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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78

alicekim245 2024. 4. 10. 14:10

날이 좋아 밀린 집안일을 오전 내내 해치웠다. 집안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주로 내가 출근하기 때문에, 시기를 맞춰 세탁물을 햇볕에 내어놓는 일은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인 한편 가장 기분좋은 집안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햇살을 잔뜩 맞은 수건에서는 포근한 향이 난다. 예전, 양키캔들의 '클린 코튼'이 이런 향을 아마 모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사한 향기보다는 이건 직접 맡아봐야 안다. 과정을 포함한 행동들의 결과가 잘 마른 수건의 향내이기 때문에 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늦은 점심을 먹고,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서재에 왔다. 그 사이에 내 서재 책상 위에는 최애 캐릭터의 데스크매트와 마우스패드가 생겼다. 캐릭터 상품을 사 모으는 것을 미련하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작고 소소한 것을 잔뜩 모아두고 바라보면서 '이 맛에 돈 벌지,'라는 미약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시험 외에는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낄 일이 줄어든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갖는 과정이 그런 뿌듯함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어떨까.

건강검진을 주변에서는 다들 연말에 하는 것 같은데, 그리 시류를 따라가면 내시경 할 때 비수면으로 해야만 하는 참극이 벌어지므로 4월에 검진을 받고 왔다. 5년에 한 번은 위와 대장 내시경을 받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나름 큰 금액을 주고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굉장히 VIP스런 대접을 받아서 당황스러웠다. 돈의 힘이 이리도 좋던가(오후에 간 덕에 대기가 적었던 것도 주효했다). 이번엔 대장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어 하제를 먹으며 나를 비워냈는데,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이제 몸이 '차갑'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결국 1차 처리를 마친 뒤엔 배가 차가운게 너무 견디기가 어려워서 온수팩을 꺼내 몸 위에 두고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검진을 마치고 나서도 며칠은 몸이 차가워서 꽤 고생을 했다. 20도가 넘는 기온에도 불구하고 도톰한 옷을 입고 전기장판까지 켜고 잘 정도였다. 다행히 글을 쓰는 지금은 어느정도 회복을 한 상태지만, 이제 몸의 기운 같은게 확 느껴지는 것이 나이가 들었구나, 실감이 났다.

검진 결과는 곧 나올테지만, 아마도 안좋아진 수치라던가 종양이라던게 있겠지. 서른이 넘어서는 몸이 예전과 같지 않게 될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다분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 결과지를 받아들면 차분함을 유지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다.

공부는 열심히 맞는 과목을 찾다가 1차로 폭발을 한 번 했다. 이걸 내가 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배웠던가, 싶은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세계사, 완전히 출제 경항이 바뀐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던 그 때의 필기를 한 권이라도 남겨둘 걸, 후회가 되었다. 어떻게든 끝은 볼테지만, 그 끝이 과연 성취감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공부는 아쉬움이 많다.
고교생때만 해도 공부를 해서 뭘 하나,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나 그 길을 다시 걸어가려는 나는 그 순간이 정말 귀했음을 안다. 온전히 공부에만 하루를 쏟아부을 수 있는 일상이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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