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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uide to Jane Austen's World] 결혼이란?

alicekim245 2017. 6. 4. 21:51

19세기 초, 영국 섭정 시기의 사회상을 공부하다 보면 꽤 흥미로운 사실들을 많이 알게된다. 역사와 사회 관념 등 여러가지의 중첩이기도 하고, 즐겨 읽는 소설의 시대상이기 때문에 더욱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서 그리 느껴지는 걸수도 있겠다.

그 시기 중상류층 이상의 여성들은 성혼 시기의 남성들에게 관심을 끌기 위해 춤과 예술(그림 그리기, 바늘로 그물가방 뜨기, 태피스트리 만들기, 바구니 장식하기, 피아노포르테 또는 하프 연주 등), 약간의 지식 정도를 익혔다. 하지만 무엇보다 중요시 되었던 것은 그 여자의 집안과 지참금이었다. 정말 '인격적'으로 괜찮은 여성이어도 집안에 무뢰한(vulgar)이 있거나, 집안이 가난해 딸린 지참금이 전무한 경우에는 결혼이 힘들었단 이야기다. 물론 그 당시에도 신분 상승 추구자(Social Climber, 현대에도 존재. 캐서린 미들턴 왕세손비의 어머니라던가)는 있어서, 어떻게든 부잣집이나 귀족과 자기 딸을 성혼 시켜보려는 어머니들은 존재했다. 제인 오스틴의 작품 오만과 편견에서 나오는 베넷 부인이 대표적인 예시다. 좌우지간, 여성들이 갖추어야 할 소양은 나중에 집안에서 자녀, 특히 대를 이을 남자아이를 낳고 가정의 장식품이 되면 아무 짝에도 소용 없어지는 것들이 많았다. 솔직히 여성이 활발하게 경제활동을 할 수 없는 시기였기 때문에 여성에게는 가정에 충실할 의무가 지워졌다. 현대에 무조건 대입해서 보면 몹시 곤란해지는 사항이다.

이 엄격한 사회적, 경제적 척도가 여성에게만 적용된 것은 아니다. 남성의 경우에도 거의 매한가지였다. 재산과 작위는 장남이 거의 전부를 상속했다. 집안에 성직록이 있으면 그나마 차남에게는 다행이었는데, 성직자로서 자기 삶을 꾸려나갈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이다. 장남이 아닌 차남, 삼남 이하의 아들들은 교육까지(옥스브릿지 등 명문 사립학교)는 집안에서 해 주는 경우가 많았지만 이후의 삶은 자기가 알아서 꾸려나가야 했다. 귀족의 차남, 삼남은 법률직이나 의사 등을 함으로서 생계를 유지하고 때로는 부유한 상속녀와 결혼하려고 계략을 꾸미는 경우도 있었다. 한 대가 사망하면 그 아들들이 분할상속을 하면 되지 않느냐, 그런 우애 좋은 의문을 제기할 수도 있는데 이 시기의 땅은 거의 다 한사상속(Entailment, 분할이 되지 않고 남성만 상속 가능)이 걸려있어서 불가능했다. 기껏 모아두고 묶어둔 땅이 분할되어 버리면 가문의 부도 흩어지는 것이나 마찬가지였기 때문이다. 이 이야기 역시 오만과 편견에 나오는 기묘한 성직자 아저씨, 콜린스 씨가 잘 설명해 준다.

숙녀는 사교계 데뷔 후 세 시즌이 지나기 전까지 성혼에 실패하면 대부분은 미혼인 상태로 가족에게 얹혀 살았다. 부유한 상속녀의 동반자(Companion)가 되거나 가정교사, 유모가 되는 방법도 존재했다. 다만 가정교사는 조금 천대받는 이미지가 있었기 때문에 다수는 집에 얹혀서 노처녀로서 살아남았고 가족들에게 받는 무시나 멸시도 이루 말할 수 없었을 것이다. 이따금 그들을 가엾게 여긴 친척의 주선으로 기준에 못미치는 혼처에 시집을 가는 경우가 있었다.
신사는 숙녀의 경우에 비해 기회가 많은 편이었다. 물론 여자 쪽에서도 바보는 아니니까 재산이 많거나 귀족 가문이거나 평판이 좋은 가문의 남자와 결혼하는 쪽으로 일을 추진했다. 계약이라는 표현이 더 어울릴지도 모르겠다. 결혼 시장(Marriage Market)이라고도 불리던 이 거대한 사회를 대변하는 장소 중 하나는 런던의 유명한 사교장, 알막(Almack's)이다. 재산을 지키고 더욱 불려나간다는 의미에서의 결혼이 성행한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연애 결혼이 주류였다.

사랑하는 사람을 만났다고 해서 결혼도 마냥 쉬운 것은 아니었다. 일단 결혼을 결정하면 약혼을 해야 했다. 이 시점부터 세 번의 일요일이 지나야 비로소 결혼이 가능해 지는데, 급한 경우에는 주교에게 허가증을 구매하여 기간을 앞당길 수 있었다. 부유한 상속녀들을 노리고 접근하는 남성들(Fortune hunter)도 존재했기 때문에 가족들은 결혼 적령기의 여성에게 접근하는 모든 남자에 대해 면밀히 알아보고 촉각을 곤두세웠다. 연인들의 결합이 올바르지 못한 것이라 여겨지면 가족들은 그야말로 들고 일어나서 결혼을 엎어버리기도 했다. 그도 그럴 것이, 이 시기의 결혼은 현대보다 더 확실히 가문과 가문 간의 결합이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불타올라 가족이고 뭐고 볼 여유가 없게 된 연인들은 그레트나 그린(Gretna Green)으로 야반도주를 해버리기도 했는데, 이는 가문의 명예를 실추시키는 행동이었다. 그레트나 그린은 사랑에 빠진 연인들이 가족의 방해에서 벗어나 결혼할 수 있는 지역으로, 이곳 사거리의 대장장이들은 그런 커플들의 결혼에 증인이 되어주었다. 물론 집으로 돌아갔을 때 가족들의 반응은, 상상에 맡긴다.


출처: (Georgette Heyer's) Regency World, Jennifer Kloester
What Jane Austen Ate and Charles Dickens Knew,
Daniel Poo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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