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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제인 에어(2011), 다시 봤다. 본문
신간 소설들에는 눈이 아무래도 가질 않아서 고전 소설 위주로 다시 탐독하는 중인데, 그 중 제인 에어가 한 눈에 꽂힌 것은 몇 해 전에 이미 본 캐리 후쿠나가 감독의(찾아보니까 곧 나올 007 신작 감독 하시더라..헐) 이 영화 때문이었을 것이다.
특히 벚꽃 아래의 장면이 여전히 강렬하게 남아있는데, 감독이 일본 계열임을 상기한다면 여기저기 일본적인 요소(자갈로 이루어진 정원이라던가, 벚꽃이라던가)가 감쪽같이 숨어있다. 원작 소설을 비교적 충실하게 따라가면서 제인 에어와 로체스터 씨의 감정선을 얼마나 섬세하게 빚어내었는지 새삼 다가왔다. 영화를 다 본 지금도 유독 그 벚꽃 장면이 기억에 남는다.
19-20세기 영국 생활사를 공부한 적이 있기 때문에 화재 직후 로체스터 씨의 하반신이 왜 약간 노출되었는지 이해해버린 것은 덤(그 당시 남성들은 속옷 하의 대신 긴 셔츠가 속옷 역할을 했음. 그래서 정신을 차리자 마자 바로 바지를 주섬주섬 입은 것).
로체스터의 인상이 내게는 약간 긴 머리의 와일드한 느낌인데, 마이클 패스밴더는 그 상상에 비하면...비교적 곱기는(?) 하지만 무척 잘 어울렸다. 미아 바시코브스카 역시, 이런 고전물에 정말 잘 어울리는 배우이고. 배우 필모도 보면 그런 쪽이 많은 편이기도 하고...음. 아무튼 명작을 잔잔하게 잘 그려냈다. 밤에 혼자 보다가 몇 번 놀라긴 했지만. 그리고 깜짝 놀랄 만한 주디 덴치 여사님의 등장...007에서 M으로 너무나 열연을 펼쳐냈기 때문에(특히 Skyfall, 내가 가장 좋아하는 007 시리즈다).
소설도 한 번 다시 읽었는데, 어릴 때 읽은 청소년판과 지금 읽은 완역본의 느낌이 상당히 다른 것은 이번이 두번째다. 첫 번째는 에밀리 브론테의 폭풍의 언덕이었고. 솔직히 폭풍의 언덕은 좀 편집을 해야 했다. 애들 읽기엔...어, 음. 조금 거시기하고. 브론테 자매의 두 소설이 아주 매력적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고전은 주로 펭귄클래식 시리즈를 통해 읽는데, 이번에는 오랜만에 열린책들 판본을 읽어봤다. 어릴 때는 열린책들 편집 스타일이 낯설어서 꺼렸는데 왠걸, 이번에는 운 좋게도 번역도 매끄러운 편이었고 가독성도 나쁘지 않았다. 다음에 또 꽂히는 고전이 있다면 열린책들 시리즈로 접해볼까 고민중이다.
아무튼 이 영화는, 그 벚꽃 장면 하나 때문에라도 볼 가치가 있으며 두 주연 배우가 그리고 쌓아내는 감정선 때문에라도 정말 볼 가치가 있는 영화다. 제인이 자신의 감정을 부인하는 장면(로체스터 씨 방에 붙은 불을 꺼버리고 둘이 대화하는 씬에서 미아의 연기는 최고였다), 자신은 육신이 아니라 영혼 대 영혼으로 말하고 있는거라고 말하는 이 두 장면은 클립으로라도 꼭 봐야 하는 씬이다. 정말 멋졌다. 같은 영화라도 시기에 따라 이렇게 다르게 다가올 수 있는거구나, 책과 마찬가지로-란 생각을 몇 번이고 했다.
...내가 예전에 이걸 봤을 때는 세인트존이 완전 개쓰레기에 외모도 별로란 생각을 하고 있었는데 여전히 쓰레기 같다는 인상을 받은건 맞지만 왜...외모 평가가 조금 상향된걸까. 세월이 지나면서 취향이 바뀌니 이렇게 되버린걸까 싶다. 리드 부인 역이 낯익어서 봤더니 샐리 호킨스 씨...패딩턴...쉐이프 오브 워터..으윽, 머리가.
(개인적으로 외국 배우들 얼굴이나 이름은 잘 기억하는 편이기도 하고)
책을 읽고, 혹은 읽으면서 한 번 보고 그러면 좋을 것 같다. 같은 회화를 배우들은 어떻게 표현해 냈는지 그걸 감상할 수 있는 것도 이 영화의 매력 포인트 중 하나다. 아무튼 좋은 영화감상이었다.
이제 크리스마스에 혼자 볼 영화를 엄선하러 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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