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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이어엠블렘-풍화설월]흑수리반 제국루트 클리어 후기(스포!) 본문
전의 글에서도 밝혔지만 나는 이미 디미트리의 팬이기 때문에(...) 처음 이 루트를 밟기 시작했을 때, 에델가르트를 그닥 순수한(?) 시선으로 볼 수 없었다. 이미 흑막에 버금가는 악당이라는 것을 알고 있는 마당에 애가 곱게 보일리가 있겠는가.
사실 이 게임의 가장 큰 매력은 각자 다른 배경과 기억을 가지고 있는 캐릭터들이다. 청사자반에서 이어져 온 지원회화가 조금 지루한 면도 있었지만, 흑수리반 학생들끼리, 그리고 흑수리+청사자반 학생들 간 흥미로운 지원회화는 내가 계속 주말마다 8끼를 먹게 하는 원동력이 되었더랬다.
에델가르트의 이상은 뭔가 어긋나 있었다. 신이 존재하는 세계를 인간에게 돌려주겠다는 의지 쯤으로 보였는데, 그 과정에서도 자칭하듯 피로 물든 길을 걷고 있으니 디미트리와 아무래도 대조적으로 보일 수밖에 없었다. 세이로스 교단이 대단한 폐쇄성을 지니고 있고, 문장으로 대변되는 귀족 사회의 폐단도, 거기에 희생당한 그녀의 어린 인생도 모두 뒤섞인 끝에 자신만이 진리라고 믿고 도끼를 휘두르는 자의 모습이랄까.
무엇보다 이해가 안 갔던 것은, 그런 그녀를 따라간 선생(플레이어)였다. 스토리를 보기 위해서 어쩔 수 없긴 했지만, 솔직히, 제국루트를 밟겠다!는 생각이 아니었으면 단번에 레아의 말을 따라 에델가르트와 대적했을 거다. 그만큼 개연성이 모자랐다. 제랄트가 어쨌건 레아를 경계하라고 하긴 했지만, 에델가르트가 내민 패도의 길은 결코 옳지 않았다. 적어도 내 가치관에서는 그렇다. 문장을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귀족사회를 철폐하고 나서 자신만 황제에 앉겠다? 그게 무슨 독단적이고 위선적인 생각이란 말인가. 그녀는 문장에 의한 피해자이긴 하여도 포드라에 있어서는 가해자다. 그런데 그런 이에게 해피엔딩이라니, 솔직히 에델을 위한 제국 루트라지만 이건 좀 너무하단 생각이 계속 들었다.
전개 과정에서 계속 떡밥을 뿌려주고, 그걸 어떻게든 회수하면서 에델가르트에게 정당성을 부여하려고 했는데, 그 과정과 결과 모두 석연치 않았던 점이 이 루트의 단점이다. 오죽하면 같은 반 친구들도, 그녀가 염제로서 자신의 야망(세이로스 교단의 철폐)를 들고 나왔을 때 반발했겠는가.
개인적으로 레아가 쓰러지고 나서 주인공의 심장이 다시 뛰기 시작했을 때(제국 루트에서만 유일하게 주인공이 원래 머리색으로 돌아오는데, 불꽃의 문장이 레아의 사망과 함께 사라져서 평범한 인간으로 돌아와 그렇다) 그 장면이 제일 인상깊었다. 전 글에서도 서술했듯, 신(=권속)에게서 인간에게로 세상이, 그리고 주인공의 삶이 돌아온 듯한 느낌이 들어서.
그녀를 제외하면 반 학생들이 이채로워서 즐거웠다. 특히 말 붙일 기회가 거의 없던 1회차에 비해 여러명을 영입하는 것이 가능해 졌으므로(회차 플레이는 나같은 캐주얼 플레이어들에게 강추) 기존에 보지 못했던 지원회화도 꽤 여럿 볼 수 있었다. 그 중에 압권은 실뱅. 주인공 성별을 여성으로 선택하면 100% 바로 선생을 따라 나서는 이 캐릭터는, 특이하게도 몇몇 캐릭터를 제외하면 지원회화가 B 이상으로 오르지 않는다. 그렇게 여성을 따라다녀서 금사슴반에서는 로렌츠와 기묘한 라이벌 관계도 형성하는 이 친구가 말이다. 기존의 메르세데스, 잉그리트 커플도 좋았지만 도로테아와의 커플에서는 직접적으로 '결혼하자'는 말이 나와서, 마지막에 한 명을 선택할 때 도로테아에게 죄책감을 느낄 정도였다(...).
베르나데타. 이 친구를 빼먹을 수 없겠다. 어떤 학생과 붙여놔도 특유의 캐릭터성을 발휘하는 그녀는, 실뱅에게는 '기억을 태울 순 없으니 실뱅 씨의 머리를 태울 수밖에...'라는 명대사를 남겼고 휴베르트에게는 꽃 자수를(그래서 둘의 후일담에 꽃 자수가 언급되는 것) 주었고, 린하르트와는 티격태격 하면서도 공감대를 형성하며 에델보다 더한 흑수리반의 마스코트(?)가 되어 주었다. 부스스한 머리칼에 '히이이익!' 하는 대사 때문에 청사자반 할때는 안중에도 없었지만 말이다.
휴베르트는 외모부터 흑막이라는 인상이 강했는데, 에델에게 만큼은 정말 충직한 부관이었다. 그녀가 아룬델 공을 따라 퍼거스 신성 왕국으로 망명하자, 그녀를 따라가겠다고 무려 7살의 나이에 쫓아갔다가 아버지한테 잡혀 왔다던가, 계속해서 그녀를 신뢰하고 나중에는 고백 비스무리 한 것까지 하면서 꽤 내게는 평가가 올라갔다.
(에델이 린하르트와 갑작스럽게? 맺어지는 바람에 휴베르트는 베르와 결혼하고 말았음 ㅠ)
온갖 계략을 짜고 행동하는게 모두 에델을 위한 것이라니, 황제는 대단한 수단을 손에 쥐고 있었기에 자신의 신념과 행동에 망설이긴 했으나 멈추지 않았던 것이 아닐까.
플레이 하면서 페트라도, 도로테아도 인상적이었고 페르디난트도(ㅋㅋㅋ) 좋은 캐릭터였다. 여기 다 적기에는 내 정신력이 부족하다(...). 에델의 행동에 정당성이 부여되기 어렵다는 점만 제외하면, 이런 스토리가 아니었다면 더 매력적인 반이었을 것 같다.
레아(세이로스)와 맞붙는 마지막 전투에서만 리트라이를 했는데, 어떻게 했느냐면, 정면 돌파를 포기하고 오른쪽으로 파고든 것이다. 큰 로봇에는 물리공격만 들어가는데다 기마병은 행동 범위가 적어지기 때문에 창, 검, 도끼 든 캐릭터들 위주로 격파하고 바로 카트린도 삭제. 카트린이 여기서 뇌정을 떨구는데, 주인공이 가지고 있던 천제의 뇌검보다 데미지가 더 잘 들어가는 느낌이 있어 순백의 존재는 뇌정으로 피니시를 먹였다. 배리어 깨는데 엄청 조마조마했던 것은 덤.
아무튼 플레이는 했지만 청사자반에서 이어져 온 배신감이 있기 때문에 순서나 퀼리티의 우위를 가리기는 어렵다. 그래도 경중을 굳이 따지자면 청사자반이 여전히 위너. 현재 금사슴반 1부를 플레이 중인데, 확실히 두개 반보다 클로드가 뭔가 머리회전이 되는건지, 목표가 확실해서 좋은건지 좀 힌트같은 것을 풀어주고 그래서 나름 만족하며 하는 중이다. 대신 영입을 남발하다 보니 주력진 선발이 애매해져서...이건 플레이 마쳐보고 소감을 남길 수 있을 것 같다.
아무튼 흑수리반 제국루트는 여기서 피니시. 시간이 되면 레아 루트도 해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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