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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70 본문
복용 중인 호르몬제의 영향일까, 출혈이나 다른 몸의 이상은 그럭저럭 견딜만 한데 요새 밤에 잠을 깊게 못 잔다는 느낌이 든다. 보통 23시 이후면 몸이 셧다운 신호를 보내고, 잠이 오기 마련인데 그런 일이 부쩍 줄어들었다. 나이가 들어간다는 반증일 수도 있고, 더불어 평소의 패턴이 아니다 보니 내가 더 낯설어 하는 것일 수도 있다. 머리만 대면 잠드는 것이 몇 안되는 장점 중 하나였는데 그걸 잃어가고 있다고 생각하니 아쉽기도 하다.
(+덧붙임. 살면서 가장 비싼 베게인 템퍼 ease를 집에 들였는데, 목이 무척 편안하다. 눈 딱 감고 질러볼 만 한 물건이란 생각이 든다. 조금 더 사용해보고 가족들에게 추천해주려고 한다. 나는 낮은 베개가 목에 맞는걸지도 모른다. 덕분에 기존에 쓰던 일반 솜베개와 경추베개는 자기 전 등받이 용도로 전락하고 말았다.)
토요일 새벽 눈이 생각보다 일찍 떠졌다. 평일에는 출근하기 싫어서 꽤 오랜 시간 이불 안에 머물러 있지만, 쉬는 날은 일분 일초가 아깝다 보니 몸을 일으켰다. 아침으로 먹을 샐러드가 있었지만 의외로(?) 막 일어난 타이밍에는 정말 아무것도 하기 싫은 기분이 든다. 그래서 냉장고에 넣어 차갑게 해 두었던 셀렉스 단백질 음료를 천천히 마신 뒤, 헬스장에서 트레드밀로 3km만 가볍게 걷고 왔다. 땀을 내고 들어오니 어쩐지 생기가 도는 기분이 들었다. 샐러드에 달걀 두 알. 드레싱은 어째 유통기한 지난 것만 한가득이라 아쉬운대로 케찹을 뿌려 먹었다.
주중에는 집안일을 꼼꼼하게 챙기기가 어렵다. 얼마 전 변기에 생긴 검은 줄은 치약을 묻혀 닦아봐도, 솔로 박박 문질러도 지워지질 않아서 대체 뭔지 모르겠다. 과탄산소다를 뿌린 뒤 방치를 해 봐야 하나 싶다(생각난 김에 당장 해야겠다). 세탁도, 청소도 매일은 힘들더라도 주기적으로 해야 하는데 저녁에 퇴근하고 들어오면 일단 지치고 아무것도 하기가 싫은 기분이 들어서 미뤄두기를 꽤 오래 반복한 적이 있었다. 결론은, 그렇게 하면 집이 더 엉망진창이 된다는 점이다. 싫더라도 최소한의 청소, 세탁은 해 두어야 사람이 움직일 수 있는 의욕이 생긴다. 의욕이 없어서 움직이기가 싫은데, 반대로 움직여야 의욕이 생긴다는 점은 모순적이라 할 수도 있겠다. 그런데 살아보니 어느정도는 사실인 듯 하다(내가 그걸 느끼고 있다).
바람이 세게 부는 탓인지 하늘에 뜬 구름이 빠르게 움직이는게 눈에 보인다. 움직이는 구름 틈새로 새파란 하늘이 보이면 그렇게나 반가울 수가 없다(*나는 이런 부정형의 긍정 표현을 좋아한다. 부정을 통해 긍정을 내보이는 문장이라니). 아침 운동을 하러 나갔을 때 하늘을 찍어두었는데, 글을 다 쓰고 나면 컬러 팔레트로 색상표를 찍어볼 예정이다. 두 색깔의 조합이라면 세레니티+로즈쿼츠 처럼 뭔가 아침의 색깔을 알아낼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든다.
심즈4를 최근에 다시 하고 있다. 나름대로 규칙을 정해서. 자수성가 하는 컨셉이기도 하고, 여태 대학팩이 있으면서도 딱 한 번 치트키 없이 졸업을 시켜봤기 때문에 그것에 대한 도전이기도 하다. 평일엔 아무래도 게임을 한 시간 이상 하기 어려워서, 주말에 책 읽을 시간을 일부 할애해서 게임을 하고 있다.
책을 읽을 시간이 없다는건 솔직히 나에 대한 거짓말이다. 2시간이라도 낼 수 있으면 그 자리에 앉아 책을 반 권쯤은 읽을 수 있다. 그 시간에 어영부영 다른 것을 할 바에는 문자를 읽는 것이 훨씬 낫다는걸 직장에 가고 나서야 알았다. 문장을 읽는 습관이 없다면, 일 할 때도 비문을 쓰기 쉽다. 내가 이해하지 못하는 문장을 누가 이해하면서 읽어준다는 말인가.
사소한 물건 몇 가지를 샀고, 그 중에는 곧 다가올 봄을 위한 추식 구근도 있다. 무스카리는 이번주에 받았고, 11월에는 예약한 튤립 구근이 도착할 예정이다. 내가 가지고 있는 화분에는 한계가 있으므로, 몇 번이고 꽃을 보았돈 제라늄은 조만간 정리할 것 같다.
내 집의 베타(물고기)는 여전히 생존 중이다. 처음 데려왔을 때의 사진과 비교해 보면 머리 부분이 많이 하얗게 변했다. 1년 하고도 6개월 넘게 나와 같이 살고 있으니 나 나름대로는 물고기를 가장 오래 키운 기록이라 새삼스러운 기분도 든다. 이 녀석은 자기가 언제쯤 죽을지 알고 있을까. 사람도 모르는데 물고기가 그 끝을 스스로 어떻게 알까 싶긴 하지만, 몸에 나타난 변화는 이 물고기의 마지막을 예상하게 한다. 물론 예측과 다르게 더 오래 살아주면 좋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항을 확인하고, 저녁에 퇴근하고 나서도 이 녀석의 생존을 확인하는 것이 어느샌가 하루 일과가 되었으므로. 나도 나 스스로를 돌보는 일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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