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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닷가 A시에서 혼자 살고 있습니다, 40

alicekim245 2022. 10. 10. 12:17

어머니는, 손님이 다녀 가시거나 여행을 다녀오면 가족이 힘들어 할 만큼 열심히 정리정돈과 청소를 하시곤 했다. 어릴 때는 그걸 이해하지 못했는데, 나이가 들고 내가 총괄해야 하는 내 공간이 생기면서부터는 어느새인가 나도 어머니와 같은 행동을 하고 있었다.

손님이 간 다음 자리를 정리하고, 청소기로 먼지를 빨아들이고, 집의 모든 창을 활짝 열어 새로운 공기를 들여놓은 뒤 부직포 마대자루로 바닥을 슬슬 닦으면 어느정도 완료다. 욕실도 락스를 풀어 청소하는데, 이 때는 환기가 필수라 꼭 하늘이 맑은 날을 택하게 된다. 꼭 손님이 다녀간 날이 아니어도, 여행 전후로도 비슷한 순서로 청소를 한다. 분리수거를 하고, 음식물 쓰레기까지 한꺼번에 내다 버리려면 아무래도 몇 번 안팎을 드나드는 수고로움이 있지만 다 하고 난 뒤의 뿌듯함이 있다. 하지만 다른 무엇보다, 누군가 다녀가고 어딜 다녀온 뒤의 헛헛함이 나이가 들 수록 더 커지는 탓이다. 꼭 다른 일에 몰두해야 그런 기분이 잠시나마 물러난다. 어머니는 어떤 기분으로 그렇게 정리를 하시고, 청소를 하셨을까. 다정한 모녀지간은 아니어서 이런 질문을 할 일은 아마 없을 것 같지만 왠지 나와 비슷한 기분이셨을 것 같다.

부지런히 집안을 정리하다 보면 시간이 금방 흘러간다. 정리를 하면서 이전에는 물건을 내가 아는 자리에 고스란히 두는 것을 목표로 했는데, 점점 깔끔하게 하고 싶단 생각이 들면서 소품을 새로 들이기도 하고 있는 것들의 위치를 바꾸면서 여러가지 도전을 하고 있다. 가장 근래에는 일명 '카페장'이라는 수납 물건을 들이고 싶어 열심히 검색했지만, 가구란 것이 그렇듯이 내가 직접 잰 것과 주문해 온 물건의 크기가 다를 위험성이 있었고 그 벽을 넘지 못했기 때문에 포기했다. 나중에 이사 갈 것을 생각하면 소품 몇 개로 분위기를 바꾸는 것이 그나마 현명하다 할 수 있겠다. 게다가 재정의 문제도 있었고.

어릴 때 부터 벽에 뭔가 다는 것을 굉장히 싫어해서, 처음 이사왔을 때는 벽에 시계조차 걸려고 하지 않았다. 결국 부모님과 타협해서 부엌에 벽시계 하나 거는 것으로 타협을 했다. 요새는 이상하게 벽에 뭔가 달고 싶은 기분이 드는거다. 아직 10월인데 벌써 내년 벽걸이 달력이 뭐가 나왔나 검색하는 꼴이라니. 시간이 지날 수록 과거와 다른 나를 하나 둘 발견하는데 이 기분이 여전히 낯설고 적응이 되질 않는다. 가만 돌이켜 보면 나는 나에 대해 뭘 제대로 알고 있었는가 싶기도 하다.

손님 덕에 연휴를 심심하지 않게 보냈고, 이제 연말까지는 특별히 쉬는 날이 없을테니 비슷한 일상의 반복이겠지만 그 와중에 세워둔 목표를 차근차근 해 나가다 보면, 벽돌 쌓아 올리듯 나도 어떤 부분은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 있지 않을까.

 

덧. 던파를 오랜만에 접속해봤는데 뭐가 뭔지 하나도 모르겠다. 역시 이제 온라인 게임을 놔 줄 때가 왔나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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