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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마법사 공무원 (9) 본문
9.
오랜만에 출근하려니 기분이 이상했다. 어쩐지 새로운 직장에 취업한 느낌. 차현은 거울 앞에서 매무새를 마지막으로 점검했다. 신경쓰지 않은 사이에 머리카락이 더 길어져서, 이제는 거의 허리까지 닿을 것만 같았다. 고데기로 대충 말긴 했지만 한 번 길이를 다듬을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준비는 다 된건가?” 제윤이 조심스럽게 문을 열고 들어오자, 차현은 거울 앞에 내려놓아 두었던 서류가방을 들고 그에게로 다가갔다. 오늘은 짙은 버건디 컬러의 넥타이를 맨 제윤은 이마가 보이게 머리를 넘겨 평소보다 더 진중해 보였다.
그보다, 제윤이 이마를 내리고 편한 헤어스타일로 있던걸 며칠간 자주 봐서 그런가 이 모습이 약간 낯설게 느껴졌다. 차현은 그의 넥타이로 손을 뻗어 모양을 바로잡아 준 다음, 그를 따라 현관으로 나섰다.
“내가 먼저 갈테니, 10분쯤 뒤에 오도록. 순간이동 정도는 혼자 가능하겠지?”
끄덕끄덕. 차현의 대답에 그가 참지 못하고 그녀의 입술에 키스했다. 아주 가벼운 키스로 끝날 것만 같던 접촉은 그의 혀가 차현의 입술을 가르고 안을 탐하려고 하자 그녀가 황급히 밀어냄으로써 종결되었다.
“이제 출근해야 하잖아요.” 그녀가 그의 얼굴 위에 떠오른 진한 아쉬움과, 상기된 표정을 놓쳤을 리는 없었다. “오늘부터는 하루종일 같이 있을건데 벌써 이러면 어떡하려구요?”
“방해받지 않을 거란 보장도 없잖나. 이번주 일정 확인했잖아, 너랑 동행하는 회의가 하나도 없어.”
차현도 그건 이미 확인해서 알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건 그녀의 상태를 고려한 무영 나름의 배려였다. 쉬는 기간 동안 별 탈 없긴 했지만, 가끔 차현의 마력이 속에서 일그러져 몸 상태가 급격히 나빠졌다가 회복하기를 반복했던 것이다. 아마 제윤이 그 때마다 곁에 있지 않았다면 병원에 몇 번은 더 실려갔을 수도 있었다. 그녀는 얼마 전 자신을 꿰뚫던 그 빌어먹을 서양 마법사놈의 마법이 눈 앞에서 번쩍이던 순간을 떠올리다, 고개를 저었다.
“먼저 가세요, 저도 좀 이따가 따라갈테니까.”
오랜만에 출근한 관리국은 그녀의 기억 그대로였다. 대신, 마지막 출근과 비교해 달라진 점이 있다면 그녀의 책상 위에 쌓인, 신제윤의 ‘미결 문서’처리를 요청하는 쪽지가 어마어마하게 쌓여 있었다는 것. 내부 메신저를 켜니 읽지 않은 쪽지도 거의 100통을 넘어가고 있었다.
차현은 지끈거리는 머리를 부여잡으며, 집무실에 먼저 도착해 있을 제윤에게 인사할 시간도 찾지 못하고 밀린 업무를 열람하고, 분류하고 정리하는데 집중했다.
한편, 메신저에 차현이 접속해 있는 것을 진작에 확인한 제윤은 기분이 가라앉고 있었다. 결국 그가 참지 못하고 집무실 문을 벌컥 열고 나와 비서실 책상에서 일에 몰입하고 있는 차현을 찾은 것은 9시 20분의 일이었다.
“20분이나 기다렸는데, 아직인가?”
“아, 본부장님. 보고가 늦어서 죄송해요. 거의 다 끝나가는데……저 없는 동안 결재 안하신 문서가 이렇게 많으면 어떡해요!”
“20분이나 기다렸다고. 거기에 대한 해명을 원한다.”
차현이 갈피를 잡지 못하고, 기어이 자기가 옆에 따로 출력해 둔 ‘오늘 결재할 문서 우선순위’를 들어 보이자 결국 제윤이 그녀의 턱을 살짝 움켜쥐고 자신을 강제로 보게 만들었다.
‘이 사람이 아침부터 왜 이래? 직장에서 우리 둘이 사귀는거 알려지면 좋을거 없잖아!’
차현이 손을 뻗어 그의 팔을 치우려고 했지만 제윤은 꿈쩍하지도 않았다.
“아침에 오면, 가장 먼저 본부장한테 출근 보고해야 하는게 아닌가? 밀린 업무 따위가 아니라.”
“밀린 업무 따위라니요, 이거 본부장님이 안 하신 업무잖아요! 결재 제 때 안해주면 일이 얼마나 꼬이는지 아시면서!”
“권차현.”
“메신저 켜자마자 부재중 메시지 100통에, 결재 좀 빨리 부탁한다는 연락에, 그거 다 쳐 내느라 집무실 들어갈 짬이 안 났어요. 설마, 그걸로 혼내시려구요? 본부장님은 늘 업무가 먼저셨잖아요. 아?”
아무리 일이 많이 밀려있었어도, 오늘만큼은 짬을 내서 얼굴 비출 걸 그랬나? 그녀의 출근 후 루틴 중 하나였던 브리핑과 커피타임을 까맣게 잊었다는 사실을 그제야 알아챈 차현은 그런 뒤늦은 생각을 하며, 여전히 자신의 턱을 한 손으로 쥔 채 이글거리는 눈빛을 하고 있는 신제윤을 바라보았다. 그리고 보란듯이 싱긋 미소지었다.
“일단 결재 시급한거 먼저 하고 계시면, 커피 내려서 집무실에 갖고 들어갈게요. 오랜만에 브리핑도 해 드려야 하니까.”
“그런 말로 넘어갈 수 있을거라 생각하나.” 하지만 그의 말과 다르게 손은 스르륵 그녀를 풀어준 뒤였다.
“직장에선 당연히 업무를 우선해야죠. 그게 제가 여기 있는 이유기도 하고. 아니면,” 그리고 차현의 아주 가볍고 요망한 반격. 그녀는 몸을 일으켜, 제윤의 넥타이를 자기 쪽으로 잡아당긴 뒤 달콤하게 귓속말을 건넸다. “출근하자마자 집무실에서 하고 싶으셨던건 아니죠?”
“.......”
그의 붉어진 목덜미가 무얼 의미하는지 아주 잘 알고 있어서, 차현은 옅은 웃음을 흩뿌린 후 그를 집무실에 도로 집어넣은 뒤 커피머신으로 향했다. 한동안 쓰지 않아 먼지가 내려앉아 있을 줄 알았는데, 무영을 비롯해 관리국 직원들이 비서실에 드문드문 들어와서 관리도 해 주고 커피도 종종 내려 마신 듯한 흔적이 남아있었다. 그녀는 익숙한 손놀림으로(너무 오랜만이라 잊을 줄 알았는데 몸이 기억하고 있었다) 에스프레소 한 잔과, 자신 몫의 아메리카노를 내린 뒤 나무 선반 위에 컵을 올리고 집무실로 들어왔다. 제윤은 책상 뒤편에 반듯하게 앉아, 차현이 시스템 상 우선순위를 부여해 먼저 올려 보내준 결재문서를 찬찬히 읽으며 결재 중이었다.
그런데 제윤의 표정이, 어딘가 토라진 듯한 얼굴이었다. 남들은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작은, 그러나 차현만은 알아볼 수 있는 작고 소중한 감정.
“본부장님.” 차현이 부르자 그제야 그가 고개를 들어 그녀 쪽을 바라보았다. “오늘 일정, 보고드리겠습니다.”
자신을 바라보는 제윤의 시선에 다른 감정도 섞여 있다는 느낌에, 차현은 화끈거리는 얼굴이 제발 티가 나지 않기를 바라며 그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오늘 오전 열시 반에 8회의실에서 정기 업무 보고가 있습니다. 주요 안건은 이 쪽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아마 예산 관련 이야기가 또 나올 것 같아요, 그래서 작년 마법처리과의 예산 집행 실적도 준비했습니다. 최근 처리과의 업무가 과중되고 있다는 의견이 도는 듯 해서–그 쪽 직원들이 여러가지 증빙자료를 가져올 것이라고 보고는 받았습니다.”
하지만 제윤은 차현의 브리핑을 듣느라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이미 내용 파악은 다 끝난 상태였지만, 엉뚱한 곳을 봤다가 무슨 일이 벌어질지는 그도 이제 알 수 없었다.
“그리고 점심무렵에는 오찬 회의가 있으시네요. 이번엔 국회 의원회관에서, 민도언 의원 주관 간담회입니다.”
“점심 일정이 있었나? 곤란하군. 같이 점심 먹으려고 했는데.”
“간담회 자체는 3주 전부터 잡혀있던 일정이라서요. 민 의원님 주관이고, 우리 쪽에 꼭 참석을 부탁한다고 신신당부 하는 전화도 받았습니다. 본부장님?”
“오후 일정은?”
“오후엔 사무실 복귀하셔서 결재문서 처리를 쭉 하시면 되겠네요, 외부 일정이나 우리 쪽 회의 잡힌 건 없습니다.”
“그런가.”
“오전에 계속 자리를 비우시는게, 아쉬우신가봐요?”
“아니, 전혀.” 제윤의 속이 뻔히 보이는 거짓말에, 차현이 하르르 웃으며 파일철을 덮었다.
“그럼 회의 준비 다 됐는지 확인해보겠습니다. 시간 맞춰서 이동하시면 됩니다.”
“잠시만.” 제윤이 결국 참지 못하고 차현의 손목을 잡아 끌어다 그예 그의 무릎 위에 앉혔다.
“본부장님, 사무실이예요. 일하는 중이라구요, 지금.” 차현이 해살거리며 제윤의 손가락을 만지작거렸다. “이러다가 다른 직원이 들어오면 어떡하려구요? 그 때 우리–서율 과장님한테 들켰잖아요.”
차현이 처음으로 순간이동을 성공한 날, 하마터면 키스할 뻔 했던 그 때–두 사람은 그 순간 서율에게 방해받았던 일을 선명하게 떠올리며 키득거렸다.
“게다가 접근금지 마법이라도 걸어두면, 눈치 빠른 서율 과장님은 의심부터 할걸요?”
“겨우 하루종일 같이 있을 수 있게 됐는데……왜 하필 외근인가, 오늘.”
“퇴근하면 제 시간은 계속 본부장님 건데요?” 차현의 말에 제윤의 눈이 반짝거렸다. “그러니까 다녀오세요. 오후에 돌아오시면 커피랑 달달한거 챙겨서 기다리고 있을게요.”
하지만 제윤은 그녀의 말을 거의 듣고있지 않았다. 단단한 엄지손가락이 차현의 입술을 쓰다듬더니, 이내 부드러운 입술이 그 위에 가 닿았다. 제윤은 차현이 숨을 쉬기 위해 입술을 살짝 연 틈을 놓치지 않고 그 안을 파고들었다. 호흡이 점차 거칠어지고, 그의 손이 이제 차현의 블라우스 단추를 두 개째 풀어내려던 찰나–
따르르르르릉!
요란하게 차현의 비서실 내선전화가 울렸다. 뚝 하고 끊긴 흐름에 제윤은 아쉬움을 겨우 감췄지만, 차현은 풀린 단추도 미처 수습하지 못한 채 황급히 전화를 받기 위해 집무실 바깥으로 뛰어나갔다. 몇 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차현의 흐트러진 모습이 묘하게 섹시하다고 생각한 제윤은, 넥타이를 일단 바로잡았다.
“회의 준비 마쳤다고 하네요, 이제 이동하셔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정중한 업무적 태도와는 다르게 아직도 긴장감이 두 사람 사이에 놓여있었다. 제윤은 회의자료는 브리프케이스에 넣어 미리 회의장으로 보내버린 뒤, 자신을 마중하기 위해 집무실 문가에 서 있는 차현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곤 살짝 가슴께에 손을 올렸다. 움찔하는 그녀가 지금 당장 잡아먹고 싶을 정도로 귀여웠지만, 그는 침착하게 자신이 풀어헤쳤던 그녀의 블라우스 단추를 채워주었다.
“급한 업무가 생기면,” 하지만 귓가에 부드럽게 속삭이는 일은 잊지 않았다. “바로 불러내도록.”
그날 점심 시간. 차현은 기다렸다는 듯 본부장실에 들어온 서율의 얼굴이 무척이나 반가웠다.
“잘 지냈어? 이젠 괜찮아 보이네. 다행이다.”
“오! 안그래도 오늘 오전 회의록 받아봤는데.” 차현 역시 격의없는 그의 태도에 대응하듯, 화사하게 웃으며 그를 비서실 안에 놓인 작은 소파로 안내했다. 그의 손에는 포장용기가 들려 있었는데, 차현은 금새 그게 자신을 위한 것임을 알게 되었다.
“그것보다, 닭죽 포장해 왔어. 일반 식사보다는 이게 회복하는데 도움이 될 것 같아서.”
현재 수정 중인 챕터라 변경될 수 있음!(백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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