾃을 하는게 전부인데.
그러고 보니 나, 나름대로 삶을 알차고 재밌게 보내는 것 같다. 다른 사람이 끼어 들 틈이 없을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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