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dnight In Paris(미드나잇 인 파리, 2011)
Gil: Would you read it?
Ernest Hemingway: Your novel?
Gil: Yeah, it's about 400 pages long, and I'm just looking for an opinion.
Ernest Hemingway: My opinion is I hate it.
Gil: Well you haven't even read it yet.
Ernest Hemingway: If it's bad, I'll hate it because I hate bad writing, and if it's good, I'll be envious and hate all the more. You don't want the opinion of another writer.
우디앨런이란 감독을 딱히 좋아하지는 않지만 이번 영화는 상당히 인상깊어서, 꽤나 오래 기억하고 있는 편이다. 시골 영화관의 장점은 인기가 별로 없는, 어린이 대상이 아닌 영화를 조조로 보러 갔을 때 거의 상영관을 빌린 것 처럼 볼 수 있다는 점인데 이번 영화도 그 수혜(?)를 톡톡히 누리며느긋하게 관람. 사실 <클로이>도 그렇고 이 영화도 그렇고 사람들이 우르르 모여서 볼 만한 영화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변에도 이 영화를 기억하고, 좋아하는 영화 중 하나로 꼽는 지인들도 제법 있는 편이다.
오웬 윌슨은 사실 <인턴십>이나 <박물관이 살아있다> 등지에서 우스운 연기밖에 보질 못해서, 그 배우의 연기가 뭘 하든 그닥 진지하게 보이지 않는다는 문제가 내게는 있는데 이 영화에서는 스토리텔러 겸 주인공으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소화해 냈다. 물론 감정이입은 되지 않았지만 황금 시대로의 안내자 역할은 충분히 해 준 셈.
출연 배우들이 상당히 낯익은데, 달리로 분한 애드리안 브로디, 스콧 피츠제럴드로 분한 톰 히들스턴, 그리고 아드리아나 역의 마리옹 꼬띠아르. 사실 뒤에 언급한 두 사람을 굉장히 좋아한다. 톰 히들스턴은 <할로우 크라운>이나 다른 영화에서의 활약을 눈여겨 본 편이고, 이래저래 주워들은 것도 있긴 하지만 굉장히 멋진 사람이라고 생각하고 있어서 - 영화 내내 그의 피츠제럴드를 보기 위해 얼마나 목을 빼고 기다렸는지 모른다(목소리 좋은 사람은 나한테 거의 80%는 어필한다). 마리옹 꼬띠아르는 <인셉션>으로 눈도장을 찍었는데 정말 매력적이다. 여자가 봐도 아름답다, 매력적이라도 생각할 정도로. 극 중에서도 그 매력을 많이 엿볼 수 있었다. 이외에도 당대에 정말 유명했던 문인들, 예인들이 다수 등장했는데 나중에 영화를 보고 난 뒤 다른 사람이 정리한 글을 보고야 누가 누구였는지 알 수 있었다. 애드리안 브로디의 달리가 유독 코믹했던 것은 웃음 포인트.
사실 지난 과거를 황금기라고 생각하며 그리워하는 것은 모든 세대에 걸쳐 존재하는 관념같은 것이라고 생각한다. 오늘날의 우리가 IMF 즈음의 과거를 그리워하는 것처럼(물론 IMF를 직격으로 맞으신 분은 그렇지 않겠지만) - 과거의 과자값이나 만화영화 뭐 그런걸로 - 예전의 사람들도 끊임없이 과거를 갈망했던 것 같다. 아드리아나(마리옹 꼬띠아르 분)가 그 시기보다 이전, 벨 에포크를 그리워했던 것은 그런 맥락에서 이해할 수가 있었다. 그런 향수 외에도 오웬 윌슨이 분한 길(Gil - 이걸 질이라고 읽어야 할지 고민)에게 있어서는 동경이 현실이 되었으니 부러워 해야할지. 가끔 한국사 책(정사든 야사든)을 읽다보면 그 시기가 문득 궁금해지는 것 처럼 말이다.
미술적 감각이 제로인 나이기에 이 화면은 어떻다! 라고 딱히 평가를 내리기는 어렵지만 보이는 화면과 영상이 정말 잔잔하고 은은해서 더 기억에 남는다. 인물들이 유독 튀는 것도 아니었고, 잔잔하면서도 오랫동안 뇌리에 남아 음미하게 되는 영화를 만나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더군다나 내 어린애같은 취향을 생각해 보았을 때는 더더욱. 물론 이 영화가 지루하다는 사람을 더 많이 만나긴 했지만, 왠지 '인상깊게 봤어요'라고 말하는 사람과 만난다면 상당히 코드가 맞을 것 같기도 하다.
마지막의 모습이 정말 좋았다. 주인공이 안락한 삶을 버리고 파리에 정착하기로 마음먹은 뒤 비 내리는 다리에서 골동품 가게의 점원을 만나 함께 걷는 장면. 그 이전에 아드리아나가 자신의 위치를 선택하는 장면도. 나라면, 그런 선택을 할 수 있을까? 현실에 안주하기를 포기하고 모험에 발을 내딛는 순간 온갖 편안함과는 작별일 텐데, 내게는 몹시 어려운 선택으로 보인다. 아마도 나는 현실에 남아있으려 하겠지. 물론 피츠제럴드 역의 그런 배우(!)가 나온다면 홀려서...후회할 결정을 할지도 모르지만 말이다. 혼자 어려운 결정을 하는 것보다, 함께 할 사람이 있으면 모험은 조금 더 할만한 것일지도 모른다.
각설하고, 정말이지 내 취향인 영화. 다른 사람들에게도 여럿 추천해 보았는데 그닥 좋은 반응은 돌아오질 않았다. 그래도 좋다. 파리 곳곳을 비추는 스크린과, '파리스러운' 배경음악과, 환상적일 듯한 어쩌면 환상일지도 모르는 시간 여행. 주인공의 자아찾기라는 통상적인 문구라고 압축해 버리기에는 아까운 영화다.