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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진주귀고리 소녀(초판 2003년, 양장본 2020년), 트레이시 슈발리에 본문
요하네스 베르메르(혹은 페르메이르)의 걸작이자 내가 좋아하는 그림 중 하나인 '진주 귀고리를 한 소녀'. 실물도 언젠가 한 번은 보고 싶지만 아마 요원할 성 싶다.
아무튼, 이 책은 2003년도에 초판본이 출간되었고, 내가 소장하고 있는 판본은 2007년도, 23쇄던가. 사실 집에 이 책이 없어진 줄 알고 양장본을 어찌 보면 홧김에 주문하는 바람에 전무후무한 두 권의 같은 책을 소장하게 되었다.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같은 책을 굳이 두 권이나 집에 둘 이유는 없지 않던가)
구성은 전과 비슷하지만 좀 더 오래 보관할 수 있는 양장본이라는 점이 마음에 든다...고 말해야만 하겠지. 하지만 책 보관이 비교적 잘 된 탓에 17년 전 내 손에 들어온 책도 아직은 읽을 만 하다. 여러 사람의 손을 타지 않고 오직 나만 읽은 책이기에 가능한 말이다만.
이 책의 매력적인 점은, 작가의 무덤덤한 말투로 이어지는 다채로운 인물의 내면과 행동 묘사--그리고 베르메르의 그림을 이야기의 실마리로 쓰면서 더욱 생생하게 소설 속 풍경을 상상할 수 있다는 점이다. 솔직히 그림이 없었다면 그 시기 델프트의 모습과, 베르메르의 눈으로 보았을 오묘한 색채를 내가 어찌 상상이나 할 수 있었겠는가. 작가가 그림을 통해 떠올려 낸 탁월한 상상력은 어린 시절의 나를 즐겁게 했고 지금도 마찬가지다. 오랜 세월이 지나도 변함없는 무게를 지닌 글을 만나는 일은 쉽지 않기에, 더욱 와닿는 점이다.
또한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의 존재(스칼렛 요한슨, 콜린 퍼스 그리고 킬리언 머피)는 이 소설을 좀 더 흥미롭게 읽을 수 있게 하는 요소이다. 원작 소설과 영화를 감상하는 순서를 굳이 정하고 싶지 않은 이유는, 그래야 보이는 장면과 묘사들이 존재하는 까닭이다. 영화는 특히 특유의 색감 때문에라도 한 번쯤은 보기를 추천하고 싶다. 어느 순간에는 그림을 비추고 있는게 아닐까 싶은 착각도 들 정도이지만, 스크린 위의 그들은 움직인다. 이미 알고 있는 결말을 향해, 서로 다른 연심 혹은 이상향을 향해. 그리트는 결국 현실로 돌아오는데 성공했지만, 베르메르 쪽은 어떠했을까.
(개인적으로 카타리나 역은 탁월한 캐스팅이었다. 위대한 개츠비 영화의 뷰캐넌-조엘 애저튼 같이)
소설 속 그리트는 베르메르에게 매료되어 있는 듯 했고, 그에게 '육체적인' 기대감도 품고 있는 듯 했지만 동경하던 그 화가가 그리트에게 바라던 것은 뮤즈로서의 역할로 충분했던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최근의 독서에서 떠올렸다. 하지만 돌이켜 보아도 베르메르의 행동은 중심이 전혀 잡혀 있질 않아서, 여전히 나를 헷갈리게 했다. 아예 선을 긋지도 않고, 가끔은 공공연히 선을 넘고 들어오는 모습은 그가 불안정한 존재라는 것을 나로 하여금 인지하게 만들었으므로.
손가락으로 입술을 살짝 스쳤을 뿐인 그 순간 두 사람이 각자를 바라보던 감정이 결판났다. 그리트는 현실로 돌아왔고 그는 여전히 몽상 속 화가로 남게 되었다.
어느 쪽이 좋다고는 말할 수 없다. 두 사람 모두에게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던 걸까? 그리트는 하녀로 남거나, 푸줏간의 며느리가 된다던가 하는 여러 선택지가 있었고 델프트 중심의 별 위에서 자신의 길을 골랐다. 하지만 베르메르에게는 그런 선택지가 존재할 수 없었던게 아닐까. 그는 화가였고, 또한 먹여살릴 가족이 많은 가장이었다. 눈 앞의 뮤즈가 얼마나 매혹적이어도, 현실을 돌아보지 않을 수 없었을 터다. 소설 속에서 내내 보여주었던, 그리트에게 가끔은 따뜻했고 가끔은 유혹적이기까지 했던 행동을 보면 자제력이 굉장하다, 고도 할 수 있겠지만.
그림 속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것은 비단 그녀의 매혹적인 눈빛 뿐이 아니라, 손으로 만져질 듯한 영롱한 빛을 내는 진주다. 보통의 평민이라면 손 댈 수도 없었을 진주 귀고리를 했고, 보닛이 아닌 터번을 기묘한 형태로 두르고 있고, 갈색빛의 거친 옷을 입고 있는 소녀의 이름도 신분도 지금 사람들은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작가의 탁월한 상상력으로 인해 내게는 이 그림이 생명력을 갖게 되었고, 소녀의 이름은 그리트가 되었다. 베르메르가 언젠가 영감을 얻었을 아름다운 하녀가 아니었을까,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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