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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lice in the Dreaming Library
C1 본문
심장이 멈췄다.
누가 진단을 내린 것이 아니라, 또렷이 느껴지는 감각이 있었다. 몇 초 뒤면 모든 생체기능이 셧다운되고, 끝없는 암흑으로 떨어질 것이다.
다만...이번에는 늘 몸에 지니던 제세동 장치가 바닥에 떨어져 있었다.
온 몸을 타고 흐르는 낯설고도 익숙한 마력이 차현을 집어삼키고 있었다.
자신을 움켜쥔 채 노려보는 남자의 눈이 마치, 무언가를 강렬히 갈망하는 듯한 눈빛이었다고 생각하며-
차현의 시간이 멈추었다.
뭔가 일이 단단히 잘못 흘러가고 있었다.
신제윤에게 공격당하는 것은 예상 범위 안의 일이었지만, 그의 마력이 차현의 체내에 흘러들어오는 순간...차현은 본능적으로 이 사람을 절대 이길 수 없다는 걸 알았다.
하지만 자신의 힘은 스위치를 다루듯 켜고 끌 수도 없었다.
보통의 경우라면 전혀 문제가 되질 않았다.
대부분의 마법사들은 차현이 마력을 흡수하는 속도를 감당하지 못하고 마력을 상실한 채 그녀 앞에서 목숨을 구걸하곤 했으니까.
하지만 화수분같은 먹잇감을 발견한 그녀 몸 속의 마력이, 신제윤의 힘을 미친듯 먹어치우고 있었다. 그게 자신의 심장을 멈추게 할 독인 줄도 모르고.
"날 기억하지 못한다면..." 신제윤의 굵은 손가락이 차현의 여리고 흰 목을 우악스럽게 쥐었다. 차현은 이미 그의 손아귀에 이미 축 늘어진 상태였다.
"...기억해내야지?"
자신의 의지와는 다르게 온 몸을 지배하는 제윤의 마력에 차현이 마지막으로 발버둥쳤다. 거부의 의미였다.
하지만 그는 멈출 생각이 없었다.
십여년을 기다린 재회였다.
내가 너를 얼마나 찾았는데,
너는 내 전부였는데.
겨우 다시 만난 차현이 자신을 조금도 기억하지 못한다는 사실을, 신제윤은 받아들일 수 없었다.
그래서 기억을 되살릴 생각이었다. 마법으로 닫힌 문을 열어, 자신과의 과거를 그녀의 기억 속에 몇 번이고 새겨넣을 것이다.
"...안돼."
희미한 비명소리가 이내 그의 거센 손 힘에 의해 사그라들었고, 차현이 그의 눈 앞에서 눈을 감았다. 그런데, 어딘가 이상했다.
그녀는 의식을 잃은게 아니라......
신제윤의 표정이 굳었다. 지난 십여년간 단 한 번도 멈춘 적 없던 완벽한 계산이,
시뮬레이션이 전부 정지했다.
'권차현이 없는 미래'는 그의 계산에 전혀 등장한 적 없었다.
이래선 안된다.
이건 계획에 없었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차현의 몸을 낚아채 품에 안았다. 그녀의 몸이, 제윤의 힘을 견디다 못해 멈추어버린 것이다.
"권차현-."
그녀의 다문 입가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그는 그제야 그녀의 맥박을 확인했다. 아주 희미한 박동조차 잡히지 않았다.
제윤은 차현을 살리기 위해 쏟아붓던 자신의 마력을 황급히 거둬들이러 했지만, 차현의 입가에서 흐르는 피는 점점 더 늘어났고 맥박이 잡히지 않는 몸은 차갑게 식어갔다.
신제윤은 차현을 찾는 십여년 동안 수많은 죽을 고비를 넘겼다. 적대 세력의 암살 시도, 부하의 배신, 조직간 충돌.
그 아수라장에서 살아남은 것은 그가 모든것을 계산하고, 예측하고, 통제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다시 그의 인생에 나타난 차현은-
"......."
여전히 예측 불가능한 변수였고,
그를 무력하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존재였다.
"보스, 이 장치가 아까 차현 씨가 떨어뜨린 물건인데-"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남자는 그를 보스라고 부르며, 손가락 한 뼘 정도 되는 길이의 장비를 제윤에게 건네주었다.
"마력이 느껴지는걸 보니 차현 씨의 응급 제세동 장치인 것 같은데요?"
제윤은 장치를 낚아채듯 받아들고, 차현의 블라우스를 찢었다. 하지만 장치를 대는 위치는 정확했고, 버튼을 누르는 타이밍은 완벽했다.
첫 번째 충격. 반응 없음.
제윤의 턱선이 굳었다.
두 번째. 여전히 없음.
그의 호흡이 거칠어졌다.
세 번째—
삑, 삑, 삑.
소름끼치는 비프음이 세 번 들린 뒤, 차현의 몸이 들썩 하고 튀어올랐다.
차현이 천천히 눈을 떴다.
제윤은 한 박자 늦게 숨을 들이켰다. 그제야 자신이 숨을 참고 있었다는 걸 깨달았다.
그림자 남자-류희우는 보스가 한 여자를 살리려는 모습을 흥미롭게 관찰하고 있었다. 방금 전 바닥에 떨어진 물건은 차현의 물건이 맞았고, 그가 권차현에 대해 조사한 정보와도 일치했다.
마력을 흡수하는 능력으로, 대부분의 공격과 저주마법이 통하지 않는 대신 간헐적으로 심장이 멈추는 '병'을 갖고 있는 여자. 아케인의 요원 정보를 수집하다 이 사람에 대해 제윤에게 보고했을 때, 희우는 제윤이 권차현에 대해 추가로 조사하라고 한 것이 그저 방해물을 제거하려는 계획인 줄 알았다.
'하지만 저 태도는.....'
이화란의 심장이 멈추었다면, 신제윤은 절박하게 그녀를 살리기보다는 장례식을 치르라며 내버려두고 갈 사람이었다.
희우는 지금 본 장면을 평생 잊지 못할 것 같았다.
신제윤이 당황하는 모습.
신제윤이 손을 떠는 모습.
신제윤이 한 여자의 심장 박동을 확인하며, 마치 세상이 끝날 것처럼 굳어있던 그 얼굴.
'화란이 죽었어도 저런 표정은 안 지었을 텐데.'
흥미로웠다. 아니, 흥미롭다는 말로는 부족했다.
이 여자는 이화란과는 확실히 달랐다.
퍽!
눈을 뜬 차현이 가장 먼저 한 행동은, 자신을 내려다 보는 신제윤의 배를 걷어차는 것이었다.
블라우스가 찢어져 속살이 드러나는 일은 개의치 않았다. 장치를 떨어뜨린 것은 분명 자신의 실수였지만, 그럼 죽이면 될 일이지 장치를 주워서 또 살려놓는 것은 대체 무슨 심보란 말인가.
죽여버리면 차현이 '미끼'로 가져온 문서를 손쉽게 가져갈 수 있었을텐데.
"나쁜 새끼야!"
거친 말이 저절로 튀어나왔다.
온 몸이 쥐어 짜인 듯이 고통스러웠지만, 일시적 증상이라는 걸 알았다. 겪어본 적 있는 감각이었으니까. 임무 수행 중 이따금 마력이 충돌하거나 역류하면, 차현은 드물게 심정지를 겪곤 했다. 의사는 제세동만 제 때 수행하면 별 탈 없을거라 했다. 게다가...차현의 마력을 이겨먹을 수 있는 마법사는 손에 꼽을 정도로 적었다.
그런데 방금 전 압도적인 힘으로 자신의 심장을 멈춘 남자가, 이해할 수 없는 이유로 자신을 살려놓기까지 한 것이다.
"사흘." 제윤의 목소리가 평소보다 낮았다. "그 전까지는 움직이지 마."
명령이었지만, 동시에 간청처럼 들렸다.
차현은 그의 말을 무시한 채 곧게 일어서려고 노력했다. 하지만 의지와는 다르게 몸이 비틀거리자, 제윤은 그녀를 안아 올렸다. 당연한 조치였다. 다시 심장이 멈추는 것보다는, 자신이 직접 옮기는 게 확률적으로 안전했다.
차현의 체온이 낮았다. 마치, 금방 다시 식어버릴 것 처럼.
그 사실이 제윤의 팔에 더 힘이 들어가게 만들었다.
제윤이 버둥거리며 저항을 멈추지 않는 차현을 차에 싣는 동안, 그 모든걸 지켜보던 희우는 웃음기 띈 얼굴로 냉큼 운전석에 올라탔다.
룸미러 너머로 지켜본 제윤은...처음 보는 표정을 하고 있었다. 몇 년간 그의 곁에서 보았던 어떤 표정들 중 가장 흥미로웠다. 무너질 리 없던 보스, 아니-무너지는 신제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