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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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Di 245(BE, AE)

습작(9월 14일)

alicekim245 2020. 9. 14. 10:59

좀처럼 잠이 오지 않았다. 성윤과 가벼운 말다툼을 하고 나서도, 어른답지 않게 사과하지 않고 집에 틀어박힌 것이 적잖이 신경이 쓰인 탓이었다. 그래도 이 시간에 전화 하는건 예의가 아니잖아? 게다가 그는 내일 이른 새벽 출국하는 해외 출장 일정이 있었다. 유영은 고민하면서 휴대전화를 만지작 거리다가, 새벽 세 시가 다 되어서야 방 안의 불을 다 켜 둔채 까무룩 잠이 들고 말았다.
그리고 정신이 들었을 때는 방 안에 검은 연기가 가득 들어 차 있었다. 숨을 크게 훅, 들이쉬자 갑자기 답답함이 몰려들어왔다. 이게 뭐지? 무슨 일이 벌어진거야? 머리가 이성적인 판단을 하기도 전에 몸은 휴대전화만 챙겨서 집 밖으로 뛰어나가고 있었다. 그 때 옆집에서 나오는 사람과 눈이 마주쳤다. 피범벅이 된 옷을 입은 그 남자는 유영의 이웃도 아니었고, 손에는 칼을 들고 있었다.
하필이면. 유영은 비명을 지를 새도 없이 맨발로 아파트 계단을 내달렸다. 살인자는 목격자를 굳이 살려두지 않는다, 오랜 클리셰가 왜 하필이면 자신의 일이 되버렸는지 원망할 시간 조차 없이 급했다. 겨우 1층에 도착했을 때, 다행히 그는 뒤쫓아 오지 않았고 신고를 받고 도착한 경찰과 소방관들이 윗층으로 뛰어 올라갔다. 경찰 제복을 입은 사람에게 붙잡힌 뒤에야 유영은 그 자리에서 주저앉았다. 생채기가 난 발에서 통증이 올라왔고, 서늘한 새벽 공기에 뼛속까지 차가워진 기분이었다. 불안감과 공포, 그리고 안도가 뒤섞여서 결국 눈물이 빰을 타고 흘러내렸다. 다행히 유영을 붙잡은 경찰은 무리하게 사정청취를 하는 대신, 그녀에게 담요를 가져다 주고 곁을 지키고 섰다.
"유영아?"
그 때, 성윤의 목소리가 가까이서 들렸다. 설마, 그 사람이 이 시간에 여기 있을 리가 없다고 생각한 유영은 고개 조차 들지 않았지만, 이윽고 그 목소리의 주인공이 유영의 어깨를 끌어 당겨 품에 안았다. 유영 만큼이나 당황한 경찰이 그를 제지하려고 했지만, 그에게 명함을 받아 들더니 이내 자리를 잠시 비켜 주었다.

전화는 오지 않았다. 그렇지만 내일부터는 한 주간 출장이었고, 전화나 문자로는 사과라던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직접 대화를 하고 싶단 생각으로 유영의 집까지 차를 몰고 갔을 때였다. 먼 발치에서 아파트에 불이 난 게 보였다. 몇 층인지 세어 보다가, 유영과 같은 층이라는걸 알고 등골이 서늘해졌고 견인 당할지도 모른단 생각은 조금도 않고 그 쪽으로 내달렸다. 설마. 설마. 불길한 생각이 제발 틀리길 바라며 아파트 입구에 당도했을 때, 곤색 담요를 두른 채 화단 근처의 벤치에 앉아 있는 작고 가녀린 실루엣이 보였다. 멀리서도, 어두워도 알아볼 수 있는 단 한 사람이었다.
경찰은 처음에는 당황한 듯 했지만, 명함을 건네준 뒤 몇 번 무전을 친 뒤에는 자리를 비켜주었다. 다행이도 유영은 발을 조금 다치고, 그을음을 약간 뒤집어 쓴 것이 전부였다. 하지만 경찰에게 상황을 어느 정도 들어보니 유독가스를 마신 것 같아서, 병원으로 데려가기로 했다. 맨발인 유영을 걸어가게 할 수는 없어서, 업히게 했다. 평소 그녀의 성정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일이었지만, 반쯤 넋이 나가 있는 유영은 순순히 내 등에 업혀주었다.
조수석에 실어 놓고 보니 몰골이 더 가관이었다. 차 안에 탄내가 가득 차는 것은 별로 문제가 아니었지만, 짧은 대답만을 할 뿐 넋이 나가 있는 모습의 유영이 안쓰러웠다. 왜 자기한테 이런 일이 일어났느냐고 차라리 화를 내 주었다면 안심이 되었을지도 몰랐다.
병원에 미리 연락을 해 둔 덕에, 안면이 있는 의사가 유영의 처치를 도맡아 주었다. 최대한 조용히 처리하고 싶은 마음도 있었고, 치료 받는 걸 옆에서 봐야 내가 안심할 수 있을 것 같았다. 이런저런 처치를 받은 뒤, 진정을 위해 수액을 맞느라 병실 침대에 누운 유영은 눈을 잠시 뜨는가 싶었지만 이내 곤히 잠들어버렸다.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었는데. 해야 할 말도 있었는데.
"...미안해."
아마 자느라 못 듣겠지만 그래도 내뱉어야 속이 좀 풀릴 것 같았다. 그리고 타이밍 나쁘게도, 그 때 성윤의 휴대전화가 요란하게 진동했다. 두 시간 뒤, 미룰 수 없는 일정으로 해외 출장을 위해 공항으로 가야 했다.

정신을 차려 보니 유영은 어느새 성윤의 집 카드키를 손에 쥔 채, 그의 침실에 누워 있었다. 링거를 다 맞은 후, 성윤의 차에 탄 것까지는 기억이 났는데 그 이후의 기억이 희미했다. 성윤이 옆에 있다는 생각에 안심이 되어서 아마 까무룩 잠든 것 같았다. 중간중간 성윤이 그녀를 흔들어 깨우곤, 이것저것 하라고 부탁을 한 것도 같았는데 생각이 나지 않았다.
다행이 침실을 벗어나 거실로 나갔을 때, 커피 테이블 위에 작은 쪽지와, 모르는 누군가의 명함이 놓여 있었다. 호기심에 명함부터 살펴 보니 변호사의 것이었다.
타이밍 좋게도 그 때, 현성 부원장의 전화가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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