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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8 본문
글을 쓰려고 일부러 단어를 끄집어 내는 것보다는, 그냥 그 순간의 기분이나 내 눈에 비치는 색깔들이 다채로울 때 시작하는 편이 좋았다. 본가에 다녀오는 길, 해질녘 노을이 바다에 살짝 물들었을 때 보였던 팬톤의 컬러 세레니티--라던가. 퇴근길 둥근 달을 쳐다보면 보였던 달토끼라던가. 다른 사람에게 애써 설득하려 하지 않아도, 내 눈에 비치는 풍경이 보기 좋으면 그걸로 족했다. 아무래도 솜씨가 모자라니, 그걸 어딘가 그림이나 사진으로 옮겨둘 수 있다면 좋으련만.
그래서 그림을 다시 배우려고 하는 중인데, 어릴 때 미술 선생이 포기한 괴멸적인 실력의 소유자라 첫 걸음 떼기부터 쉽지가 않다. 예전에도 그림을 배우고 싶어 아이패드를 샀었고, 기계는 여전히 멀쩡한데 나는 '그림을 그리고 싶어!'란 생각만 가진 채 진전을 이룬게 없다. 수채화, 를 제대로 배웠다면 좀 더 좋았을까. 프로크리에이트로는 브러쉬를 일일이 만들어야 해서 좀처럼...아니, 도구에 핑계를 두려는게 아니라 정말 감각이 없다. 어떻게 하면 물이 번지면서, 아름다운 색감을 담아낼 수 있을까 고민은 하지만 결과물은 영 별로란 이야기다.
그 대안으로 떠올렸던게 사진이었지만, 나는 이 쪽에도 영 재주가 모자랐다. 눈에 보이는 광경만큼 렌즈를 통해 화면으로 담아낼 수가 없었다. 결국 틈이 나면 하늘을 올려다 보고, 쌓인 새하얀 눈과 붉은 꽃에 홀려 걸음을 옮기는 일만 수없이 반복할 따름이었다. 하지만 거기도 나름대로 이점은 있었다. 보름달을 보면 거기서 방아를 찢는 토끼를 발견할 수 있는 눈이 생겼으며, 노을질 때 바다를 지나가면 운좋게도 세레니티를 짚어내는 날도 있었고, 가끔은 바닥에 드러누워 흰 구름이 흘러가는 시리게 푸른 하늘을 볼 줄도 알게 되었다. 늘 아스팔트 도로와, 겨우 눈에 들어올 뿐인 몇 그루의 나무만을 보기엔 이 좋지 못한 시력일지라도 아까웠다.
사진을 찍으면서 늘 생각하는 것은, 햇살이 최고의 조명이라는 점이었다. 같은 꽃을 두고도 햇살이 비추었을 때와 그렇지 않았을 때 화면에 담기는 색감이 어마무시하게 차이가 났다. 햇살이 좋을 때 바닷가나, 꽃나무 근처를 다니는 일은 내가 좋아하는 취미 중 하나였다. 이상하게 혼자 돌아다닐 여유가 나면 흐리거나, 비가 내리거나 하는 일이 있었지만 아무래도 상관 없었다. 렌즈로 피사체를 쫓아 다니는 만큼 기묘하게 자유롭고 가벼운 느낌이 들었다. 다른 일은 별로 뇌리에 들지 않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시간.
더이상은 벚꽃 가득한 윤중로나, 홍매화가 핀 고궁을 찾아가기 어려운 곳까지 흘러들어 왔지만 이곳에서 맞이할 새로운 봄은 어떤 풍경일지 일부러라도 기대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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