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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연몽, 마리안느 본문

Writings/Di 245(BE, AE)

광연몽, 마리안느

alicekim245 2017. 2. 8. 09:00

남방 대공령, 수도 슈플리테. 대공저 안뜰에서 서성이며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던 명헌대공은 고대하던 이가 도착했다는 소식에 시비들은 따르게 하지도 않고 버선발로 대문을 향해 뛰어갔다. 막 마차에서 내려 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마리안느는 그런 그를 보고 싱긋 미소를 지었다. 오랜만에 보는 오라버니였다.
마리안느 페트라르카는 명헌대공의 여동생이었고, 또한 그 유명한 화헌대공비(다른 차원에서 왔다고 알려진)의 딸이었다. 그녀가 사교계에 데뷔하는 날, 관례대로라면 공작부인 쯤 되는 이가 마리안느를 에스코트 해서 황후에게 보여야 했지만 그 관례를 무시하고 명헌대공이 직접 마리안느를 데리고 간 일은 꽤 오랫동안 인구에 회자되는 사건이었다. 그 일을 두고 심지어 그 윈스턴 공작이 뭐라 한 소리 하기까지 했지만, 페트라르카 가문의 대공에게 그런 것은 별로 상관할 바 못되었다.
그렇게 귀애하던 여동생이 막 시즌을 마치자, 명헌대공은 득달같이 사람을 보내어 그녀를 슈플리테의 본가에 데리고 온 것이었다. 사실 사교시즌에 나가서 첫 시즌에 제 짝을 만나면 가장 좋은 일이었고, 그 일을 명헌대공도 거들어주고는 싶었지만 영지의 일 때문에 그러지 못한 것이 못내 아쉬웠던 터라 - 얄궂게도 그는 마리안느가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온 것이, 솔직히 기뻤다.
"잘 지내셨어요? 오라버니. 리프레에서는 소식을 듣기 힘들었어요."
그도 그럴 것이, 내정에 힘쓰느라 명헌대공은 거창하게 연애를 하는 것도 아니고 화려한 일을 벌일 수도 없다 보니 황실에서 이름이 나올 건수가 거의 없었다. 화헌대공이 그 부인과의 연애사 때문에 거창하게 리프레에서 이름이 오르내린 것과는 대조적인 일이었다. 명헌대공은 마리안느를 그녀의 별채로 데려다 주며, 화사한 아가씨가 즐겁게 전해주는 리프레의 온갖 소식들을 들었다.
"다들 오라버니를 궁금해 하세요. 나이도 있으신데, 성혼조차 않고 독신으로 지내는 이유가 분명 저일거라고 하시면서요."
어릴 때부터 실감하긴 했지만, 명헌의 아버지 화헌대공은 여러모로 대단한 사람이었다. 지금은 오페라로, 연극으로 만들어져 공연되는 그 화려한 연애를 하면서도 한 번도 남방의 수호라는 의무는 놓지 않았기로. 매일 쏟아져 들어오는 소장을 검토하고, 관료들과 회의를 하고 지방을 시찰하는데만도 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그러니 연애라던가, 부인들 들인다던가 하는 일은 생각도 할 수 없었다. 그나마 마음이 놓이는 순간은 마리안느와 함께 차를 마시는 시간 뿐이었고.
자그맣게 투정을 부리는 마리안느의 머리를 쓰다듬어준 뒤 손가락을 튕겨 벽난로에 불을 넣어준 명헌대공은 직접 차를 끓이겠다는 동생을 만류하고 자기가 그 일을 도맡았다. 원행에 지쳐서 혹여나 뜨거운 물을 쏟을까 저어된다는 이유였다. 결국 마리안느는 대공이 내어준 차를 한 모금 마시면서, 집에 돌아왔음을 실감할 수 있었다.
마리안느는 리프레에 있는 페트라르카 대공가 소유의 타운하우스에 줄곧 머무르긴 했지만, 그래도 어릴 적의 추억이 있는 이 곳이 가장 편안했다. 스콜라에서 수학할 때도 방학이면 다른 별장으로 오라는 친구들의 부탁을 거절하고 언제나 돌아와 오빠와 시간을 보낸 그녀였다. 사실 그녀의 이복 오빠만큼이나 근사한 신사가 없기도 했다. 브라더 콤플렉스일까, 생각하며 고개를 갸웃하던 마리안느는 안도감에 잠겨 차를 마시는 그를 보고 다시 미소를 지었다.
기실 그녀보다 더 관심의 대상이었던 사람은, 명헌대공 쪽이었다. 마리안느에 대해서는, 친오빠가 지나칠 정도로 귀애한다는 것이 대부분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정보였기 때문에 - 게다가 대공가와 혼맥으로 이어진다는 일은 시기와 기회가 일치해야 가능한 일이어서 더더욱 그 쪽에 이목이 집중될 수밖에 없었다. 때문에 아리따운 아가씨 여럿이 마리안느와 친하게 지내려고 애썼지만, 적어도 명헌대공의 여동생 되는 이가 보기에 대공비가 될만한, 즉 자신의 어머니와 비슷한 자질을 가진 사람은 눈을 씻고 찾아봐도 없었다. 여러 귀족 가문들이 후계만 낳아놓고 양육에는 신경을 기울이지 않아 벌어진 참담한 사건들을 듣기도 해서 마리안느부터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대표적으로 윈스턴 공가의 수장 나오 윈스턴을, 말이다. 30대 후반에 접어든 그는 이미 아들이 하나 있었지만, 공작부인이었던 레이첼의 일로 꽤 오래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리고 나서 얼마 지나지 않아 처제였던 헤일리가 그의 아이를 낳다가 아이와 함께 사망하고 나서는 누구도 그와는 결혼말을 꺼내려 들지도 않았다. 아무리 잘난 귀족이라 해도 딸 가진 아버지 마음은 다 똑같은 모양이었다. 윈스턴 공작 역시 한동안 잠잠하다가는, 무슨 생각에선지 - 혹은 우연이었는지 마리안느가 사교계 데뷔를 하는 시즌에 이따금 연회에 참석하곤 했다. 마주친 것이 몇 번은 되는지라 우연히 그를 떠올린 마리안느가 몸서리를 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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