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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의 영애] 11월 13일 본문
[오늘의 영애] 11월 13일
* 본 작품은 픽션입니다.
그간 잘 지내셨는지요? 저는 잘 지내고 있답니다. 겨우 날씨가 좋아졌네요. 주말이면 겨울이 성큼 온다는 예보에 기분이 묘했어요. 이번엔 가을이 꽤 길었던 것 같기도 하고.
어릴 때는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 그렇게 생각했는데 막상 법적 나이로 성인이 되고 대학에 들어가고...하면서 시간이 정말로, 어른들이 말씀하신 것처럼 빠르게 지나가더라구요. 어느샌가 더는 도전하기 어려운 나이가 되어 있었어요. 그때 그 길을 선택했다면 내 삶은 어떻게 이어졌을까, 그런 생각이 자꾸만 드는 나이가 딱 지금인 것 같아요. 나이 앞자리가 바뀐다는건 누구에게나 큰 일일지도 모르겠어요.
나름 당당하게 맞이해 보겠다고 건강검진을 예약해 두긴 했지만, 아마 직장을 계속 다니거나 그만두었어도 지금의 나는 같은 생각을 했을 것 같아요. 시간은 돌이킬 수 없지만 한 번은, 어떤 한 순간으로 돌아갈 수 있다면 나는 언제로 돌아갈까?
저요? 음...고등학교에서 문과, 이과를 나누던 그 순간으로 돌아갔을 것 같아요. 역사를 좋아했으니 현재 졸업한 대학만큼 성적 커트라인이 높은 대학에는 가지 못했을 것 같지만, 이과를 선택했다면 어땠을까...계속 그 생각을 했거든요. 지금이야 관저에 들어와 수행비서 노릇을 하고 있지만 어릴 때 꿈은 약사였어요. 그런데 문과를 졸업하고, 문학 학사를 가지고 있다는게 웃기죠.
생각해보면 그때 그때 편한 방향으로, 쉬운 길을 선택하다 보니 여기까지 오게 된 것 같아요. 조금 어렵더라도 내가 품고 있던 꿈을, 목표를 수정하지 않았더라면 어떤 방식으로든 닿았을 지도 몰라-그렇게 생각하니 더 아쉬운거죠. 지금 이 길로 온 것도 순전히 내 선택인데도요. 모든 선택이 옳을 수도 없지만 그 선택을 하지 않으면 길을 나아가지 못했을거라, 모순적이다...는 생각도 드네요.
하지만 시간은 돌이킬 수 없답니다. 그때 그때 최선을 다하지 않으면, 현실에 굴복한 선택을 하면, 모두 반대해도 내가 원하는 것을 선택하면 손에 들어오는 모든 것은 자신이 만든 결과가 되는거죠. 타고난 배경, 환경에 따라 주어지는 선택지는 각자 다 다르겠지만요.
오늘은 어떤 선택을 하며 하루를 지내셨나요? 아침 식사를 할까, 말까 부터 업무를 어떤 것부터 처리해야 할지, 무슨 과목을 먼저 공부할지, 누구에게 먼저 연락할지...고민하며 판단을 내리는 순간 순간이 선택이고, 또 그게 모여서 하루가 완성되는 것 같아요.
어릴 때는 그림일기 같은걸 쓰는게 의무사항이어서 꽤 오랫동안 그 습관을 지속했는데, 어느순간 내가 내 하루를 그냥 흘려보내고 있었어요. 늘 같은 하루라고 생각하면서. 하지만 생각해 보면, 늘 같은 하루라는건 없거든요. 지하철에서 만나는 사람이 매번 다르고, 자주 마주치는 익숙한 사람의 옷이나 표정도 매일 다르고요. 하늘의 구름 모양도, 날씨도, 아침 공기도...하다못해 직장이라면 받는 이메일도 다 다른 내용이잖아요. 그리고, 매일 느끼는 감정도 다양하고. 어떨 때는 느긋하고 나른했다가도, 조급하고 당황해 하고, 절망하고, 울기도 하다가, 스스로를 잘 추스리고 일을 잘 마무리 하면 생기는 성취감이나 즐거움 같은 것. 사소하지만 언젠가 들춰보면 부끄럽기도 하고 아련하기도 할 이야기를 오늘 내가 만들어 가고 있는건데, 작은 글귀라도 한 줄 써놓지 않으면 아쉬운 기분이 들어서...최근에 다시 시작했어요, 일기.
한 때 작가의 꿈을 꾸던 때는 그 날의 감정이 그날 쓴 분량에 그대로 녹아있기도 했는데, 글을 놓아버리게 된 지금은 생각보다 어렵더라구요. 내 하루를 돌아보고 정리하는 과정이 꽤 쉽지 않았어요. 언제쯤 익숙해 질까요?
또 이상한 이야기만 늘어놓는다고 보좌관님에게 혼날지도 모르겠어요. 오늘 이 방송은 약간 몰래 하는거거든요. 아마 어디서 듣고 계실지도? 저 잘 있어요, 걱정하지 말아요.
오늘도 고생 많으셨습니다. 다음 방송 때 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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