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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1 본문
세탁기는 날을 잡아 일주일 중 하루, 두 번 돌려야 한다. 한 번은 섬유유연제를 넣지 않고 세제만 넣어서 수건을 빨고, 두 번째는 섬유유연제가 필요한 셔츠나 블라우스, 양말 따위를 세탁기에 돌린다. 속옷은 과탄산소다를 탄 물에 반나절쯤 넣어두면 깨끗해지는데, 이걸 수건 빨래랑 같이 돌린다. 손은 큰 주제에 손아귀 힘은 약하기 때문에 가급적 손빨래는 하지 않았다.
이사를 올 때 건조기를 같이 샀으면 좋았을걸, 싶었지만 나는 이미 여기로 이사올 때 모아둔 돈의 대부분을 써 버렸기 때문에 건조기나 스타일러는 사치품에 가까웠다. 언젠가는 사고 싶은 목록에 올려두긴 했지만, 그럴 때가 오기는 할까. 출퇴근 때 꼭 필요했기 때문에 무리해서 자동차를 손에 넣은 것만으로도 이미 내 가계부는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세탁기가 있어도, 이불은 감당 불가의 영역이었기 때문에 사람이 없는 금요일 새벽 코인세탁방에 찾아가는 날이 있다. 세탁기에 커다란 이불과 베갯잇, 스프레드 그리고 수건을 넣고 미리 충전해 둔 카드를 몇 번 두 개의 세탁기 수금기계(?)에 나누어 찍어주면 그 친구가 알아서 다 해 주었다. 건조되어 있는 수건을 일부러 다 끌고 나와서 코인빨래방에 쳐넣는 이유는, 건조기에 따끈따끈 돌려진 갓 마른 수건의 향이 아주 좋기 때문이기도 하고 보송보송함이 시각으로도 전해지기 때문이었다. 햇볕에 마른 수건과 건조기에 말린 수건의 촉감이 왜 다른지는 아직도 이해를 못하긴 했지만.
그렇게 세탁방에 뿌듯하게 다녀오고 나면 향기가 나는 이불에 잠시 코를 묻고 아직 남은 온기를 즐기다가 세탁물을 정리하고, 집안의 모든 창문을 열어 새 바람과 함께 볕을 집 안에 들이고 청소기를 돌린다. 모터가 약한건지 그닥 만족스럽지는 않지만 바닥을 굴러다니는 먼지나 머리카락 정도는 처리가 되었다. 여력이 된다면 부직포 마대걸레를 꺼내 바닥을 슬슬 닦아낸다. 아무것도 없는 것 같은데 막상 한 바퀴 돌고 나면 흰 부직포가 새카맣게 변해있다. 주변에 공장도 없는데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는 하지만 운동을 겸하는 셈 친다. 거기다 또 힘이 남는다? 욕실에 물을 잔뜩 뿌리고 솔로 열심히 바닥을 닦아낸다. 막상 하고 나면 얼마 안 지나 있고 품도 덜 든 것 같은데, 착수하기 전까지는 그렇게 하기 싫더라. 참 신기한 일이다.
새벽부터 바지런히 움직이다 보면 두 번째 커피 생각이 간절하게 난다(첫 잔은 세탁방에서 마셨다). 언제부터인가--'선천적 얼간이들'의 작가 가스파드의 견해에 따르면--한국인이 태운 콩 우린 물에 집착하게 되었는지는 잘 모르겠다. 나는 홍차와 커피를 오가던 취향에서 근래에 커피에 정착한 것인데, 항상 부엌에 분쇄원두를 준비해 두고 있다. 전기포트가 물을 끓이는 동안, 주둥이가 긴 주전자를 꺼내놓고 드리퍼에 거름종이를 끼우고, 분쇄원두를 두 스푼. 커피메이커가 물론 편리하긴 하겠지만 이 쪽이 이제는 내게 좀 더 익숙하다. 원을 그리며 원두를 적시니 고소한 커피 향이 부엌을 이내 가득 채운다. 그리고 한 모금, 두 모금 소파에 앉아 마신다. 별다른 생각은 떠오르지 않았다.
가급적 오후에는 커피를 마시지 않는 편인데, 오후에 아예 진을 빼 놓지 않으면 밤에 좀처럼 잠들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르면 오후 열 시, 조금 늦어지면 열두시 전에는 잠을 자야 다음날 아침이 그나마 덜 피곤했다. 서울에 있을 때는 어땠더라. 비슷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오가는 시간이 몹시 고단했기 때문에 평일에 잠을 못 잔 일은 별로 없었던 것 같다. 여기 오고 나서는 상대적으로 모든게 단조로워지다 보니 마음에 여유가 온 걸까, 아니면 느슨해진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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