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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 to Jane Austen's World] 약간의 에티켓

alicekim245 2017. 6. 4. 21:56

19세기 당시의 영국은, 명문화되지는 않았으나 여러가지 규율이 존재했고 또한 엄격하게 지켜졌다. 주로 중상류급 이상, 즉 지주계급 이상에서 이러한 규칙이 많이 만들어졌고 또 가문이나 사람의 됨됨이를 판단하는데 척도로 작용했다.
사회에서 '교류'라고 일컬어지는 행동의 시작은, '방문'이었다. 이는 신분계급이 높은 이가 낮은 신분의 이에게 '호출'을 하는 것으로 시작했다. 'Morning Call'은 그야말로 새로운 교류의 시작인 셈이다.


당신이 막 도시나 시골 마을에 도착한 신입이라면, 마을의 유지나 신분이 높은 이가 당신을 부르기를 기다려야만 했다. 이따금 신분 높은 이가 이웃으로 이사를 왔을 경우에만, 먼저 명함을 남기는 일이 가능했다.
사람들은 응접실의 선반 위에 은색 쟁반을 두었는데, 여기에는 그 집을 방문한 이들의 명함을 두게 되어 있었다. 저택의 집사는 은쟁반 위에 담긴 명함을 윗층으로 가지고 올라가 안주인, 또는 주인에게 보여주어 방문객을 맞이할지, 아니면 매몰차게 무시할지 결정했다. 유력 인사의 방문을 과시하기 위해 이 은쟁반 위에는 방문객의 명함을 그대로 전시하듯이 두는 일이 꽤 잦았다. 이 시기쯤을 배경으로 하는 소설에 '내가 당신의 집에 명함을 두지 않는 이유는 당신이 그걸 이용할 것 같아서요-'라는 비슷한 멘트를 한다면 백 퍼센트.
방문을 청하는 명함(Calling Card)를 받았을 경우 답방문은 그 날 오후에 대부분 이루어졌고, 한 번 방문했을 때의 시간은 삼십분을 거의 넘기지 않았다. 여성은 응접실, 또는 화실에서 손님을 받았고, 남성은 집무실이나 서재에서 손님을 맞이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상대적으로 여성에게 지킬 것을 요구하는 규칙이 많은 편이었는데, 마차를 몬다거나 외출을 한다거나 하는데서 이는 분명하게 드러난다.


여성은 홀로 마차를 모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는데, 마부가 동행했을 경우에나 제한적으로 가능했다. 말을 탈 때도 항상 옆으로 다리를 가지런하게 모아 타야(Side-Saddle)만 했고, 올라갈 때는 시종이나 받침판의 도움을 받아 안장 위에 올라타야 했다. '안전'을 중요시한 규율이라고도 볼 수 있겠다.  외출을 할 때에는 가정교사나 보호자, 하녀가 반드시 동행해야 함은 너무나도 당연시되어 있었다.  또한 거리를 걸을 때도 제약이 다소간 존재했는데, 숙녀는 반드시 인도 안쪽(건물 쪽)으로 걸어가야 했으며 혼자서는 St. James Street(클럽이 밀집해 있음)과 피카딜리 지역을 걸어서는 안되었다.


사회적으로 멸시받을 만한 위치에 있는 여성들(매춘부 등)은 숄을 걸치는 것이 금지되어 있었고, 여성이 재무를 직접 해결하는 것은 부적절하게 여겨졌기에 재무 문제에 한해서는 남성에게 부탁해 처리할 수 있었다. 또한 남성이 여성에게 빚을 지는 것은 무척이나 무능한 사건으로 여겨졌다.


결혼 이후에도 여성은 가문의 후계자 생산에 주의를 기울여야 했다. 후계자(Heir)가 태어났을 경우에는 그제야 가문 존속의 의무에서 벗어나 바람을 피우거나(Affair) 하는 행동에 약간의 자유가 주어졌다. 이 시기의 후계자란 가문의 땅과 재산을 상속받아 가문을 번창하게 할 중요한 위치였기 때문에 기혼 여성의 아들 출산은 의무나 다름아니었다.


일반적으로 상위 사회를 영위하는 인물들은 공공장소에서의 감정 표현을 절제하는 편이었으나, 여성이 기절하거나 히스테릭한 행동을 보이는 것은 자연스럽게 받아들여졌다. 올바른 양육 과정을 거친 '좋은 사람'이란, 낯선 이들에게도 우아한 품위를 보여줄 수 있는 인물이었다. 사람 됨됨이를 판단하는데 그 사람의 소속 가문(재산, 그리고 인물들)도 중요한 영향을 미쳤지만 개인의 품성도 중요한 평가 요소였다. 이 '올바른 사람'이란, 바르게 걷고 - 서고, 가식적이지 않으며 사치와는 거리가 먼 인물이었다. 천박함(Vulgar)은 언제나 멸시받는 성품이었다. 친척 중에 이러한 인물이 있다면 해당 인물의 평판이 깎이기도 했다.


이따금 이 시기를 다룬 가벼운 소설을 보면 하인과 중요한 이야기를 상담하는 등의 행동을 하는 고용주들이 보이는데, 이는 그 당시 부적절한 행동으로 여겨졌다. 사용인들과 업무나 가문의 중요한 일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일은 납득하기 어려운 행동이었다(대부분은 사용인들의 입이 몹시 가볍다는 생각이 깔려있었다, 사실이기도 했고). 사용인들은 특히 식사 도중에는 '존재하지 않는' 것으로 취급받았다. 특히 여성 사용인(하녀)들의 경우에는 집안의 남성들에게 가지고 놀기 좋은 장난감 정도로 인식되는 경우가 있어 사회적으로 문제가 되기도 했다. 하지만, 남성 사용인을 고용하는데 드는 세금(+비용)보다 여성을 고용하는데 드는 금액이 훨씬 적었기 때문에, 바깥 양반과 하녀의 불륜(?)은 여전히 발생했다. 이 과정에서 발생한 사생아의 경우, 애 아버지(즉, 바깥양반)가 양육을 부담해야 했고 그렇지 않으면 '되먹지 못한 사람' 정도로 평판이 추락했다.


인사 방법은 크게 두 가지. 'Bow', 'Curtsy'가 있는데 전자는 머리를 숙여 하는 것이고 후자는 한 쪽 다리를 뒤로 살짝 빼고 무릎을 꿇어 하는 인사(궁중 영상물? 따위를 보면 여성이 대부분 이 방식으로 인사를 건넨다)이다. 이 정중한 인사법은 주로 왕족(Royalty & Aristocrats)을 만났을 때 하는 것이나, 아이는 매일 부모에게 안부를 물을 때 이 방식으로 인사를 했다. 정중한 인사법들은 상술한 경우 외에도 춤을 시작할 때 하기도 했다.



출처: (Georgette Heyer's) Regency World, Jennifer Kloester
What Jane Austen Ate and Charles Dickens Knew, Daniel Pool
참고: BBC Documentary hosted by Lucy Worsley
BBC Documentary Pride and Prejudice Having a Bal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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