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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법사 공무원 (1) 본문

Writings/Di 245(BE, AE)

마법사 공무원 (1)

alicekim245 2025. 7. 21. 13:24

1.

“마법사 등록과 관한 법률 제18조 8항에 의거, 권차현을 체포한다.”

차현은 눈 앞의 상황이 너무나도 비현실적이라, 자기도 모르게 눈을 질끈 감고 말았다. 세상에나, 사람들, 들어보세요. 서른이 넘은 제가 마법사랍니다.

 

차현은 늦은 저녁시간까지 사무실에 남아있었다. 내일부터는 한동안 출근을 하지 않아도 되었다. 공직생활을 하면서 징계를 세 번이나 먹고도 ‘파면’되지 않는 경우는 왠지 그녀가 유일할 것만 같았다.

‘그래봐야 연금은 잘릴 것 같은데.’

이런 직장생활을 계속 하다가는 연금이고 뭐고, 구속되어서 감방에서 여생을 보내지 않을까 전전긍긍해야 하는게 맞을 것만 같았다. 실제로 그녀는 지금 집행유예를 받은 상태였다.

“차라리 몇 대 더 팰걸.”

상대, 그러니까 남자 하나와 여자 하나는 차현에게 폭행당해 전치 8주의 부상을 입었다며 형사고소를 했었다. 그러나, 어째서인지 자비로운 판사님께서 그 전의 맥락을 살펴보시더니 관대하게 집행유예를 내린 것이었다.

아쉬움을 진하게 삼키려다, 차현은 지끈거리는 관자놀이를 짚으며 익숙하게 키보드에서 컨트롤과, S버튼을 눌렀다. 이 저장 스킬은 난장판이나 다름없는 직장생활 속 안식처나 다름없었다. 사실 집행유예가 아니라 어디 유치장이라도 다녀올 줄 알았다. 그만큼 차현이 이번에 행사한 폭행의 강도는 상당한 수준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왜 남의 부서에 까지 와서 자기 남편이 무고당했다고 지랄하고 그러나.’

그녀는 지랄, 이란 단어에 악센트를 주어 생각한 뒤 방금 전까지 모니터에 띄워두었던 문서를 닫았다. 불미스러운 일에 휘말렸음에도 자기 일을 복직 전까지 맡게 될 후임을 위한 나름의 배려 차원에서 작성한 인수인계 서류였다. 차현은 임용 후 세 번 팀을 바꾸었고, 모두 그녀가 아닌 ‘다른 원인’으로 팀이 변경되었다. 더 정확히는, 매번 다른데로 쫓겨났다고 표현하는게 옳았다.

첫번째 팀장은, 미혼의 여성 직원들에게 마구 손을 대는 사람이었다. 그걸 인사처에 고발했지만 지지부진한 조사만 이루어질 뿐 개선은 없었고 오히려 조사하던 감찰관이 신고자–즉, 차현의 정보를 팀장한테 넘겼다. 공직기강 교육 때 말로만 전해듣던 일을 직접 겪게 된 차현은 그야말로 ‘배은망덕한’ 직원으로 낙인찍혔고, 동료 여직원들에게는 철저히 외면당한 채 다른 팀으로 쫓겨났다. 아마도, 자기들 인생을 더이상 방해받고 싶지 않아서 그랬겠지. 누구 하나를 찍어 눌러야 편했을테니까.

두번째 팀장은 아예 차현에게 관심이 없었다. 그 시기는 그나마 괜찮았다. 일도 그럭저럭 적응해 나갈 수 있었고, 직장에 불만이 별로 없었다. 그런데, 정말 뜻밖에도 차현은 현재의–세번째 팀에 갑작스럽게 발령이 났다. 세번째 팀장은 의외로 차현의 배경(그러니까, 자기 상사를 마구 고발할 수 있는 정신나간 애)을 알고도 그냥 덮어주려고 했었다. 그래도 차현은 공무원들 중에서도 나름 유능하긴 했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첫번째 팀장의 부인이었다. 그녀 역시 차현과 동일한 국가안보국 소속의 팀장이었고, 차현의 고발로 인해 사실상 과장 진급이 막힌 자기 남편의 앙갚음이라도 하려는 듯, 사건 당일 오전– 차현이 있는 사무실로 찾아왔다.

“아, 차현 씨 있구나? 요즘은 잘 지내?” 화사하게 웃는 미소에 이미 뼈가 있다는 걸, 관심을 끄려던 차현도 대번에 알아챌 수 있었다. “팀장님, 저 직원 조심하는게 좋을걸요? 자기도 까딱하면 성추행범으로 몰려서 과장 진급 막힌다?”

차라리 못 들었으면 나았는데, 다른 직원들이 있는 와중에 현재의 팀장한테 저런 이야기를 하니 부아가 치밀었다. 그래도 차현은 참기로 마음먹었다. 얼마든지 저 통통한 여자의 목을 잡아 바닥에 내리 꽂을 수 있었지만, 여긴 직장이었다. 이미 두 번의 팀 이동을 거치면서, 상사에 대한 항명으로 견책, 그 팀장을 ‘무고’했다며 감봉까지 두 번의 징계를 받은 상태였다.

‘한 번 더 저지르면 그 때는 잘린다.’

파면까지 나온다면 노후를 바라보고 버텨왔던 공무원 연금이 날아갈 판이었다. 그러나, 차현의 마음가짐에도 불구하고 그녀의 귀에 마지막 말이 비수처럼 날아와 꽂혔다.

“부모도 없이 컸으니 인성이 저 모양이지. 자기 아껴주는 줄은 모르고 어디 남의 남편을 꼬셔서 가정을 깨려고 해?”

가차없이 내리꽂히는 말의 칼날에, 그 말을 듣고 있던 차현의 현재 팀장도 움찔했지만–모든 팀원들이 그 자리에서 마치 시간이 멈춘 것처럼, 순식간에 여자 팀장이 바닥에 내동댕이 쳐지는 것을 목격했다. 차현의 그 당시 감상은, ‘생각보다 무겁다’는 정도였다. 이미 세상에 없는 부모를 언급하는 것은 넘어간다 치더라도, 자신을 그깟 볼품없는 팀장의 ‘불륜녀’로 만들려는 작태에는 넌덜머리가 났다. 쿵, 하는 육중한 소리와 함께 차현이 몰려드는 현실감을 인지했을 때는, 이미 여자는 기절한 상태였고 팀장이 그녀의 양 팔을 힘겹게 붙잡고 있었다. 마치, 가녀린 여자한테 이런 힘이 어디서 났는지 이해하지 못하겠다는 듯 거친 숨을 내쉬면서.

그 길로 차현은 출동한 경찰에 의해 파출소로 끌려갔다. 국가안보국 사무실에 경찰이 출동하게 만든 것은 아마 차현이 최초였을 것이다. 당연히 남편이란 남자가 바로 달려왔고 사건 상황 진술을 마친 차현의 멱살을 잡아 올리려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차현의 몸은 그의 악에 받친 동작에도, 공중에 조금도 뜨지 않았다. 그러더니 분을 못이겼는지 남자가 갑자기 차현의 복부를 발로 걷어찼다. 당황한 경찰이 그를 말렸지만, 이내 옆에서 그 여자 팀장이 꽥꽥 소리를 지르며 더 걷어 차서 아예 죽여버리라고 그를 응원했다. 차현은 일부러, 일어날 만한 상태였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았다. 경찰이 그를 잘 말려준 덕분에 차현은 일단 훈방조치 될 수 있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법원에서 약식 재판에 참석하라는 문서가 도착했고, 차현은 이제 ‘에라 모르겠다,’란 심정으로 기쁜 마음을 갖고, 법원에 향했다. 당당해 보이고 싶어서, 평소에는 고르지도 않았던 조금 짧은 길이의 원피스를 입고선.

그리고 이내 ‘그 사건’이 일어난 것이다. 팔짱을 낀 부부가 차현을 위아래로 훑어보더니, 대놓고 앞에서 침을 뱉었다.

“허벅지를 그런 식으로 다 내놓고 다니니까 니가 당하는거야.”

“어머, 그러니까! 차현 씨, 아직 세상을 뭘 몰라서 그러는데, 우린 국가안보국 팀장이야. 거기다, 진단서 본 변호사도 우리가 이길거라고 했어. 어떻게 감히 나같은 가녀린 여자를 그렇게 때릴 수가 있니?”

대꾸할 가치를 조금도 느끼지 못했다. 차현은 아예 귀를 닫고, 법정에 입장했다. 당연히, 쌍방 폭행인데다 차현 쪽의 진단서가 더 심각했으므로 판사는 차현의 손을 들어주었다. 그런데 문제는 그 다음이었다. 재판에서 만족할 만한 결과를 얻지 못한 팀장 부부가, 막 법정을 나서려는 차현을 휙 낚아챈 다음 그대로 대리석 계단 위에서 밀쳐 떨어트리려 했던 것이다. 간발의 차로 피하긴 했지만, 차현은 그제서야 그들에게 말할 마음이 들었다.

“이제는 살인죄로 감방에 들어갈 생각이야?”

“니가 뭔데, 감히!”

“그러니까, 감히, 뭐냐고. 꼴랑 6급 공무원? 이봐요, 당신들 바깥에 나오면 다 삐쩍 마른 아저씨랑 존나 살찐 아줌마야. 현실을 더 자각하게 해 줄까?”

자극적은 두 단어에 지나가던 사람들이 저절로 걸음을 멈추었다. 이제 몰라, 될 대로 되라.

그러자 와이프 쪽이 흥분해서 차현에게 달려들었다. 차현은 일부러 맞아 줄 생각이었다. 심지어 여긴 법원 안이었고, 1층으로 내려가는 대회랑의 계단이었다. 밀쳐진 차현은 일부러 무릎의 힘을 풀고 바닥에 쓰러졌고, 이내 여자의 낮은 플랫슈즈가 차현을 짓밟으려고 노력했다. 발까지 통통하니 맞는 굽의 구두가 없는게 당연하지.
다행히 머리는 밟히지 않았다. 그런데 그 때, 남자가 차현의 목을 노렸다. 그대로 차이면 목이 부러질지도 모르는 상황에 놓이자, 차현은 그대로 굴러 일단 일격을 피한 뒤, 남자의 머리를 긴 다리로 걷어차 쓰러트렸다. 보호막이나 다름없었을 남편이 맥없이 바닥에 나뒹굴자, 그제야 상황파악이 된 듯 비명을 지르며 달아나려는 여자의 뒷목을 잡는 일은 아주 쉬웠다. 차현은 몸의 중심을 이동시켜서 손쉽게 여자의 목덜미를 낚아챘다.

‘주짓수 사범님. 미안합니다.’

아마 차현이 벌인 일을 알면 받아주지도 않을 주짓수 사범을 생각하며, 차현은 자신이 두 남녀를 신나게 패고 있다가–법정 경비에게 결박당한 것을 알았다.

‘아, 이제 진짜 파면이구나.’ 당연히 그렇게 생각이 들 만 했다. 심지어 법정 로비에서 두 사람을 폭행한 현행범이었다. 인생 진짜 박진감 넘친다, 차현은 그렇게 생각하며, 마음을 비우고 이윽고 자신에게 떨어질 판결을 기다렸다.

‘그런데 의외로 집행유예라니. 물론 중징계는 먹었지만.’

국선변호사가 생각보다 유능했다, 그렇게 말고는 생각할 수 없었다. 심지어 판결을 내린 판사는 그의 변호를 듣고 눈물까지 보였다.

차현은 이제 한동안은 떠날 사무실을 조금도 아쉬운 눈으로 보지 않았다. 삼개월, 먹고 살 수 있는 비상금은 있었지만, 여기 돌아올 날이 기다려지지도 않았다. 그냥 죽은 눈을 하고 견디면 월급이 나오는 직장이지, 재미있게 일 할 수 있는 직장은 애당초 아니었다. 그걸 알아차리는게 너무 오래 걸렸다. 진작에 알아차렸다면, 팀장한테 아부나 하면서 일은 ‘나는 여자니까 그런거 못해’하면서 쉬운 일이나 하고 다녔을텐데.

사무실 불을 끄려다가, 그때 차현의 눈에 아직 전원이 내려가지 않은 PC 한 대가 눈에 들어왔다. 그녀가 약간은 호감을 갖고 있었고, 자리를 비우는 동안 일을 대신하게 될 남자 직원의 PC였다. 카카오톡 메신저가 아직 접속되어 있었다. 차현은 본디 남의 메시지를 훔쳐보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그 때는 어째서인지–우연히도 새로운 메시지가 오면서 그 내용을 엉겹결에 보게 되었다.

“와아–.”

차현은 자기도 모르게 감탄사를 내뱉었다. 그녀에 대한 모욕적인 언사를, 입직 동기와 신랄하게 나누고 있는 채팅창이었다. 생전 처음 읽는 욕도 많아서 앞으로 차현의 언어에 다채로움을 부여해 줄 것만 같았다. 경탄하며 메시지를 읽다가, 차현 역시 사람이기에– 마우스를 쥐고 있는 손이 조금씩, 미세하게 떨렸다.

“사람 역시 겉모습 보고 판단하면 안된다는 말이 맞긴 한데, 좀 그렇네.”

그녀는 얌전히, 그의 PC의 공용 클라우드에 접속해, 자기가 전송해 두었던 업무인계서를 영구삭제해 버렸다. 이깟 인간을 위해 인수인계서를 쓰겠다고, 정직 바로 전날까지 야근을 한 자기가 개탄스러웠다.

내가 이렇게 감정을 다스리는게 맞는걸까. 감탄하고, 신기해 하는 걸로 자신에게 닿는 모든 스트레스 요인들을 쳐 내는게 맞을까? 차현은 혼란스러웠다. 그냥 웃으면 다 지나가던걸, 그렇게 생각하기엔……지금은 억울했다. 물론 사람을 때린 것은 잘못했지만, 애초에 그런 빌어먹을 상사가 아니었다면, 그녀가 쫓겨나는걸 모른척 했던 다른 여직원들처럼 적당히 생각없이 직장을 다니며 살았을지도 몰랐다.

‘내가 유별나서? 아니야, 내가 아니라 너희들이 잘못된거라고!’

머릿속을 꽉 채워버린 단 한번의 분노. 그리고, 차현은 자기가 암흑에 휩싸인 것을 알아차렸다.

순식간에 파지직! 소리가 나더니 한 층도 아니고 모든 건물의 조명이 꺼진 것이었다. 단순한 정전이 아니라는 것은, 비상 유도등에도 빛이 없는 것으로 알 수 있었다. 어두워진 덕분에 차현의 모든 신경이, 희미한 불빛 하나를 찾기 위해 집중되었다. 그런데, 그녀의 손에 쥐고 있던 스마트폰 마저 먹통이었다. 창문 바깥으로 보이는 풍경 역시 암흑이었다. EMP인가? 그렇다면 어느정도 설명은 되었겠지만–.

그때, 차현의 귓가를 어떤 구두소리가 사로잡았다. 아직 닫히지 않은 문에 시선이 갔다. 이 와중에 복도를 통해 이 사무실로 걸어오는 저 소리의 주인공은 누구란 말인가. 보통은, 정전이 되었다며 지하 전기실로 뛰어 전력으로 달려가는 소리가 나야 맞았는데–마치 차현을 데리러 온다는 듯한 느긋한 발소리가 그녀의 귀에 내리꽂혔다.

여전히 굳은 채로 사무실 의자에 앉아있던 순간, 차현은 열린 문틈으로 황금빛이 쏟아져 들어온다고 생각했다. 이윽고 문을 제대로 열고 나타난 사람은, 검은색 정장을 완벽하게 차려 입은 젊은 남자였다. 차현이 이 층에서는 전혀 만난 적 없는–마치 TV에 나오는 배우같은 얼굴이었다. 이런 사람이 대체 왜? 차현은 자기도 모르게, 홀린 듯 자리에서 일어나 그에게 다가갔다. 그는 조각상처럼 그 자리에 서서 차현을 내려다 볼 뿐이었다. 조금만 더 다가가면 서로의 숨결을 인지할 수 있을 것만 같은 거리에서, 차현이 겨우 멈추어 섰다. 차현은 보통 여성보다 키가 조금 더 컸지만, 지금 마주한 이 남자는 그녀보다 한 뼘은 더 커서 올려다 보는 수밖에 없었다.

“국가안보국 제16실, 권차현 주무관인가?”

아마도 악마나 저승사자가 자신을 데리러 온거라면, 정말 그렇게 물어볼 것만 같았다. 누구의 자식도 아니었고, 다른 사람의 애인도 아닌 차현에게 어울리는 물음이었다.

차현은 저도 모르게 그의 말에 살짝 고개를 끄덕였다. 맞닿은 시선에 차현은 몸이 불타오르는 것만 같았다. 그래서, 차현은 그 순간 자기가 하지 말아야 할 말을 해버렸다.

“나랑 사귈래요?”

황금빛으로 빛나는 이 배우같은 남자가, 차라리 ‘대체 무슨 말을 하는거지?’란 표정이라도 했으면 덜 민망했을텐데. 차현은 그가 조금의 표정변화도 없이, 여전히 그녀를 꿰뚫어 볼 듯이 시선을 마주한 채,

“거절한다.”

라고 대답하는 말을 듣고 귀 끝이 새빨개졌다. 방금, 처음 만난 사람한테 고백을 해버린 것이다. 그런데 정말로, 그 말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다. 마치, 이미 오래 전부터 예정되어 있던 듯이.

“특수인원관리국 총괄본부장, 신제윤이다.”

특수인원관리국, 이란 부서명을 듣자마자 차현은 이 이상한 남자가 자신을 왜 찾아왔는지 알았다. 두 달쯤 전에, 그녀는 정체불명의–사칭인게 분명한 공문서를 배달받기 시작했다. 이상한 부서명인 것도 모자라 제목이 “마법사 등록 요구서 (공문 제2025-18호)”라면, 누구든 질 나쁜 장난에 걸려든거라고 생각하지 충분하지 않나?

그런데 이 남자가, 자기가 그 부서의 총괄 책임자라고 주장하며 차현 앞에 나타난 것이다. 그는 차현의 시선을 조금도 피하지 않은 채, 뻔뻔한 말을 아무렇지 않게 했다. 그 태도에  차현은 왠지모를 패배감과 불쾌감을 이겨내며, 따져물었다.

“그런 부서는 존재하지 않아.”

“네가 모든 정부 부처를 알고 있다고 생각하나?” 차현의 말에 오히려 그가 비꼬듯 답변했다. “그런 태도이니 징계를 세 번이나 먹고도 공무원 그만 둘 생각을 안하는거겠지.”

“뭐요?”

분명 신경을 긁기 위해 하는 말이었다. 차현은 욕을 입에 담으려다가 포기했다. 일단은, 그녀보다 조금은 연상으로 보이는 남자였으니 최소한의 예의는 차릴 생각이었다. 그러나, 어째서 이 남자가 자신의 징계 사실을 알고 있는걸까? 차현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설마, 첫번째 팀장과 아는 사이라 이런 이상한 연극까지 해 가면서 자신을 괴롭히려는건가? 그는 마치 차현의 생각을 꿰뚫어 보고 있다는 듯, 이제는 권차현을 싸늘한 시선으로 내려다 보며 말했다.

“나에게 시간을 낭비하는 취미는 없다.” 곧장 남자가 차현에게 손을 뻗자, 그녀가 아까의 당당한 태도와는 다르게 크게 움찔했다. 차현은 어릴 때의 경험으로 인해, 남성이 머리 위로 손을 뻗는 것을 무서워했다. 시간이 많이 흐르면서 격하게 반응하는 일은 줄어들었지만. 신제윤은 그녀의 반응에 약간 당황한듯, 잠시 멈추긴 했지만 이윽고 생각을 굳힌 듯, 차현의 어깨에–살짝 손을 올렸다. 본디 우악스럽게 쥐려던 것을 약하게 조절했다는 것을 알 수 있을 만큼.

“상사를 데려오라고 했다지? 내 부하직원들한테.” 분명 그런 일이 있긴 했다. 그녀가 문서 수취를 거부하자, 한 달 전부터는 특수인원관리국 소속이라고 사칭(?)하는 남녀들이 나타나서 ‘제발 등록을 해달라’고 읍소하는 일들이 있었다. 당시 소송이며 징계심의위 출석에 지쳐있기도 했던 터라, 대놓고 ‘꺼져!’라고 소리지르며 방금 전 제윤이 한 말을 진짜로 내뱉긴 했었다. 조금의 후회도 없긴 했지만, 차현은 신제윤으로부터 마지막 말을 듣고 나서는 생각이 바뀌었다.

“내가 그 상사다.”

잡힌 왼쪽 어깨로부터 얼음장같은 한기가 스며들어 오더니, 이윽고 정신이 아득해지는 것이 느껴졌다. 차현은 눈 앞의 시야가 좁아지며, 자기가 방금 전까지 있던 사무실이 아닌 아주 어두운 곳이 보이는 것을 느끼다 이내 정신을 잃었다. 그녀는 이제, 국가안보국 사무실이 아닌 특수인원관리국의 심문실에 와 있었다.

 

한편, 차현을 심문실에 보내버린 신제윤은 손 끝에 느껴지는 낯선 감각에 곧장 관리국으로 향하지 않고 잠시 그 자리에 머물러 있었다. 다른 마법사를 마법으로 다른 공간에 보내는 일은, 숙련된 마법사인 자신은 숨 쉬듯 자연스럽게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방금 전– 권차현에게는 한 차례 그 마법이 먹히지 않았다. 이건 그냥 우연으로 벌어질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가능성을 여럿 떠올리며, 신제윤은 권차현을 ‘어떻게 처리해야 할지’ 깊은 고민에 빠졌다. 그러다 한 가지 결정을 머릿속으로 내린 뒤, 몇 걸음 움직이다 권차현이 앉아있던 의자에 시선을 두었다. 단정하게 정리되어 있는 책상 위에, 그녀의 개인 소지품인 핸드크림이 눈에 들어왔다. 그것도 아주 잠시뿐이었다.
권차현에게 손이 닿았을 때, 신제윤은 마치 ‘온몸이 물에 빠진 듯한’ 이상한 감각을 느꼈다. 그와 동시에, 너무나 또렷하게 그 안에 있는 마력이 끊긴 듯한 기분과 동시에 그녀를 관리국으로 순간이동시킬 수 없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고, 벌어져서도 안 될 일이었다. 관리국 안 쇄령옥이 아니라면, 신제윤의 마력이 끊기는 경우는 딱 한가지 경우 뿐이었다.

이 이상한 상황을 머릿속에 옮겨 적다 이내 고개를 가로저은 그는, 손가락을 튕겨 간단한 마법을 쓴 뒤 순간이동으로 자기가 권차현을 보내버린 특수인원관리국으로 돌아갔다.

그가 떠난 국가안보국 사무실은, 마치 차현이 존재한 적 없었다는 듯–이내 전원이 복구되며 전등이 환하게 밝혀졌다.

 

특수인원관리국 본부장 집무실. 책상 위의 뱅커스 램프가 녹색이면서도 밝은 빛을 내뿜고 있었다. 검은색과 흰색만이 전부인 듯한 이 사무실의 집기 중 유일하게 녹색이어서, 들어오자 마자 눈에 띄는 물건이었다.

손에 쥔 권차현의 인사기록카드와 법원 기록을 천천히 넘기며, 신제윤은 탁자 위를 오른손 검지로 툭, 두드렸다. 짧은 소리가 정적 속에서 유난히 크게 울렸다. 보통이라면 입수하기 쉽지 않은 문서였지만, 그의 입지는 그런 것쯤은 무시할 수 있었다.

딱, 딱, 딱.

긴장하거나 짜증이 날 때마다 반복하는 습관. 권차현이 사고를 친 것을 알고 직접 체포하러 가기 직전, 신무영이 한 말 때문에 이러는 것었다.

“이번에 네가 데려온 그 여자와 너, 분명 사랑에 빠질거야.”

“어림 반푼어치도 없는 소리.”

즉각적인 대답에 무영이 슬그머니 웃었다. 그의 말투에는 예언을 전하는 자의 거리감이 아니라, 이미 성립된 사실을 지켜보는 사람의 확신이 담겨 있었다. 그래서 그 일을 떠올리니 더욱 짜증이 났다. 제윤은 손끝으로 다시 한번 책상을 두드렸다.

딱. 딱. 딱.

서류를 넘길수록, 자기가 심문실에 가둬버린 인물은 점점 더 ‘기록’이라는 틀을 벗어났다.

3회의 징계. 2회의 팀 이동.

피해자보다 더 심각한 진단서. 동료로부터의 집단 따돌림.

그리고, 법정에서조차 웃으며 지나가길 바라다 끝내 폭발했던 순간의 기록.

“성추행을 고발했지만 내부 감찰이 오히려 신고자의 정보를 유출함.
조직적 조치 없이 피해자만 전보. 최종적으로, 이전 상사 부부와의 물리적 충돌로 정직 처분”

“……이상한 사람이군.”

단순히 ‘문제 직원’이라는 라벨로는 권차현을 설명할 수 없었다. 그녀는, 시스템의 허점을 드러냈고, 그 부조리를 감당하지 못해 무너졌으며, 결국 자신을 방어하려다 법정까지 서게 된 사람이었다. 아마 일련의 사건이 아니었다면, 어디서도 눈에 띄지 않은 채 그저 생기잃은 눈을 하고 오전 9시에 출근해 오후 6시에 퇴근할 뿐인, 신제윤이 수없이 상대하는 정부 공무원들처럼 평생을 살다 죽었을 것이다.

그러나 권차현이 특별한 이유는, 그녀가 ‘마법사’라는 점이었다. 본인은 사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등록 유예기간을 넘기도록 ‘사실’을 받아들이길 거부해 그예 신제윤이 직접 나서게 만들었지만.

기록 속 '권차현'은, 어떤 부분에서는 놀랍도록 일관되었다. 문제를 피하지 않았고, 어리석은 선택이라 해도 후회하지 않았다. 후회했더라면, 사람을 한 번 때리고 나서는 두 번 다시 같은 일은 벌이지 않았을거다. 아니면, 성추행을 고발해 조사를 받고 나서 자기에게 돌아온 동료 여직원들의 왕따에 더는 저항할 의지를 잃고 고발을 취소하고 피해자로 남아버리거나.
안정적인 직장, 은퇴 후 공무원 연금을 생각했더라면–그것만 생각했더라면, 당연히 법원 로비에서 이미 자기가 승소한 상대를 폭행하는 일도 없었겠지.
만약 그녀가 자기가 처한 운명에 저항하지 않았더라면, 제윤은 권차현의 인사기록카드를 보면서도 이렇게 길게 고민하지 않았을 것이었다. 마법사인걸 함구하도록 한 뒤, 그냥 비참한 일상에 내던져버렸을 터였다.

제윤은 손끝의 리듬을 멈췄다.
애초에, 신제윤은 남의 사정따위 면밀히 봐 줄 만큼 한가하지도 않았고 마음이 너그럽지도 않았다. 그러나 마법은 조금도 쓸 줄 모르는 여자가, 방금 전 자신의 마력을 ‘끊어낸’ 것이 신경쓰였다. 이 어긋남이 제윤은 조금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래서, 지금부터 확인할 요량이었다. 권차현의 말, 표정 하나하나 확인해서, 자기가 들은 예언을 있는 힘껏 부정할 생각이었다. 그리고, 초면에 자기한테 이상한 고백을 한 것을 앙갚음해야 마음이 편할 것만 같았다. 자기가 그런 이상한 사람과 사랑에 빠질리가 없다는 확신이 신제윤의 머릿속을 채웠다. 총무과 신무영의 예언은, 이번만큼은 틀렸다.

제윤은 조용히 자리에서 일어나, 총무과로 향했다. 그곳에 들어서기 전 자신도 모르게, 셔츠의 커프스를 한 번 더 당겨 단정히 정리했다는 것은 모른 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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