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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Di 245(BE, AE)

습작(키워드: 커피, 햇살, 고양이)

alicekim245 2020. 9. 16. 09:51

친구에게 키워드 세 개를 요청했더니 받은: 커피, 햇살 그리고 고양이
로 습작


모처럼 손님이 없는 아침이었다. 집무실 대신 서재에 들어가니 향긋한 커피와 책의 향기가 뒤섞여서 마음을 간질였다. 커피를 내린 사람은 없고 책상 위에 투박한 머그가 따끈한 온기를 내뿜으며, 손을 이리 뻗으라고 속삭였다.
이렇게 무거운 잔을 쓴다고? 나오는 속으로 머그의 무게에 감탄하며, 커피를 한 모금 홀짝였다. 미식을 즐길 만큼 예민한 성정은 아니었지만 따뜻함과, 커피향이 주는 편안함이 온기와 함께 몸속으로 흘러들어왔다. 누구든 지금 이 순간 만큼은 너그러이 대할 수 있을 것 같은 묘한 자신감이 샘솟았다.
'야옹.'
처음엔 잘못 들은 줄 알았다. 책을 비롯해 온갖 문서가 보관되어 있는 서재에 고양이라니. 하지만,
'야옹.'
소리가 한번 더, 확실하게 들렸다. 열린 창 틈으로 침투한 생명체가 자신을 알아봐 달라는 듯 울었다. 소리가 나는 쪽으로 다가가니, 커튼 사이로 내비치는 햇살을 한가득 맞을 수 있는 작은 장소에 고양이 한 마리가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보송보송한 털결이 저절로 손을 뻗게 만드는 마력이 있었다. 나오는 자기도 모르게 웅크리고 앉아. 다정하게 고양이를 쓰다듬었다.
"무슨 일로 여기 왔느냐, 하고 묻기엔-."
장소가 그닥 적합하지 않았다. 결국 따뜻한 머그를 포기하고, 고양이를 안아들었다. 유순한 녀석은 낯선 인간이 자신을 들어 올리는데도 저항 한번 하지 않고 쑥, 마치 무를 뽑듯이 나오의 손에 들렸다.
고양이를 든 채 서재로 나오자, 때마침 복원재료를 들고 서재로 돌아오던 입주 사서 아를린과 마주쳤다. 나오의 손에 들린게 처음엔 털뭉치인줄 알았던 그녀는, '야옹,' 한 마디에 잠시 사고가 정지한 듯 멈추어 섰다. 이내 서재에 고양이가 있었다는걸 알고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보존 작업중인 문서가 많은 서재의 문단속을 소홀히 했다는 말이나 다름아니었다.
"밖에 데려다 주려고. 같이 갈까?"
하지만 나오가 건넨 의외의 제안에, 아를린은 저도 모르게 그를 따라 정원으로 나갔다. 정원 벤치 근처에 놓아준 고양이는 나오의 사파이어색 눈동자를 잠시 응시하고 '야옹,' 한마디 하더니 이내 자기 갈 길로 걸어갔다.
"죄송합니다, 문단속을 제대로 했어야 했는데."
"아냐, 덕분에 잠깐 즐거웠어. 모처럼 오늘 오전엔 찾아오는 손님도 없었고. 우리, 그 덕에 얼굴 오랜만에 봤잖아?"
나오가 출장이며 여러 일정 때문에 좀처럼 서재에 얼굴을 들이밀지 않았기 때문에, 그의 말마따나 직접 마주보고 대화를 나누는 것은 오랜만의 일이었다.
"그러네요...요즘 계속 바쁘셨던 것 같아서."
"경과 보고서는 매번 잘 확인하고 있어. 내가 좀 자주 살펴볼 수 있으면 좋겠는데, 틈이 잘 안나네."
"그러네요. 대공님께서 워낙 바쁘셔서......"
"업무 진행에 대한 보고서는 늘 잘 보고 있어. 그리고 저녁에 가끔 서재에 가서 네가 복원해 준 서신들을 읽고는 해. 부모님에 대한, 나한테 남은 유일한 기록이기도 하고."
나오의 표정에 아련함이 깃들었다. 부모 자식 간의 정을 느낄 겨를도 없이 모든 것이 너무나 빠르게 지나갔고 나오의 손에 쥐어졌다.
"아, 그리고 커피 잘 마셨어."
"...맛이 좀 이상하지 않던가요?"
"혹시, 독 탔니?"
"그건 아니고...그냥 커피가 아니라 치커리 커피였거든요. 커피 대용품."
나오는 그런 커피가 세상에 존재한다는 것을 지금 처음 알았다. 충격을 받은 표정의 나오를 보고 아를린이 저도 모르게 하르르, 웃었다. 사실 대공에게 주려고 탄 것이 아니어서 그가 커피를 마셨다는 말에 약간 놀란건 오히려 아를린 쪽이었다. 지금이야 하녀들에게 부탁만 하면 진짜 커피를 얼마든지 마실 수 있었지만, 그런 편안함에 익숙해지면 안된다는 생각이 그녀를 계속 차지하고 있었다.
치커리 커피는 대공저에 들어오기 전에 아를린이 주로 '평민답게' 마시던 커피의 대용품이었다.
"그런게...있다고? 치커리로 커피를 만드는게 가능해?"
"치커리 뿌리를 가공해서 만들어요. 커피랑 향은 비슷하다고 하더라구요."
"설마 내 집에 있는 커피 원두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건가?"
"그건 아니예요," 아를린이 손사래를 쳤다. "그래도 진짜 커피 맛에 익숙해져 버리면, 나중에 여길 나가서 곤란해질 것 같아서."
여길 나가면. 그 말에 나오가 입을 아예 다물어버렸다. 아직 계약 기간이 남아있기도 했고, 당연히 연장할 생각이었기 때문에 아를린이 '나간 뒤의' 일을 생각한다는 것이 못마땅했던 것이다.
"적어도 내 집에서 일하는 동안은 저런거 안 마셔도 돼."
"불쾌하셨다면 죄송-."
"그 쪽이 불쾌한게 아니야."
나오가 검지손가락으로 아를린의 반듯한 이마를 콕, 하고 살짝 짚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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