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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78 본문
날이 좋아 밀린 집안일을 오전 내내 해치웠다. 집안에 해가 들어오는 시간에는 주로 내가 출근하기 때문에, 시기를 맞춰 세탁물을 햇볕에 내어놓는 일은 부지런을 떨어야 하는 일인 한편 가장 기분좋은 집안일 중 하나이기도 하다. 햇살을 잔뜩 맞은 수건에서는 포근한 향이 난다. 예전, 양키캔들의 '클린 코튼'이 이런 향을 아마 모사했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모사한 향기보다는 이건 직접 맡아봐야 안다. 과정을 포함한 행동들의 결과가 잘 마른 수건의 향내이기 때문에 더 다르게 느껴지는 것일지도 모른다.
늦은 점심을 먹고, 디카페인 커피를 한 잔 내린 뒤 서재에 왔다. 그 사이에 내 서재 책상 위에는 최애 캐릭터의 데스크매트와 마우스패드가 생겼다. 캐릭터 상품을 사 모으는 것을 미련하게 보는 시선도 분명 존재하겠지만, 작고 소소한 것을 잔뜩 모아두고 바라보면서 '이 맛에 돈 벌지,'라는 미약한 뿌듯함을 느낄 수 있다는 사실. 어른이 되고 나서는 시험 외에는 성취감이나 뿌듯함을 느낄 일이 줄어든다. 좋아하는 것들을 찾아내고 갖는 과정이 그런 뿌듯함의 일환이라고 본다면 어떨까.
건강검진을 주변에서는 다들 연말에 하는 것 같은데, 그리 시류를 따라가면 내시경 할 때 비수면으로 해야만 하는 참극이 벌어지므로 4월에 검진을 받고 왔다. 5년에 한 번은 위와 대장 내시경을 받기로 마음먹었기 때문에 나름 큰 금액을 주고 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굉장히 VIP스런 대접을 받아서 당황스러웠다. 돈의 힘이 이리도 좋던가(오후에 간 덕에 대기가 적었던 것도 주효했다). 이번엔 대장내시경이 포함되어 있어 하제를 먹으며 나를 비워냈는데, 이게 나이가 들어서 그런건지 이제 몸이 '차갑'다는 것이 확 느껴졌다. 결국 1차 처리를 마친 뒤엔 배가 차가운게 너무 견디기가 어려워서 온수팩을 꺼내 몸 위에 두고서야 안정을 찾을 수 있었다.
검진을 마치고 나서도 며칠은 몸이 차가워서 꽤 고생을 했다. 20도가 넘는 기온에도 불구하고 도톰한 옷을 입고 전기장판까지 켜고 잘 정도였다. 다행히 글을 쓰는 지금은 어느정도 회복을 한 상태지만, 이제 몸의 기운 같은게 확 느껴지는 것이 나이가 들었구나, 실감이 났다.
검진 결과는 곧 나올테지만, 아마도 안좋아진 수치라던가 종양이라던게 있겠지. 서른이 넘어서는 몸이 예전과 같지 않게 될 것임을 받아들이려고 다분히 노력하고 있지만, 아마도 그 결과지를 받아들면 차분함을 유지하기는 다소 어려울 것 같다.
공부는 열심히 맞는 과목을 찾다가 1차로 폭발을 한 번 했다. 이걸 내가 대체 그 당시에 어떻게 배웠던가, 싶은 것들이 많았다. 게다가 세계사, 완전히 출제 경항이 바뀐 것 같았다. 내가 열심히 공부하던 그 때의 필기를 한 권이라도 남겨둘 걸, 후회가 되었다. 어떻게든 끝은 볼테지만, 그 끝이 과연 성취감이 될지는 모르겠다. 여전히 공부는 아쉬움이 많다.
고교생때만 해도 공부를 해서 뭘 하나, 싶었지만 어른이 되고 한참 지나 그 길을 다시 걸어가려는 나는 그 순간이 정말 귀했음을 안다. 온전히 공부에만 하루를 쏟아부을 수 있는 일상이란, 직장을 가지고 돈을 벌기 시작하면서부터는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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