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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3 본문
설 명절은 반쪽만 혼자였다. 시끌벅적한 가족들이 비어버린 자리는 온전히 나 혼자 채워야 하는 몫이었고, 나는 이 도시에 이사오고 나서 익숙한 듯 그래왔던 것처럼 혼자만의 시간을 잘 견디는 중이었다. 육전을 해 본게 처음은 아닌 것 같다는 생각이 든건, 어설프게 계란물을 입히고 프라이팬을 파멸로 이끌고 난 뒤의 전리품으로 고기를 몇 점 먹고 난 뒤의 일이었다. 기억이 잘 나지 않는 걸로 봐서는 그렇게 유쾌한 시간은 아니었던게 분명했다. ...아니면 슬픈 순간이 아니었을지도.
쇼팽의 곡, 이별의 왈츠는 설 명절 내내 나를 사로잡고 있었다. 우연히 TV에서 들은 곡이, 그래도 연습하면 칠 수준은 되었기에 시작했던 것인데 이렇게 되어버릴 줄은. 이별, 그리고 왈츠. 19세기 영국 사교계에 왈츠가 처음 소개되었을 때, 이 새로운 춤은 너무나도 음란하다며 터부시되었다. 배열을 지키고 순서가 착착 정해져 있던 이전의 다른 사교 댄스(쿼드릴, 코틸리옹 등)에 비하면 남녀가 서로 밀착하는 이 춤이 어떻게 받아들여졌는지 명백하다. 서로의 체온을 느끼고, 눈빛을 교환하며 상대가 자신을 염두에 두고 있거나, 사랑하는게 아닐까 하고 헛된 환상을 가지게 되는 순간들. 아니면 이미 사랑을 확인한 두 남녀가 서로에게 온전히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었을 터다.
설 명절 무렵 우연히 마주친 꽃나무는 마치 봄이 벌써 다가온 것처럼 흰 꽃망울을 살그미 터트리고 있었는데 나한테 봄은 여전히 저 멀리 서서 얄밉게도, 내 쪽은 한 번도 돌아봐 주질 않고 있었다.
서울에 살 때는 한 번쯤 기운이 나면, 무거운 DSLR를 메고 바깥을 나가곤 했다. 봄 무렵이 되면 경복궁이나 창덕궁을 찾아가곤 했는데, 한복을 입고 들어가보고 싶단 생각만 했을 뿐 단 한 번도 그러지 못했던 것이 이제와서 후회가 되었다. 여기로 오게 될 줄은, 작년 이맘때만 해도 조금도 생각 못했기 때문이라고 하기엔...인생이란 언제든 내가 뜻하지 않는 방향으로 흘러가는 것이기 때문에 딱히 변명거리는 되지 않겠지만 말이다.
근사한 사진을 손에 넣는 경우는 그렇게 많지 않았다. 특별히 공부를 한 것도 아니거니와, 그 자리에선 만족스러워도 막상 모니터 위에 사진을 띄워보면 성에 차지 않는 경우가 다반사였다. 명도 따위는 편집 프로그램으로 쉽게 만질 수 있었지만, 사진이 온전히 담고 있는 구도나 초점은 좀처럼 컴퓨터로도 수정할 수가 없었다. 결국 그 자리에서 만족할 때까지 찍어야 했지만 나는 성급했고 결과적으로 마음에 드는 사진을 남기는 일이 드물었다. 한 자리에 오래 머무는 것은 내 성미와 거리가 먼 일이었다.
주변에서 많이들 질문을 했다. 앞으로 여기 정착해서 살 생각이냐고. 이따금 혼자 산책을 나가서, 주변에서 그 어떤 소리도 들리지 않는 한순간의 공백과 구름 한 점 없는 고요함이 아주 잠시 마음에 들었을 때가 있었다. 하지만 여기서 나는 혼자였고, 그것이 이 도시의 첫 인상이었고, 앞으로도 가져가야 할 통증이었다. 어차피 새빨간 타인의 외로움 따위 그 사람들은 조금도 신경쓰지 않았다. 걱정이 오히려 위선처럼 느껴지기 시작한건 비교적 최근의 일이었다. 정착이란 말은, 내게 가당한 단어 자체가 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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