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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2 본문
아무래도 취미생활이 하나 이상은 있어야 했다.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할 때는 피아노와 게임이었고, 공교롭게도 여기 와서도 그 두 취미는 여전히 향유하는 것이었다. 집중력의 고저가 존재했고 하나가 질리기도 했고 몹시 흥미로워지기도 했지만 꾸준히 하는 취미가 있다는건 썩 나쁜 일은 아니었다.
디지털피아노를 산 일은 통장에 출혈을 일으켰지만 정서적으로는 커다란 안정을 가져다 주었다. 덕분에, 완성하지 못했던 드뷔시의 아라베스크 연주도 꽤 들어 줄 만한 수준으로 만들 수 있었고 새로운 곡을 시작할 수도 있게 되었다. 건반 위를 움직일 때 다른 생각이 들어오면 분명 틀리는 부분이 생겼다. 그런 부분에서 결국 벗어나지 못하면 끝까지 가지 못하고 다시 처음으로. 어째서인지 몇 곡 연습하지 않았는데 여기에서 생겼던 일들이 기억으로 덧입혀져 버렸다. 꽤 곤란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어떤 곡을 칠 때 누군가의 얼굴이나, 했던 대화가 떠오르는건 크게 나쁜 일이 아니어야 할텐데 내게는 나쁜 일이었다.
플레이스테이션4를 가지고 있었는데, 구입한지 얼마 안 지나서 팔아버렸다. 내게는 도무지 재미있는 게임이 없었다. 닌텐도 스위치는, 큰 마음 먹고 산 것인데 한동안 '동물의 숲'을 재밌게 하다가, 그 이후론 피트니스 복싱, 링피트 같은걸로 넘어갔다가--결국엔 전원을 끄고 잠재워버렸다. 의욕이 다시 땅바닥으로 떨어지는 시기가 그래도 꽤 오래 뒤에야 찾아든 셈이었다. 몸을 그나마 움직이는 게임을 했었는데 이제는 밸런싱 보드만 하나 꺼내놓고 그 위에 서서 중심잡기 운동만 가끔 했다. 먹는게 줄어든 탓인지, 그냥 움직이는게 더 싫어진 것인지, 전반적으로 삶에 대한 의욕이나 즐거움을 찾기 싫어진 것인지 종잡을 수가 없었다.
아침 출근 준비를 하려면 여러가지를 동시에 할 수 있어야 했다. 얼굴에 파운데이션을 바르고, 눈썹을 칠하면서 고데기를 미리 켜 둔다던가,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이면서 식빵과 속 재료(바질페스토, 치즈, 햄)를 같이 준비해 둔다던가. 동시에 샌드위치와 커피를 준비하려다가 빵을 태워먹은 적이 딱 한 번 있었다. 중불이 아니라 약불로 했어야 했다. 이전에는 그냥 토스터기를 썼는데, 프라이팬에 버터를 녹여 만들어 본 내 첫 아침 샌드위치는 바질과 홀그레인머스타드가 싸우긴 했지만 꽤 먹을만한 맛이었다. 이미 입맛이 한식을 벗어나버린 뒤라 남들이 놀라긴 해도 내게는 이 샌드위치가 일상적인 아침식사가 되어가고 있었다. 쌀은 있지만, 냉장고에 반찬이라곤 조금도 가져다 두질 않았다. 그나마 있는건, 계란 정도?
겨울을 지내고 있는데 별로 겨울답질 않았다. 창문을 열어두고 새 바람을 들여놓는데, 선선하단 생각만 들 뿐 춥다는 생각은 별로 들질 않았다. 3월이나 4월 쯤 폭설이 내릴거라고 다들 악담같은 기대를 했는데 내게는 이 쪽이나 저 쪽이나 똑같았다. 그래도 햇볕에 뭉근하게 녹은 듯 볕바라기를 하며 소파에 늘어져 누워있는 기분이 썩 나쁘지 않았다. 이런 날이 지나가면 또 며칠 뒤에야 다시 올 수 있는걸까. 마음 편하게 나를 놓아둔 적이 며칠이나 되었더라. 서울에서보다 훨씬 여유가 생긴 것은 공간이나 시간 뿐만이 아니라 내 마음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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