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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ritings/Di 245(BE, AE)

습작(99일의 황제)

alicekim245 2020. 6. 5. 10:13

"잘 생각해 봐. 미레이유가 아르덴 국왕과 강제로 결혼하지 않았다면, 그 병약한 여자는 언젠가 자연사했을 거고 미하일의 속에 자살한 여자가 들어앉은 채 널 괴롭힐 일은 없었겠지. 약혼도 거의 강제로 한거잖아? 나에게서 미하일을 보호하려고.
미하일이 미레이유를 아르덴에 보내면 안된다고 말해서 아르덴 국왕을 자극하지 않았다면, 결혼은 성사되지도 못했어. 미하일은 타국의 왕비가 될 사람을 빼돌리려다가 발각당해서 황제한테 손찌검까지 당했던 사람이야.
아르덴 국왕은 독점욕, 소유욕이 강해. 자기 것이 될 여자를 제국의 황태자가 데리고 달아나려 했단 이야길 듣고 결혼을 강행했어. 결국 누구때문에 미레이유가 불행에 빠졌을까?
그리고 너도 마찬가지야, 아를린. 왜 하필 미하일이야? 윈스턴 대공가라고 한들 이미 황태자 자리를 한 번 버린 황자의 목숨을 보전해 줄 수는 없어."
"형을 죽일 셈이야?"
"...필요하다면."
"응. 그래서 내가 손에 넣은거야."
"무슨...?"
"어차피 누군가의 손에 죽을 운명이라면 그 전에 내 손에 넣고 뒤흔들고 싶었거든."
"단단히 미쳤구나."
"기억 못할지도 모르겠지만 스콜라에서 네가 날 무시한 채 지나간 그 순간 예전의 아를린은 없어졌어. 얼마든지 나를 미친 여자라고 생각해도 좋아. 황태자는 아직 제위에 오르지 못했고, 이래저래 평판이 나쁘지 않고 신력 또한 강력한 형이 멀쩡히 황실로 돌아왔어. 과연 누가 이길지는 끝까지 가 봐야 아는거야."
"날...배신하고 죽일 셈이야?"
"적어도 당신이 황제 폐하에 의해 황태자의 자리에 있는 이상은 대놓고 칼을 드러내지는 않겠지. 다만,"
"다만?"
"황태자비가 나를 공격하게 된다면 경우가 달라지겠지?"
"카틀레야가 왜 너를?"
"그게 아니면, 네가 오늘 마지막으로, 그리고 두 번씩 나한테 춤을 청할 이유가 설명이 안되거든. 나는 오늘 비밀 약혼 말이 도는 미하일과 첫 순서로 춤을 췄어. 이번 춤이 끝나면,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의심하겠지. 스콜라 동기인 아를린 윈스턴 대공과 황태자가, 피로연에서 두 번이나 춤을 춘 것으로 보아 이미 '내연'관계가 아니냐, 하고.
너는 내가 아르덴 국왕과 무슨 이야길 나눴는지 궁금해서 접근한걸까, 아니면 나한테 개인적인 관심이 있어서 이런 짓을 한 걸까?
전자로 사람들이 생각해 주길 바라겠지. 하지만 카틀레야는 아니야. 더불어 나는 네가 날 생각했던 그 감정이 단순한 우정이 아니었기를 바라."
"아니야. 넌 나한테 가장 친한 친구였다고. 그런데 네가 갑자기 대공이 되겠다며 네 아버지를 나와 황제가 보는 앞에서 칼로 찌른 이유까지 나한테 말해주지 않았잖아. 난 널 친구라고 생각했고, 어떤 일이든 서로 털어놓고 상담하는 그런 존재인 줄 생각했어. 배신하고 믿음을 져버린건 너야."
"너 때문이었어."
"말도 안돼. 이제와서--."
"그래, 이제와서. 이제 달라질 수 있는 방식은 서로에게 파멸을 가져다 줄 뿐이야. 적어도 미하일이 돌아오기 전까지 나는 그를 그리워 했지만 내가 좋아했던 사람은 너였어.
그리고 아마도, 그 때의 감정은 평생 나를 따라다닐거야. 십 년 가까이 혼자 전전긍긍 하며, 혹시나 경우의 수가 맞아 떨어져서 내가 너랑 이어진다는 생각도 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결국 대공이 되지 못하는 나는 너한테 이용가치가 조금도 없는 인간이었고, 너는 나를 그저 친구로만 대해주었지. 그것까지도 나는 감지덕지였어. 그렇게 해서라도, 언젠가 귀족가에 '팔려' 나갈 운명에 처한다 한들 추억을 끌어 안고 살 수 있을거라 생각했으니까.
그 날, 네가 나의 인사를 무시하고 그냥 스쳐 지나갔던 것에 감사하게 생각해. 뭔가 속에서 폭발했어. 분노가 머리 끝까지 차올라 터지면 그 때는 굉장히 차분한 순간이 오거든? 그래서 내 생각을, 내가 정말 하고싶은게 뭔지 정할 수 있었어.
선택 받을 존재로 전락하느니, 내가 선택하는 사람이 되자고. 나한텐 그런 힘이 있었고. 그래서......" 아를린이 자신의 손을 잡고 있는 황태자를 자기 쪽으로 휙, 끌어당겨 귓가에 달콤한 목소리로 속삭였다. "그 덕분에 너는 지금 나를 갈피를 못 잡는 눈으로 보고 있잖아? 부인이 저 옆에서 네 얼굴을 빤히 쳐다보고 있는데도."
아를린에게 틈을 보이지 않으려 노력했지만 결국 루트비히는 그 말에 무너졌다. 대공이 되기 전, 스콜라에 있을 때 그녀는 수수함의 결정체로 불려도 좋을 정도로 꾸미는데는 좀처럼 관심도 재능도 없었고, 그저 대공의 딸이자 어릴 때 부터의 친구였다. 하지만 대공위를 기상천외한 방식으로 사실상 '강탈'하고는, 작정한 듯 화려한 스타일로 변신한 그녀는 왜 그 전에는 알아차리지 못했을까 후회가 강하게 들 정도로 매력적인 모습으로 그 앞에 계속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첫 눈에 자신을 사로잡았던 카틀레야와 다른 종류의 아름다움이었다. 그리고 그녀를 미하일에게 빼앗길 생각을 하니 속이 쓰렸다. 자기 책임을 내팽겨치고 여자 하나 때문에 황실에서 쫓겨났다가 돌아왔을 뿐인 한량같은 형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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